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2 09:00 국제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v8c3NcqFWNA
안녕하세요. 채널에이 미국 뉴욕 특파원 조아라입니다.
미중 정상회담으로 전 세계의 관심이 모아졌던
APEC 정상회의가 바로 어제 마무리됐죠.
하지만 아쉽게도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트럼프는 방한을 앞두고,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
즉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국가라며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듯
적극적으로 대화 손짓을 보냈는데요.
김 위원장,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의 회동 성사 여부를
미리 점쳐볼 수 있었던 자리가 뉴욕에서 있었습니다.
한달 전 제가 서 있는 이곳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인데요.
북한은 유엔총회 고위급 회의에 김선경 외무성 부상을 보냈습니다.
북한이 고위 외교관을 유엔총회에 보낸 건 무려 7년 만이에요.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이후 한동안 국제무대에서
조용했던 북한이 다시 기지개를 켠 셈이죠.
저도 당시 김 부상의 방미 현장에 모두 나가 있었는데요,
그때의 현장 분위기와 뒷이야기,
그리고 북한 대표단의 움직임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김정은 위원장의 속내까지
뉴스에 공개되지 않았던 영상과 함께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 7년 전과 다른 미국의 '찬밥' 의전
김 부상을 처음으로 마주한 건
유엔총회 연설 나흘 전이었습니다.
9월 25일, 김 부상이 베이징 서우두 공항을
출발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도착 예정시간에 맞춰
뉴욕 특파원단 기자들이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으로 모였습니다.
취재진은 일단 접근이 가능한 일반 입국장 앞에서
구역을 나눠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혹시 김 부상이 계류장을 통해서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2층 출국장 VIP 통로를 이용할 수도 있어서
입국장 인근 공항 도로에서 호송 차량 움직임이 있는 지도
바짝 긴장한 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 김 부상이 나오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놓친 줄 알았는데,
김 부상이 도착한 지 1시간 반이 지난, 밤 11시 45분
일반 입국장을 통해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제가 바로 옆에서 질문을 던져봤는데요.
[조아라 특파원]
"혹시 유엔총회 연설에 참여하시게 된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실까요?
미국과 접촉하실 계획도 있으십니까?"
김 부상,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김성 주유엔 대사를 비롯한 북한 외교관들이
직접 김 부상 경호에 나섰고요, 김 부상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는데요.
급하게 차를 타려다 택시를 잘못 탔다가 내릴 정도로
현장은 긴장감이 팽팽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부상을 마중 나온 일행이라고는
김성 대사를 비롯한 북한 대표부 일행과
한국 취재진이 전부였거든요.
김 부상이 북한 대사의 캐딜락 관용 차량에 무사히 올라탄 뒤에도
공항 직원들이 북한 외교관들에게 길에서 비키라고 소리치면서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더 놀라웠던 건, 미국 측 경호 의전이 전혀 없었다는 점인데요.
7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겁니다.
물론 김 부상이 차관급이라 의전 수준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요.
2018년 유엔총회에 참석했던
장관급인 리용호 외무상 경호와 너무 상반되어서
현장에 있던 기자들도 당황할 정도였습니다.
사실 2018년 리 외무상이 방미했을 때는
‘특급 의전’을 받기는 했습니다.
당시 북미 대화 바람이 한창 불었을 때죠.
[도널드 트럼프 / 미국 대통령] (2018년 1차 북미 정상회담)
"우리는 매우 중요한 문서에 서명합니다. 매우 포괄적인 문서입니다.
오늘 굉장히 좋은 만남을 가졌고, 아주 좋은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2018년 1차 북미정상회담)
"역사적인 이 만남에서 지난 과거를 딛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문건에 서명하게 됩니다."
이 회담 넉 달 뒤 이어진 리 외무상의 방미에서
쇼맨십의 대가인 트럼프 대통령,
리 외무상을 아주 후하게 대접했습니다.
당시 리 외무상도 에어차이나를 타고 뉴욕 존F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는데요.
당시 입국장을 통하지 않고
비행기가 서는 계류장에서 차를 타고 바로 빠져나갔거든요.
당시 10대 안팎의 검은색 경호 차량이 리 외무상을 호위하면서
1, 2층 출입국장에 대기하던 취재진을 가볍게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호 의전은 리 외무상이 호텔에 도착한 뒤에도 계속됐었습니다.
당시 한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언론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으니미국 입장에서 더 신경쓸 수밖에 없었겠지만
바로 그 전 해에도 리 외무상이 VIP 통로를 통해 빠져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미국이 경호나 의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또 이번에는 북한 고위급이 뉴욕을 방문하면 이용하는
힐튼 호텔 앞에서도 취재진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김 부상이 힐튼호텔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입니다.
▶ 북한 대사, 왜 "도덕이 없다"고 소리쳤나
원래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 도착 예정 시간이었던 밤 9시 50분쯤,
김성 주유엔 대사가 입국장에 먼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평소 북한 외교관들은
유엔에서도 언론 접촉을 거의 피하고,
다른 나라 대표단과도 교류가 거의 없습니다.
영상에서 직접 보시면 아시겠지만,
북한 본국에서 파견된 외교관들과 달리
유엔 대표부 외교관들은 김일성·김정일 배지도 달지 않고,
존재감 자체를 거의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기자들이 직접 질문을 던질 기회는 정말 드뭅니다.
이번엔 놓치지 않고 바로 따라붙었습니다.
[조아라 특파원]
“트럼프 대통령 친서를 받으신 바가 있으실까요?”
