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01 14:36 정치 매달 미국을 찾는 조비연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왼쪽). 지난해 10월 열린 한미정상회담(오른쪽, 출처 : 뉴스1)
"1년 전만 해도 한국은 미국에서 잊혀진 존재 같았어요."
매달 미국 조야 인사들과 만나온 조비연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에게 '한미 관계 이상 징후가 처음 포착된 시점이 언제냐'고 묻자 꺼낸 첫마디였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 전문가들로부터 한국보다 중국에 관련된 질문을 주로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요.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중국 견제'였고 한국은 이를 위한 파트너 국가라는 인식이 강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올해 1월을 기점으로 한국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다는 게 조 위원 설명입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한 구성 핵시설 발언 이후, 미국은 우리 정부에 대북정보 공유를 일부 제한한 상황이죠. 그동안 한미 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한미 이상 기류는 사실일까요. 미국 정부 및 여야 인사들과 두루 교류해온 조 위원에게 물어봤습니다.
"1월부터 '쿠팡·대미투자' 우려 언급"
지난 1월 19일 열린 세종연구소와 미국 싱크탱크의 공동 세미나.
조 위원은 "지난 1월부터 '쿠팡이 대미 로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진실은 무엇이냐'고 묻는 미국 조야 인사들이 늘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인 쿠팡을 차별하는 게 맞는지 궁금해 했다는 겁니다.
조 위원이 2월 미국 워싱턴DC를 찾았을 땐 날선 질문이 더 많아졌습니다. 트럼프 내각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한 공화당 인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조 위원에게 "한국에서 대미 투자 이행 진척이 있냐. 한국 의회가 대미투자특별법을 통과시킬 의향이 있냐"고 질문을 쏟아냈다는데요.
한미는 지난해 11월 공동 설명자료를 통해 대미 투자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핵잠) 도입, 원자력 이용 권한 확대 등을 발표했지만, 후속 협상은 열리지 않는 상황이죠.
조 위원은 자신이 만났던 미국 공화당 인사의 발언을 거론하며 안보 협상을 둘러싼 '한미 시각차'를 전했습니다.
"미국 공화당 인사는 '당 내부에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추진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핵잠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향이 될 것이고, 이 또한 한국이 조선업 관련 투자를 전개했을 경우에만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하더라고요."
조 위원은 또 이재명 정부의 대(對) 중국 행보가 앞으로 한미 관계를 좌우할 요소라고 내다봤습니다.
"미국 측 인사는 한국(이 대통령)이 중국 잠수함을 언급하며 한국에 핵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 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그 자체로 반중(反中) 의사를 내비친 건 아니라고 평가하더라고요. 한국 정부가 (중국 견제에 대한) 신뢰를 더 보여줘야 한다는 거죠."
조 위원은 당시 만난 또다른 미국 공화당 인사도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밑지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고 전했는데요. "대미 투자 지연이 안보 협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안보 협상 물꼬를 트려면 한국 정부가 대미 투자에 대한 확신과 기대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미훈련 축소' 주장에 美 군 관계자 발끈
조 위원이 지난 3월 미국을 찾았을 땐 미·이란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당시 만난 미국 내 안보 전문가들은 조 위원에게 모두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한국은 미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냐"고요.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응하지 않았죠. 조 위원은 "전쟁이 지금까지도 출구가 보이지 않고 있어 우리 정부 결정에 대한 평가를 바로 내리긴 어렵다"면서도 "(요청 불응으로 인해) 한미 관계 신뢰에 균열이 생겼을 거라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3월엔 국내 한미연합훈련도 한창이었죠. 이에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연합훈련 축소'를 주장했습니다. 조 위원은 "훈련 축소 발언에 대한 미국 군 관계자들의 분노가 생각보다 컸다"며 주한 미국대사 후보로도 거론된 미 육군 사령관 출신 인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중국을 거론하며 "한미연합훈련 축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겁니다.
"한미연합훈련은 더 이상 북한만 견제하는 훈련이 아니라는 거죠. 중국이 계속 서해로 진출하려 하고 있는데, 연합훈련을 강화하면 강화했지, 축소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재차 강조하더라고요."
이 인사는 "주한미군 입장에서 한미연합훈련은 군인 진급과도 직결된 문제"라며 "한국이 일방적으로 훈련 규모를 줄이고, 훈련 여건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순환 근무를 하는 미국 군인들 커리어에도 치명타가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美 민주당 인사 "韓 이해하지만, 더 악화 안돼"
조 위원은 4월 초 한국을 찾은 미국 민주당 인사도 만났다고 합니다. 쿠팡 문제와 관세 협상 등 한미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하는 미국 민주당 관계자의 생각은 어떨까요.
"미국 민주당 인사는 현재 한미 관계 갈등 속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했어요. '민주당 정부가 재집권해서 한미 관계를 복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도, '한국 정부가 미국을 기다려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더라고요.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로 계속 치닫게 되면, 한국이 결국 미국과 반대되는 노선을 걷게 될까 우려스럽다는거죠."
국내 미국 전문가들은 흔히 한미 관계를 부부 관계에 빗댄다고 합니다. 워낙 접촉면이 넓으니 갈등이 격화될 수 있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화목해질 수 있다고요. 하지만 조 위원은 이런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내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가 손상된 분위기가 체감됩니다. 부부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헤어질 수 있는 관계잖아요. 한미 동맹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대미 투자든 중동 문제든 우리가 적극적으로 동맹의 역할을 해야하는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