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트 까이고 ‘영감님 가족’ 해외여행 대신 예약…‘보좌진 갑질’ 수난사 [런치정치]

2025-07-20 12:00   정치

 사진 =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출처 : 뉴스1)

"장관이 되시건, 낙마를 하시건, 제보한 보좌진들 색출하지 말아주십시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
"위원님 주신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명심하겠다, 하셨죠? 명심하겠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짧게. (색출) 안 하겠다는 것입니까?"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
"네, 글자 그대로 주신 말씀 명심하겠단 뜻입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난 14일 인사청문회, 갑질 의혹을 제보한 보좌진을 색출하지 말아달라는 야당의 요구에 확답을 피하던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더불어민주당 의원 보좌진들은 두려움에 떨며 이 장면을 지켜봤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아무리 강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안 좋더라도, 색출 작업이 이뤄지면 해당 보좌진은 다른 의원실 재취업이 사실상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면서요.

자택 쓰레기 처리부터 변기 수리까지 강 후보자가 보좌진에 사적 심부름을 시켰단 논란으로 '국회의원 갑질'이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국회 보좌진은 입법부터 언론 대응과 지역 민원까지 의원의 정치 활동 전반을 보좌하는 참모죠.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기에 급여도 국민 세금으로 지급됩니다. 국회의원과 한몸처럼 움직이는 보좌진들은 그간 어떤 고충을 겪어왔던 걸까요? 여야 전·현직 보좌진들에게 실태를 들어봤습니다.

"새벽 3시까지 술자리 식당 앞 대기"

이번 사태를 본 보좌진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입니다. 국회의원 갑질은 여야를 떠나 강 후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한 민주당 초선 의원 비서관은 "새벽 2~3시까지 이어지는 의원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식당 앞에 주차해놓고 하릴없이 기다리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했는데요. "의원이 취한 상태에서 '창문을 열라'고 했다가 다시 '닫으라'고 하거나, '브레이크를 살살 밟으라'며 언성 높이는 게 일상"이라고도 덧붙였고요.

민주당 재선 의원실 선임비서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감(의원) 사모님이나 아들 해외여행용 비행기 티켓 결제 처리를 대신하는 일은 이제 일상 업무처럼 느껴질 정도"라고요.

'국회의원을 보좌한다'는 명분 하에 업무 범위가 사적 영역까지 확대되고 비공식적인 지시도 많다는 겁니다.

국민의힘 출신 전직 선임비서관은 "의원들은 보좌진이 퇴사할 때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도록 자진퇴사로 처리하는 케이스가 많다"고 전했는데요. "의원에게 시달리다 못 버티고 나가면 자진퇴사, 버티다 쓰러지면 실업급여를 수령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검사 출신 前 의원, 재떨이 던져"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의원 갑질 수위는 더 높아집니다. 보수 정당 출신 한 보좌관은 "모셨던 검사 출신 전직 의원은 기분이 안 좋으면 조인트를 까거나(정강이를 걷어차거나) 재떨이를 집어던지기도 했다"고 회상했는데요. "의원 배우자 의전을 제대로 못할 경우 소리 소문 없이 교체된 보좌진도 종종 봤다"고 했습니다.

강 후보자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으면서 더불어민주당 보좌진들도 공개적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민주당 보좌진협의회(이하 민보협) 역대 회장단은 "보좌진의 인격을 무시한 강 후보자의 갑질 행위는 여성가족부 장관은 물론 국회의원으로서의 기본적 자세조차 결여된 것"이라며 "장관 후보직에서 자진 사퇴함으로써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죠.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는 강 후보자 인사청문회장 앞에서 사퇴 촉구 피켓시위를 벌였는데요. 황규환 국보협 회장은 "남 얘기가 아니라 우리 일이 될 수 있단 심정으로 피케팅을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사진 =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 보좌관들이 14일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인사청문회장 앞에서 강 장관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출처 : 뉴스1)

보좌진 향한 비방도…"의원들 침묵 안타깝다"

민보협 역대 회장단이 강 후보자 자진 사퇴 입장을 내기까지, 속앓이도 많았습니다. 강 후보자 논란과 대응에 실망했지만, 공개 반대하면 새 정부 인선 발목잡는다는 비판 받을까봐 고민한 겁니다. 여권 강성 지지층에선 보좌진을 향한 비방도 나왔는데요. 이재명 대통령 팬카페 '재명이네마을'에는 "민주당에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깨부수자"는 글이 올라오거나, 성명을 발표한 민보협 관계자 실명 명단을 올리며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보좌진들은 "참담하다"는 반응입니다. 민주당 현직 비서관은 "강성 지지층의 반발은 그렇다 치더라도 의원들이 침묵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는데요. "다른 의원들도 보좌진 갑질 의혹에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못 내는 것 아니냐"는 거죠.

국회 직원 인증 SNS 게시판에는 "의원의 쓰레기 분리수거쯤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그게 싫으면 저쪽 당으로 가란다"며 "적군의 공격은 견딜 만하지만 아군의 공격은 배로 아프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국민의 대표라고 불리는 300명 중에 진심으로 지금 사태에 공감하고 함께 일하는 보좌진을 위해 사과한다는 글 한 줄 SNS에 남긴 의원이 있었냐"고 묻는 게시글도 있었고요.

"하나의 인격체·동업자로 대우해달라"

보좌진들의 요구사항은 간명합니다. "하나의 인격체이자 동업자로서 대우해달라"는 겁니다. "계엄 막고 집회 동원할 땐 '우리 보좌진', 끝나고 나면 '소모품'으로 취급되는 현실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요. 강 후보자 논란을 계기로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문화도 좀 달라질까요?

조민기 기자minki@ichanne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