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 예술 = 집’ 공식에서 벗어나는 계기…국현미 ‘서도호’ 展

2026-08-26 16:16   문화

전시실 한가운데 반투명한 흰색 폴리에스터 천으로 만든 직사각형 공간이 자리합니다. 공간 곳곳엔 문고리, 콘센트, 자물쇠, 스위치, 전등 등 실제 집에 있는 요소들이 1:1 실제 크기로 재현 돼 부착 돼 있습니다. '집 만드는 작가' 서도호의 설치미술 <완벽한 집: 런던, 홋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입니다.

 (사진설명: 서도호 <완벽한 집: 런던, 홋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 출처=국립현대미술관)

● "바위 덩어리도 3년 안고 있으면 따뜻해진다"

한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대규모 개인전이 내일(27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립니다. 지난 30여 년 간 국내를 비롯한 세계무대에서 선보여온 서도호의 작품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사진설명 : 26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서도호 작가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영상취재=홍웅택.)

"바위 덩어리도 3년 안고 있으면 따뜻해진다, 라는 글을 봤습니다." 26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남색 셔츠에 둥근 뿔테 안경을 쓴 서도호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불투명한 천을 선택한 그는 작품 속 요소들의 디테일한 구현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집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문의 손잡이 처럼 오브젝트가 있는 부분에 자연스럽게 집착을 하게 된다. 공간을 기억할 때 저는 그 공간이 갖고 있는 움직임을 생각하는데, 그 움직임을 결정하는 게 소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손에 많이 닿았던 것이 더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4 전시실에 펼쳐진 대표 연장 <러빙/러빙>을 통해 서 작가가 장소를 기억해 재현하는 독창적인 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는 성북동 한옥 등 자신이 떠나왔거나 곧 떠날 장소에 한지를 밀착시키고 흑연과 색연필로 문지르는 '탁본' 형식으로 흔적을 기록합니다. '문지르다'는 뜻의 Rubbing과 '사랑하다'라는 뜻의 Loving의 발음적 유사성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집에 축적된 시간과 기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간직해 대중에 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어루만지는 것과 비슷한 이 작업을 통해 집을 떠난 뒤에도 집을 기억하는 그만의 방식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 가장 최초의 집 '옷'… 미공개 신작 <사랑의 기억> 최초 공개

 (사진설명: <사랑의 기억(래코드 협업)> 2026, 서도호. 출처=국립현대미술관)

서도호 작가에게 옷은 몸을 보호하는 집과 같은 외피임과 동시에 나를 규정하는 표식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신작 <사랑의 기억(래코드 협업)>은 작가의 코트 안쪽에 가족 구성원의 옷에서 떼어난 주머니를 달고, 그 안에 가족과 관련된 사물을 담은 작업입니다.

주머니는 가족의 기억과 사랑이 담겨있는 공간이자, 몸과 가장 가까이에서 기억을 품는 가장 내밀한 장소입니다. 서로 깊이 이어져 있지만 동시에 온전히 소유할 수 없는 독립적인 존재들의 관계인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작가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서 작가는 '관계'를 잇는 '다리'에도 주목했습니다. '서울과 뉴욕 중간에 다리를 지으면 어떨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다리 프로젝트'는 작가에게 집이 갖는 의미를 보여줍니다. 그에게 집은 특정 장소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새롭게 갱신되는 삶의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 "'서도호 예술 =집' 공식에서 벗어나는 계기 되길"

 (사진설명: 서도호 작가 사진. 출처=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가 서도호 작품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서도호 예술 = 집'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설원지 학예연구사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공개 초기작부터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약 50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되는 이번 전시는 공간 구성도 특별히 신경썼습니다.

서울관 3, 4, 5전시실과 공용공간, MMCA 스튜디오에 걸쳐 펼쳐지는 전시는 직선적 구조의 전시가 아니고 사람과 공간이 다시 만나 연결되는 나선형으로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전시 자체도 전시장이 아닌 외부 복도에서 시작됩니다. 서울관의 건축적 특성을 반영해 서 작가의 작품을 담은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집이자 작품과 관계 맺는 곳으로 구성한 겁니다.

이번 전시는 내일부터 내년 2월까지 서울에서 열립니다. 이어 내년 6월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MOT)을 거쳐 9월 홍콩 M+로 순회합니다. 관람료는 8000원.


장하얀 기자 jwhite@ichanne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