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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이주 여성 100만 명 ‘침묵의 미투’
2018-03-19 19:35 뉴스A

미투 열풍이 거세지만, 우리 나라에 사는 이주 여성들은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습니다.

성 범죄 위험에 노출돼있지만, 사법당국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딱한 현실을, 김유림 기자가 '더깊은 뉴스'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짧은 반바지만 입은 채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여성.

러닝 셔츠 바람으로 뒤쫓아온 남성이 여성의 머리채와 가방을 낚아챕니다.

치열한 몸 싸움이 대낮 강남 한복판에서 5분 넘게 벌어졌습니다.

행인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자, 남성은 부리나케 도주했습니다.

[목격자]
"태국 여자가 도와달라고. '헬프, 헬프' 하니까."

스물 세살 태국 여성 A씨는 경찰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마사지사로 취업시켜주겠다"는 말에 솔깃해 한국에 왔지만, 지난 5개월 간 감금된 상태에서 성 매매에만 동원됐다는 겁니다.

A씨가 탈출한 업소에 가봤습니다.

간판도 인기척도 전혀 없습니다.

[빌딩 관계자]
(지하는 마사지샵이에요? ) "지하는 체형 관리실이라고 하던데."

A씨는 그곳이 "전화로만 예약을 받는 불법 성매매 업소였다"며 감금돼있는 동료들도 구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 A씨 통역]
"문지기가 서있고 30명이 갇혀있고. 외부랑 소통이 단절돼있고. 업주 관계자들이 도망 못 가게 했다"

이곳이 불법 성매매 업소였다는 A씨의 진술이 거듭됐지만, 경찰은 A씨를 폭행한 업주만 구속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서울 강남경찰서 관계자]
"성 매매 부분은 강력팀에서 알 사항도 아니고 현장에서 성매매 한 정황도 보지 못했고..."

(A씨가 업주한테 폭행을 당했으면 폭행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왜 때렸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이주 여성 노동자를 대변해온 변호사는 "이런 일이 다반사"라고 꼬집었습니다.

[최정규 / 변호사]
"이미 '불법 체류'라는 타이틀 때문에 그분들이 받은 피해나 불이익에 대해 수사기관에서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머물는 이주 여성 노동자는 약 백만 명.

주로 제조업이나 농업 같이,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 종사합니다.

추위는 물론, 햇빛조차 가리기 힘든 비닐과 차광막

캄보디아에서 온 20대 여성 두명은 지난 1년 간 이 허름한 곳에서 살았습니다.

하루에 13시간 넘게 농사를 지은 뒤, 이런 폐 컨테이너에 쓰러져 잤는데도, 숙박비로 30만 원 씩 내야 했습니다.

숙박비가 너무 비싸다고 항의하자, 농장주는 적반하장으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이현서 / 이주민지원 공익센터 감동 변호사]
"너무 고액으로 사업주들이 숙박비를 거둬가니까. (B씨는) 제대로 통역도 안 되고 계약을 할 때 제대로 이해가 된 상태도 아니었고."

[쏨 / 태국 출신 이주 노동자]
"Sleep with me. 같이 사장님 방으로 올라가자."

태국에서 온 32살 여성 쏨 씨의 지난 2년은 악몽, 그 자체였습니다.

공장 관리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쏨 씨의 엉덩이나 볼을 꼬집었고, 이전에 일했던 식당 주인은 성 관계까지 요구했다고 합니다.

[쏨 씨]
"'나는 싫어 안 좋아해 하지마. 나는 싫어 하지마 안 돼.'(이렇게 거절했어요)."

다른 태국 여성 노동자도 이 식당 주인에게 성 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지만, 주인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습니다.

[00 식당주]
"SNS에 (성 추행 내용이) 올라왔다하기에 내가 너무 황당해가지고. 걔들이 나한테 어떤 앙심을 품어가지고."

이주 여성 노동자 10명 중 1명이 한국에서 성 범죄를 경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인권단체나 노동부에 신고된 건수는 피해자의 9%에 불과합니다.

[캇소파니 / 캄보디아공동체 활동가]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증명해내지 못하면 오히려 가해자로부터 무고죄로 고소당하기도 하고"

괜히 고발했다가 추방당할지 모른다는 공포도 이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현행법 상 이주 노동자는 국내 체류 3년 간 3번만 일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반드시 고용주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 범죄를 당해도 입증하기 어렵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업주가 발뺌을 하면, 속수무책입니다.

[한기현 / 화성이주노동자쉼터 활동가]
"사업장 이전의 자유가 확보가 되어야겠죠. 이게 안 되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노동자는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는 것에 대해 주저할 수밖에 없고"

타국에서의 외로움에 언어 장벽까지 넘어야하는 이주 여성 노동자들.

우리 여성들의 미투 운동은 이들에게 마냥 부러운 모습일 지도 모릅니다.

채널 A 뉴스 김유림입니다.

rim@donga.com

연출 천종석
글구성 전다정 김대원
그래픽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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