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다음날(4일) 서울시장 선거 패배에 "아프다"고 밝힌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선거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출처 : 뉴시스)
6·3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패닉에 빠졌습니다. 국민의힘이 쇄신 없이 지리멸렬한 상태였음에도, 최대 승부처였던 서울시장을 내줬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선 서울시장 선거 패배 요인 중 하나로 2030 세대의 이탈을 꼽습니다. 지난 3일 발표된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75.3%, 30대 남성의 66.8%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쏠렸죠.
민주당에게 더 큰 충격은 지지층으로 여겨졌던 2030 여성층의 이탈입니다. 4년 전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에 67.0%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20대 여성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정원오 후보에게 48.5%, 오 후보에게 41.4%의 지지를 보냈습니다. 30대 여성의 변심은 더 극적입니다. 4년 전 과반 이상(54.1%)이 민주당을 밀어주었던 서울 30대 여성층은 이번엔 53.6%가 오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6.3 지방선거 방송3사 출구조사 중 서울 연령별 성별 지지도.
민주당 내부에서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언주 의원), "확 달라져야 한다는 결단이 필요하다"(염태영 의원)는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2030세대의 외면을 민주당 관계자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진보 정치권, 약자 아니라 기득권"
청년들이 민주당에 갖고 있는 반감에 대해 한 민주당 청년 조직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 세대에게 진보 정치권은 '약자'나 '저항'의 상징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의 2030세대에게는 성인이 된 이후 줄곧 마주해 온 '주류 권력'이자 '기득권'일 뿐"이라고요. 조국 사태 등을 지켜보며 자란 2030세대에게 민주당은 정의로운 집단이라기보다, 타파해야 할 지배 세력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당이 추진한 조작기소 특검 등이 청년들에게 위선으로 비친다는 분석도 따릅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청년들이 생각하는 공정을 '대기 줄'에 비유했는데요. "2030은 줄이 길어서 기다리는 건 참아도, 중간에 누군가 반칙을 써서 새치기하는 꼴은 못 본다"는 거죠.
대통령 재판을 지울 수 있게 한 조작기소 특검을 당이 밀어붙이는 모습이, 청년들 눈에는 법치라는 대기 줄을 무시하는 기득권의 새치기로 비춰질 수 있단 겁니다.
또 다른 초선 의원 역시 당이 프레임을 잘못 가져갔다고 비판했습니다. 검찰의 조작 기소로 억울함을 겪은 일반인들의 사례를 공론화하는 대신, 이재명 대통령의 사건을 특검 대상으로 전면에 내세우다 보니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거죠. 청년들 보기엔 '대통령 한 사람만을 보호하기 위해 민주당이 특권을 휘두른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는 공정에 민감한 청년세대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특정 정당에 대한 맹목적 지지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본인들의 주권과 상식이 침해당하면 기득권을 향해 자발적으로 저항에 나서는 것이 지금의 2030이라는 겁니다. 결국 청년들의 상식과 공정 감각을 읽지 못하는 정당은 언제든 외면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번 6·3 지선이 보여줬다고 민주당 관계자들도 보고 있습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며 개표소 봉쇄 시위를 이어가는 시민들. 2030세대 비중이 높다. (출처 : 뉴시스)"'주적' 묻자 답변 피하는 모습, 비상식적으로 비춰져"
청년들은 일상의 상식을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민주당이 이념의 잣대로 이를 재단하려 했다는 자성도 나옵니다. 선거 막판 불거진 '스타벅스 때리기'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사기업의 잘못을 두고 정치권이 나서서 '먹어라 마라, 가라 마라'며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간섭했다는 건데요. 한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청년층의 자유 의지와 권리를 침해하는 '꼰대 집단'이라는 반감이 유발된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2030 남성들의 민주당 반감을 키운 사례는 또 있었습니다. 선거 기간 청년층이 주도한 '주적 챌린지'(후보들에게 주적이 누구냐고 기습 질문)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명확한 답변을 피하면서 머뭇거리는 모습이 청년들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겁니다. 한 의원은 "청춘을 군 복무에 바치는 2030 남성들 눈에는 민주당의 태도가 비상식적으로 비춰졌을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2030의 표심을 가른 또다른 핵심은 부동산이었습니다. 한 수도권 의원은 "30대 여성들이 대거 이탈한 배경에 전월세 폭등과 대출 규제로 '주거 사다리'를 끊어버린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깔려있다"고 전했습니다.
주거 시장에서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벌이는 2030에게 민주당이 유능함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한 중진 의원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있으면, 여당 후보라도 ‘대통령과 맞서서라도 해결하겠다’는 돌파 의지를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저 '대통령 믿고 갑시다'라고만 하니 청년들이 뽑아주겠나"라고 했습니다.
"청년 정책 TF 구상"… 소통 고민 중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년 민심을 확인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2030세대를 위한 행보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 의원은 청년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청년 정책 TF'를 구상 중이라고 밝혔고, 또 다른 의원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대학생 간담회 일정부터 잡으며 청년과의 접점을 늘리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역구 내에서 자체적으로 2030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접수하는 온·오프라인 창구를 기획 중이라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오는 8월 뽑히는 민주당 새 지도부의 과제도 2030세대 껴안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솔 기자 [2sol@ichanne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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