[한국 취재진]
“주말에 트럼프 대통령 뉴욕에 있을 것 같은데 만날 계획 있으신가요?”
“이번에 남북 간에도 접촉 가능성이 있을까요?”
[조아라 특파원]
“APEC 기간 중에 트럼프 대통령하고 김 위원장님하고 만날 계획이나 같이 얘기를 나누시는 게 있을까요?”
“대사님 이번에 이재명 대통령님 연설 때 참석안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김인철 / 주유엔 대표부 소속 서기관]
"수속을 못하고 있습니다. 자리 좀 피해주시죠."
이날 김 대사와 서기관은 뉴욕 공항 'CBP Ships Office'에서
사전 조율을 하고 있는 도중 한국 취재진과 마주쳤습니다.
‘CBP Ships Office’는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의 세관국경보호청(CBP) 사무실입니다.
외교관 등 특별 입국자의 서류를 확인하고
미국 입국을 최종 승인하는 곳이죠.
미국과 북한은 수교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북한 외교관들은 유엔 대표부에서 반경 25마일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습니다. 즉 이동 반경이 제한되고요.
또 김 대사가 김 부상의 입국 게이트나 차량 동선 등을 조율하기 위해
직접 사전에 나와,
입국 수속을 챙기고 있었던 건데요.
그런데 직원 호출 버튼도 못 찾아서 허둥대고,
직원은 잠깐 자리를 비워버리고,
그래서 현장 분위기는 조금 어색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미국의 의전 지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북한 대사가 직접 나와서 입국 절차를 챙기고 있었던 셈이죠.
그런 상황에서 취재진 질문이 쏟아졌으니,
상당히 곤란했을 겁니다.
▶ 김선경 부상 연설 당시 유엔총회장 분위기는?
뉴욕 현지시간 9월 29일,
유엔총회 고위급 주간 마지막 날에 김선경 외무성 부상이 연설했습니다.
이날 북한의 연설 순서는 10번째였고요.
김선경 부상은 연설 한 시간 전에 미리 유엔총회장에 도착했는데요.
김선경 부상, 상당히 상기된 표정으로 연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곁에 있던 김성 대사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코치하더라고요.
그리고 연설 차례가 되자 김 부상은
북한 외교관들의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올랐습니다.
김 부상, 핵무장은 자위권이라며
비핵화 불가 입장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김선경 / 북한 외무성 부상]
"비핵화를 하라는 것은 곧 주권을 포기하고 헌법을 어기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핵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만의 국제무대여서 였을까요?
김 부상의 강한 메시지와 달리
김 부상이 연설문을 넘기는 손이 살짝 떠리는 모습을
저희 채널A 카메라가 포착했습니다.
약 16분 동안 이어진 연설 동안
다른 나라 대표단들의 박수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연설이 끝난 뒤에는 북한 실무자급 외교관들이
한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정상국가’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모습이었는데요.
주변의 다른 나라 대표단을 둘러보거나 빤히 쳐다보기도 했고,
이국적 복장이 신기했는지 연신 자신들끼리 수다를 떨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다 밀착 취재하는 채널A 카메라를 의식하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건
얼마 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열병식에 참석했던 중국,
그리고 전쟁 중 러시아조차도
북한 외교관들과는 전혀 접촉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 북한의 고위급 인사 파견, 김정은이 노린 한 수는?
그렇다면 북한은 왜 7년 만에 유엔총회에 고위급 인사를 유엔총회에 파견했을까요. 2019년부터 연설을 대신해왔던 김성 대사라는 노련한 스피커가 있는데도 말이죠.
김 부상, 연설의 핵심 메시지는 ‘비핵화 불가’ 였지만
연설 마지막 문장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선경 / 북한 외무성 부상]
"우리나라를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의 다방면적인 교류와 협력을 (할 겁니다.)“
이 문장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국가들과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뜻으로 읽히죠.
사실 유엔의 한 외교소식통은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열병식 참석 이후 북한이 유엔총회에 고위급을 파견할 가능성을 높게 보는 분위기였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다자무대에 데뷔했으니
유엔이라는 다른 다자무대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유엔총회 연설은 미국과의 대화에 무게를 뒀다기 보다는
"북한이 건재하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짐으로써 다자무대에서 존재감을 부각하는 차원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김 부상은 외무성에서도 국제기구 담당이기도 하죠.
김 부상은 유엔총회 기간 동안
일단 쿠바와 니카라과, 또 아프리카 국가들과 회담을 가지면서
제3세계 외교 라인을 다시 다지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의 유화 제스처를 계속 무시하기도 부담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북미대화의 여지도 열어뒀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북협상 전문가로 불리는
앨리슨 후커 미 국무부 정무차관과 김선경 부상,
두 사람 모두 유엔총회가 끝난 뒤에도
한동아 뉴욕에 머물렀습니다.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우리 유엔대표부도 양측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결국 별다른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오히려 유엔총회 기간, 한·미·일 외교장관이 한자리에 모여
‘북한 비핵화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북한 입장에선 이번 뉴욕 방문에서 여러 정황을 보면서
미국이 과연 진정으로 ‘비핵화 불가’를 전제로 한 대화 의지가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게다가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 회담의 실패를 맛본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다시 미국과 대화에 나설지에 대해선
더 신중할 수밖에 없겠죠.
▶ 마무리
오늘 유엔총회에 참석했던 북한 외교관들 취재 뒷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평화보다는 도발을, 협력보다는 고립을 택해왔던 북한이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지
더 궁금해지는 취재였습니다.
또 트럼프 시대 미국이 앞으로 북한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시간에 핫한 뉴욕 이야기들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