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첫 증언 이후 우리 정부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방일을 비밀리에 추진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후 일본은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6일 외교부는 2361권·36만 여 쪽 분량의 외교문서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문서에 따르면 1992년 10월 14일 이상옥 당시 외교부 장관은 '서해 사업'이라는 제목의 노 전 대통령의 방일 추진 프로젝트를 오재희 당시 주일 대사에게 전보(2급 비밀)로 보냈습니다.
당시는 김 할머니의 위안부 증언으로 일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한 차례의 정상회담으로 손쉽게 해결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 적이다. 격식 없이 쉽게 자주 만나는 새로운 정상외교의 관행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한 달 뒤인 11월 8일 교토에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회담 이듬해인 1993년 8월 일본은 고노 료헤이(河野良平) 당시 외상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23종 중 22종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모두 '노태우·미야자와' 한일정상회담 이후 벌어진 일들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관련해 '개인 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한일 정부의 공동 인식도 드러났습니다.
1991년 8월 일본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후 보상 국제포럼'에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던 민충식 전 수석이 참석했는데 민 전 수석은 "협정은 정부 간 해결을 의미하고 개인의 권리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인식의 일치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일본 측 입장에 대해서도 "당시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일본 외무상도 같은 견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보상과 관련한 우리 피해자들의 법적 소송에 대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끝난 일"이라며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을 근거로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제철 등 피고 기업의 배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