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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한 해 낙태 30만…쉬쉬할 때 아니다
2017-12-11 19:53 사회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냐, 아니면 생명권이냐.

여성계와 종교계 사이에서 오래도록 평행선을 긋고 있는 낙태 논쟁입니다.

청와대 국민 청원 참여자가 23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이제는 회피할 수 없이 공론화된 낙태 문제를 짚어봤습니다.

윤수민 기자의 더 깊은 뉴스입니다.

[리포트]
“냉기 돌고 그런 데에서 수면 마취를 하는데... 그 느낌이 너무 무섭고 싫은 거에요.”

고민끝에 취재진을 만난 20대 직장여성.

지난해 혼자 산부인과를 찾아야 했던 경험은 지금도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20대 미혼 여성]
"남자친구가 갑자기 부모님에게 떠나가면서 잠수를 탔어요.(연락을 끊었어요) 임신은 여자 혼자서 하는 게 아닌데, 되게 고립감에 힘들었던 것 같아요.

"현행법상 낙태, 즉 임신중절은 처벌 대상입니다.

성폭행, 유전적 장애, 또는 산모의 건강 우려 등 5가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데요.

가장 최근이었던 2010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16만 8천여 건의 낙태 수술이 이뤄졌습니다.

대부분이 불법이었는데요.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 A씨는 경제적 이유로, 셋째 아이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38살 기혼 여성]
"첫째, 둘째를 키우는 상황에서 신랑 월급이 250 정도거든요. 근데 그 돈 가지고 셋째까지 키울 수가 없겠더라고요. 죄책감이 컸었죠."
 
의료계는 정부 추산의 2배에 달하는 매해 30만여 건의 낙태수술이 이뤄지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낙태수술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지만 너무나 쉽게 이뤄집니다.

인터넷으로 쇼핑을 하듯 병원을 찾을 수 있고, 단속에 대비해 수술비는 현금만 받습니다.

[불법 낙태수술 병원 관계자]
"수술도 예전보다는 잘 의술이 발달해서 그런(부작용) 걱정은 안 하셔도 되세요."

국내 유통이 금지된 낙태약 '미프진'이 버젓이 판매되기도 합니다.

물론 해외 60여 개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처방되고 있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미프진 복용자]
"꼼짝없이 누워서 끙끙대는 수밖에 없고 정말 데굴데굴 구르고 벽을 치고 욕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미프진 부작용 사례]
"불법으로 먹은 거라 병원에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근데 자꾸 토하고 열나고."

돈이 없거나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기 힘든 10대 청소년들은 더 위험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19살 여성]
"계단에서 구르기도 하고 자기 혼자 배를 때리기도 하고"

[17살 여성]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배 이렇게 막 때리고"

여성계나 일부 의료계는 낙태죄 자체의 모순점을 지적합니다.

낙태를 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수술을 한 의료진은 2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지만 상대 남성은 법적 책임이 없습니다.

또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지난 5년간 단 3건에 불과해 사실상 사문화된 셈입니다.

성폭행 피해 등 예외적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에도 허점이 있습니다.

[김재련 / 변호사]
"성폭력인지 아닌지 수사기관에 조사하고, 경찰에서 사건이 검찰로 가고 법원에 가서…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그때까지 기다리면 애는 태어나거든요."

태아는 수정 이후 3주가 지나면 심장이 형성되고 눈과 귀가 식별됩니다. 11주 이전에 구체적인 얼굴 윤곽이 생깁니다.

5개월 이후부터는 심장박동 소리가 강해지며 엄마의 감정을 동일하게 느낍니다.

천주교에서는 배아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생명의 시작으로 간주합니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계와 천주교의 입장은 팽팽하게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동익 / 천주교 주교회 생명위원회 신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생명의 시점을 늦춰 놓으려는 경향들이 생겨났고, 인간 배아를 단순히 세포덩어리로 분류하는 난센스를 범하고 있는…"

국민 청원이 23만 명을 넘을 정도로 논란은 커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실태조사 말고는 당장 내놓을 답변이 없습니다.

[조국 / 청와대 민정수석]
"2010년 이후 실시 되지 않은 임신중절 실태조사부터 2018년에는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실태조사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

[여성가족부 관계자]
"낙태에 대해서만 인터뷰하는 건 부담이 되는 문제여서. 구체적 논의가 된 상황은 아니거든요."

전문가들은 당장 해법이 없다면 가능한 정책이라도 하나씩 도입하자고 조언합니다.

[구정우 교수 / 성균관대 사회학과]
"임신중절을 생각하는 미혼모들의 처지라든가 여성들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는 가족을 넘어선 출산 육아정책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비록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고 해법찾기도 쉽지 않지만 낙태죄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채널A 뉴스 윤수민입니다.

윤수민 기자 soom@donga.com
연출 김남준
글구성 지한결 이소연
그래픽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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