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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간다] ‘폐교 위기 학교’에 아이들이 돌아왔다
2023-04-05 10:36 사회



 3년 전 경남 함양군 서하초등학교의 모습

전체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차지하고, 한 해 새로 태어난 아이가 6명에 불과한 경남 함양군. 그리고 함양군에서도 유독 적은 인구(1,379명)가 거주하는 함양읍 서하면. 이 시골 작은 면 산자락 아래, 서하초등학교가 있습니다.

3년 전, 이 학교의 전교생은 10명까지 줄었습니다. 면 단위에 있는 초등학교는 최소 5개 학급을 유지해야 생존할 수 있는데, 5개 학급에, 2학년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6학년이 졸업한 뒤 신입생이 없으면 그대로 폐교에 내몰리는 겁니다. 당시 주민들은 마을에 아기를 낳을 사람이 없다며 근심에 잠겼습니다.

그런데 3년 동안 학교와 마을에 변화가 찾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작은 학교의 근황이 궁금했습니다.


한산하던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서하초 운동장을 뛰노는 아이들

서울에서 약 260km 떨어진 경남 함양군 서하면. 취재진이 학교에 도착할 즈음 학생들은 하나 둘 책가방을 매고 교실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향한 곳은 운동장 한 켠에 자리 잡은 놀이터.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들도 놀이터 앞 그물 해먹에 삼삼오오 모여 앉았습니다.

학부모들에게 이 마을 출신인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서울, 인천, 울산, 천안… 취재진이 만났던 학부모 중 서하면 출신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전교생 24명 가운데 19명이 타 지역 출신. 한 때 폐교 위기에 놓였던 시골마을의 학교는 전학 온 아이들로 채워지고 있었던 겁니다. 도시에서 온 엄마들 역시 학교에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도시는 보이지 않는 학부모와 학교 간의 선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는 (학교 찾는 것을) 반겨주세요. 항상 열려있어요. 또 학생 수가 적다 보니까 아이들 특징을 하나하나 다 살려서 개개인으로 신경 써주세요.” - 서하초 학부모 이라영 씨

“아이가 너무 좋아해요. 특히 학원 안 가는 것에 대해서 제일 좋아하고 학원에서 하던 수업을 여기에서 친구들하고 같이 재미있게 놀이 식으로 한다는 거를 좋아하거든요.” - 서하초 학부모 임민지 씨

아무리 초등학교 하나가 좋다 해도 연고가 없는 시골마을에 선뜻 이사 오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학부모를 이곳으로 이끈 학교의 비장의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름도 ‘학생모심 위원회’…절실함의 결실

  학생 유치를 위해 서하초가 내놓은 공약들


지난 1931년 세워진 서하초등학교. 100년 가까이 이어져온 모교의 명맥이 끊기는 것을 동문들은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동문 2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돈을 모았습니다. 여기에 마을 주민들까지 의기투합해 당초 목표했던 것 보다 더 많은, 1억 원의 기금이 모였습니다. 이 발전기금은 서하초 ‘학생모심 위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학교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학교를 되살리자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다 동참한 겁니다. ‘학교를 폐교 시키면 안 된다’라는 절실한 마음이 모두 다 있었던 거죠.” - 정대훈 서하초 동문회장

학교와 지역 주민, 향우, 동문으로 구성된 서하초 학생모심위원회는 본격적으로 학교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어학연수와 장학금 지원을 비롯해, 주거 지원과 일자리 알선 등 학부모들이 관심을 가질 공약을 내세워 학생을 모집했습니다. 최종적으로 30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렸고, 그렇게 지난 3년 간 37명의 학생이 타지에서 전학 왔습니다.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학부모들


현재 전학생 10여 명의 가족들은 월 15만~20만 원의 비용으로 LH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의 소개로 면사무소 등에서 일하며 마을 주민들과의 접점을 늘려갔습니다.

“처음엔 아이들이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까 그 시간 동안 뭔가를 해야 되겠다 싶어 나왔는데요. 여기 나와서 보니까 지역 주민들을 많이 알 수 있거든요. 그렇게 더 친해지고 그런 부분이 좋아서 3년 째 일하고 있어요.” - 서하초 학부모 차수선 씨

학생들 어학연수를 보내주겠다는 공약도 곧 지켜집니다. 코로나19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오는 7월, 15명의 5, 6학년 학생들이 말레이시아 현지 초등학교로 어학연수를 떠날 예정입니다. 학생들은 벌써부터 말레이시아 문화를 공부하고 현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익히며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있습니다.

“해외여행 처음 가서 떨리고 기대되고 설레는 그런 느낌이에요. (오늘 배운 건) 긴장돼서 잘 못 말할 거 같은데… 가서 친구들과 빨리 뛰어놀면서 술래잡기 하고 싶어요.” - 서하초 5학년 신지후

 서하초 학생들이 마을 담벼락에 그린 벽화

아이 웃음소리가 없던 마을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30-40대 학부모들이 이사 오면서 마을에는 전에 없던 카페가 생겼고, 골목 담벼락 곳곳 서하초 학생들이 직접 그린 벽화는 마을에 생기를 더했습니다. 주민들은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죠. 만약에 초등학교가 폐교 됐더라면 아마 서하는 유령마을이 됐을 거예요. 아이들을 보는 거 자체가 엄청나게 우리들한테는 힘이 되죠. 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 - 마을 주민 김종현 씨

“제일 좋은 점은 인구가 늘어나니까 마을 자체가 활성화도 되고 더 좋은 거지. 농촌에 엄마들이 일손도 많이 도와주고. 골목엔 아이들 소리가 여름 되면 많이 나요.” - 마을 주민 전봉익 씨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풀어야 할 숙제들

하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여러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서하초 인근에는 소아응급실을 갖춘 병원이 없습니다. 서울에서 이사 온 엄마는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안고 한 시간 넘는 거리의 타 지역 병원을 찾아야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을 보낼 중학교나 고등학교도 마땅치 않습니다. 학부모들은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서하초 졸업 후 마을을 떠나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이런 작은 시골 학교 살리기의 제일 문제점은 아마 중학교까지 이게 이어지느냐, 안 이어지느냐… 초등학교는 너무 애쓰고 있거든요. 근데 중학교까지는 아직 그렇게 안 돼 있어요. 부족함이 좀 있죠. - 학부모 이라영 씨

올해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는 147곳, 1명만 입학한 학교는 140곳에 이릅니다. 저 출산으로 인한 지방인구 소멸과 지역사회 쇠락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우리들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작은 학교의 노력을, 누군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모교를 살리고자 하는 동문들의 절실함과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도 사라질 수 있다는 주민들의 절박함이 모여 만들어진 이 작은 결실이 누군가의 예상보다 더 오래 오래 지속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해봅니다.

*뉴스A의 코너, ‘현장카메라’와 ‘다시간다’에 담지 못한 취재 뒷이야기를 풀어냅니다.  


▷ [다시 간다]폐교 위기에 집 주고, 일자리 주고…3년 효과는? <뉴스A, 지난 4일> 
[기사 링크
: http://www.ichannela.com/news/main/news_detailPage.do?publishId=000000341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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