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3 11:25 사회[법조 시그널은 채널A 법조팀의 온라인 코너입니다. 2분 짜리 방송 리포트에 다 담지 못한 취재 뒷얘기와 해설을, 때로는 기자의 주관을 담아 전하는 ‘법조 에세이’기도 합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집중된 권한의 재배분 이런 문제 관련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성호 법무장관이 지난 7월에 한 말입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검찰개혁’ 내용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검찰이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기소’와 ‘공소 유지’만 맡도록 하는 게 골자입니다.
정 장관이 취임한 이후 ‘1호 지시’는 검사 ‘직무대리 검사 원대 복귀 검토’였습니다. 부패사건이나 입증이 어려운 경제사건에선 수사검사들이 재판에 직접 들어갑니다. 하지만 법무부는 수사검사가 기소는 물론 재판에 출석해 유죄를 주장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장동 2심, 변호인 60명인데 검사는 1명
법무부의 이런 원칙에 따라 대검은 이미 진행 중인 재판에서도 수사 검사들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항소 포기로 논란이 일고 있는 대장동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 내부에선 배임이나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려운 사건이기 때문에, 내용을 잘 아는 수사 검사가 재판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경한 의견이 있었지만, 박철우 대검 반부패부장은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대장동 민간업자 사건은 1심이 선고됐고, 2심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항소심이기 때문에 수사검사들이 모두 빠지면, 서울고검 검사가 재판에 나가야 합니다. 담당 인원은 1명입니다. 유동규 씨와 김만배 씨를 비롯한 대장동 민간업자들에게 선임된 변호인은 법원 전산에 등록된 것만 총 60명입니다.
이 사건 기록은 약 25만 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피고인 측에선 1심 때부터 25만 페이지를 공부한 변호인단 60명이 그대로 재판에 나섭니다. 반면 검찰에선 수사검사가 모두 빠지게 됐고 서울고검 검사 1명만 이 사건을 담당해 이 내용을 새로 숙지해야 합니다. 물론 인력이 너무 부족할 경우 증원을 할 수 있지만, 서울고검 측 관계자는 "여건상 증원해도 2명 정도가 최대일 것 같다"고 예상했습니다.
대장동 2심은 검찰의 항소 포기로 인해 1심 무죄를 다툴 수 없습니다. 유죄가 난 부분도, 피고인들의 주장을 위주로 재판을 해야 합니다. 법조계에선 항소 포기로 인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는데,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인력이 모두 빠진다면 ‘부실 재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특검 재판은 복귀 검사도 파견해 투입?
법무부는 최근 김건희 여사 재판에 수사 검사들이 투입될 수 있도록 파견명령을 내렸습니다. 김건희 특검팀에서 통일교 청탁과 고가 가방, 목걸이 수수 의혹 등을 수사했던 검사들 중 일부는 검찰로 복귀했습니다. ‘법무부가 수사 기소 분리 원칙을 내세우는데, 우리가 여기에 남아 재판까지 담당하는 건 모순’이란 주장도 복귀 명분이 됐습니다.
하지만 특검은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내기 위해선 수사 검사들이 필요했고, 법무부는 특검의 요청을 수용해 파견명령을 내린 겁니다. 특검이 기소한 김 여사나 권성동 의원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검찰로 복귀한 검사들은 각 지역별로 소속 검찰청으로 출근해야 하는데, 재판이 있는 날은 ‘1일 파견’ 형식으로 재판에 투입될 예정입니다. ‘수사 기소 분리’ 원칙을 내세우기 이전의 검찰의 주요 사건 대응과 일치하는 방식입니다.
일단 복귀한 검사들은 법무부 파견명령을 거부하진 않을 전망입니다. 자신들이 기소한 사건이 재판 부실 대응으로 이어진다면, 그것도 무책임한 행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원칙과 예외, 분명한 기준 있어야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렇습니다. 수사 검사는 유죄를 받아야 한다는 편향을 가지기 마련이어서, 기소 단계와 재판에선 객관적인 관점의 검사가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겁니다.
일선 검사들도 모든 사건을 수사검사들이 재판에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강도나 폭행, 절도 같은 단순 사건들은 공판 검사가 혼자 맡아서 처리해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부패범죄나 권력형 범죄, 주가조작이나 대기업 비리 같은 법리가 복잡한 사건의 경우에는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수사검사가 재판에 들어가지 않으면 기소를 해 놓고도 유죄를 받아내기가 어렵습니다. 대장동 사건처럼, 수십만 쪽의 기록을 내용도 숙지하지 않은 검사가 혼자 들어가 다수의 변호인단을 상대하는 것처럼 ‘불균형’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범죄는 다양하고, 형사재판 대응도 한 가지 ‘원칙’으로 일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기준을 명확히 세워야 합니다. 정파적으로 그때마다 일관성 없이 ‘수사 기소 분리’를 정한다면, ‘개혁’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