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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간다]울진 산불 1년…아물지 않는 상처 
2023-03-05 17:20 사회

 지난해 울진 산불 당시 모습 
1년 전, 동해안 일대는 시뻘건 화염에 뒤덮였습니다. 한적한 도로 옆 야산에서 시작된 작은 불꽃은 강풍을 타고 금세 온 산을 휩쓸었습니다. 전국에서 동원된 진화대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사투를 벌였지만 도무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불은,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에서 2만여 헥타르의 산림과 수백 세대의 집을 태운 뒤에야 213시간 만에 꺼졌습니다. 산불 통계를 집계한 1986년 이후 역대 최장기간 산불이었습니다. 

당시 취재진이 만난 주민들의 얼굴에 비친 절망감은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궁금했습니다. 과연 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일상은 조금이라도 회복 되었을까. 

여전한 컨테이너살이 

 이재민들이 1년째 거주하고 있는 임시 조립주택
26가구 가운데 19가구가 불에 타 사라진 울진군 북면 신화 2리 마을.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습니다. 산불에도 타지 않고 굳건히 버텨준 회관을 주민들은 “효자”라고 불렀습니다. 정부가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조립주택을 마련해줬지만 주민들은 “잠만 자고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8평 남짓한 컨테이너가 정을 붙일 ‘집’이 될 순 없었던 겁니다.  

“여름에는 더워서 숨이 컥컥 막히고 겨울에는 웃풍이 세고 추워서 이재민들 다 마을회관으로 내려옵니다. 해가 지면 가요. 지금도 할머니들 자꾸 오시잖아요. 이 방이 꽉 차요.” - 이재민 주미자 씨 

 마을회관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신화2리 마을 주민들
주민들이 사는 조립식 주택 안에 들어가봤습니다. 네 명이 들어가니 집 안이 꽉 찼습니다. 타지에 사는 자녀들을 불러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할 수도, 명절에 제사를 지낼 수도 없습니다.   

울진군은 산불로 가장 많은 집이 전소된 이 마을에 대지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집을 짓기 전 4m 폭의 소방도로를 깔고 불규칙하던 땅 모양을 정비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타 지역에 사는 일부 땅 주인들의 반대로 당초 지난해 12월 목표였던 착공은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도로를 넓히는 과정에서 토지가 수용되면 소유한 땅의 면적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섭니다.  

“우리 마을만 주민 설명회를 여덟 번 정도 했지. 오면 설계가 바뀌고 하니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저 아래 집들은 바로 세우면 되는데 이 동네에 묶여버리니까 지금 못 짓고 있잖아.” - 이재민 전종협 씨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마을 전경 
마을 주민들의 평균 연령은 70대. 오직 주민들의 바람은 남은 세월을 내 집에서 살아보는 겁니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 짧은 대화에도 금세 눈물이 고였습니다. 

“맨날 생각하면 집이 눈에 환하고. 자꾸 생각하면 눈물 나고. 이제 얼마 살지도 못하고 죽을 건데 집이나 얼른 지어서 좀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싶어.” - 이재민 김옥선 씨
 
“낙석 걱정에 잠 설쳐” 

 산불 4개월 뒤 산에서 떨어진 바위들 
울진에서 조금 더 올라가 강원 삼척으로 향했습니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은 “꼭 보여줄 게 있다”며 취재진을 자신의 집으로 이끌었습니다. 집 주변엔 커다란 바위들이 놓여있었습니다. 산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들은 성인 혼자서는 들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산불로 바위를 감싸고 있던 나무가 불에 타고 지반이 약해지면서 산에 박혀있던 바위들이 굴러 떨어진 겁니다. 낙석 걱정에 잠을 설치던 주민들이 울진군에 건의를 했지만 달라진 건 없습니다. 

“군청에서 몇 번 왔다 갔다 하긴 했어요. 와서 조사하고 했는데 딱히 뭐 결론도 안 나고… 이게 언제 굴러 떨어질지 몰라요. 워낙 급경사라 가속이 붙으니까 우리 집 같으면 그냥 덮치는 거죠.” - 고포마을 주민 원관희 씨 

잿빛이 된 산림 생태…복원은 아직 

울진과 삼척 내 산불 피해 면적은 20,923ha. 워낙 규모가 넓다보니 민원 처리도, 산림 생태 복원도 늦어지고 있습니다. 

울진군은 긴급벌채사업을 위해 산림청으로부터 357억 원의 예산을 받았습니다. 불에 탄 나무를 그대로 두면 비가 많이 올 때 쓸려 내려 와 민가를 덮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벌채 후 즉각적인 조림 작업은 필수입니다. 하지만 산주들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해야 하다 보니, 산불 피해 면적 중 벌채 작업이 진행 중인 곳은 2.5%에 불과합니다. 벌채목을 쌓아둘 공간이 없어 작업이 중단된 곳도 있었습니다. 

“열심히 잘 벌목하더니만, 사업이 잠정 중단 됐다고 그러더라고요. 폭우가 쏟아지면 나무뿌리가 다 훼손돼서 쓸려 내려올 텐데. 걱정되죠.” - 울진군 북면 사계리 주민 

화재 원인을 찾는 수사도 여전히 답보 상태입니다. 도로를 지나던 차량에서 던진 담뱃불이 가장 유력한 산불 원인으로 추정됐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증거물은 없습니다. 발화시점에 인근 도로를 지난 차량 4대를 추적해 운전자 등을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했지만 인과성이 없어 방화범도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산림 당국은 공소권 유지를 위해 조만간 기소 중지를 내리기로 했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수사도, 산 복구도, 이재민들의 주거 환경도 갈 길이 먼 상황. 만물이 피어나는 봄이 도래했지만, 산불로 입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뉴스A의 코너, ‘현장카메라’와 ‘다시간다’에 담지 못한 취재 뒷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다시 간다] 최악 산불 1년…“바위도 나무도 겁나요” <뉴스A, 지난 28일> 
[기사 링크 : http://www.ichannela.com/news/main/news_detailPage.do?publishId=0000003368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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