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깊은뉴스]시간강사 울리는 시간강사법

2018-06-19 19:50   사회

Your browser doesn't support HTML5 video.

박사 학위를 따고 대학 강단에 서지만, 최저 임금도 못받는 고급인력. 바로 시간 강사들인데요.

이들을 보호한다며 만든 법은 오히려 이들을 울리고 있습니다.

최주현 기자의 '더깊은 뉴스'입니다.

[기사내용]
[애니메이션음]
"동수가 너 교수한다고 그러던데, 성공했네. 정년 보장에, 페이 좋지, 존경 받지 (난 그냥 시간 강사야)"

똑같이 대학 강단에 서지만, 속칭 '보따리 장수'로 불리는 처량한 신세.

교수라는 꿈을 쫒는 고단한 삶은 오늘도 이어집니다.

[애니메이션음]
"최 교수 입김이면 거의 결정되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나는 이걸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제발..."

[서울 영등포동]
"김 박사 잘 지냈나?
(오랜만에 뵙네요. 요즘에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냥 뭐 백수네, 강의를 못해서."

이번 학기에 더 이상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은 시간 강사들.

둘 다 마흔을 훌쩍 넘겼지만, 백수에, 총각입니다.

[천모 씨 / 시간강사 20년 경력]
"만나는 사람은 없고?"

[김모 씨 / 시간 강사 10년]
"있겠어요? 만나주지도 않고요. 뭐 허울 좋은, 빚 좋은 개살구죠. 솔직히 강사 월급으로 어디 가서 밥 한끼라도 살 수 있겠어요."

신세 한탄은 "지금껏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하는 자조로까지 이어집니다.

[천모 씨 / 시간강사 20년 경력]
"(두분이 생각하시는 시간 강사는 어떤 것 같아요?)
봇짐 장수고, 보따리 장수고, 역마살이죠.
어디라도 가서 하는데 처우는 최저 임금 조차 받지 못하고,

[김모 씨 / 시간강사 10년 경력]
"(수업 중 조는 학생에게) '아르바이트 해서 얼마를 벌길래 그러냐' 했더니 제 급여의 두 배가 넘는 거에요.
차라리 저 학생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나보다"

'지도교수의 논문 수십편을 대필했고, 교수를 시켜주는 대가로 대학 측이 수억 원을 요구했다' '
교수님을 처벌해주세요'

한 지방대 시간 강사가 목숨을 끊으며 남긴 유서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육부는 시간 강사의 처우 개선을 골자로 한 법안을 내놨습니다.

시간 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고, 4대 보험 혜택도 주는 내용인데요.

하지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은 지난 연말까지 무려 네번이나 시행이 연기됐습니다.

혜택을 보는 시간 강사들이 오히려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유진 / 시간강사 경력 11년]
"저쪽이 저희가 천막쳤던 곳이에요. 그때 2015년 12월 29일이었는데, 너무 몰라서 용감하게 (천막을) 쳤죠."

11년 간 음악대학 시간강사였던 전유진 씨.

3년 전 겨울, 백 십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무더기로 해고됐습니다.

이유조차 듣지 못했고, 시간강사법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전유진 / 시간강사 경력 15년]
"시간강사법이 시행되기 전에 미리 시간강사들을 정리하면서 문제가 될 소지나 싹을 짤라버리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

시간강사법은 한주에 9시간 이상 강의를 하는 강사에게 교원 대우를 해주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방학 중에도 급여를 지급하고, 1년 이상의 고용 보장과 4대 보험 혜택도 줘야 합니다.

지난해 이 기준을 충족한 시간강사는 전체의 0.05%에 불과했습니다.

2012년 법이 통과된 뒤, 이 기준을 벗어난 나머지 99.95%의 시간 강사들은 쫓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해고 쓰나미 속에 11만 명에 가까웠던 시간 강사들은 5년 만에 7만명 선으로 급감했습니다.

맡았던 강의가 전임 교수들에게 돌아가면서, 빠듯했던 수입은 더 줄었습니다.

서너개 대학을 전전하거나, 과외 같은 아르바이트도 해야합니다.

[전유진 / 시간강사 경력 15년]
"시간 강사만 해서 생활이 되지 않아요.저도 이번 학기에 학교를 세군데 나가고 있는데, 저희가 다른 일을 같이 겸직을 해야되는 상황이예요."

[현장음]
"(약속을 하고 오셔야지, 일방적으로…) 아니, 항의 서한 전달 하는데 무슨 약속을 하고 옵니까, 항의하러 온거예요."

총장 면담을 요구했지만, 접근조차 거부된 시간 강사들.

이들에게 시간강사법은 '빛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임순광 /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
"흔히 말하는 껍데기만 교원, 무늬만 교원이라고 하는 것이 법에 다 명시가 되어있어요. 법이 시행되면 시간 강사보다 열악한 형태의 비정규 교원들이 양산될 것이다."

법대로라면, 시간 강사는 교원 지위를 얻어도

정규직 교원이 받는 공무원 연금이나 사학 연금은 커녕 연구비 청구조차 할 수 없습니다.

독소조항 투성인 시간강사법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진행중이지만,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
"그동안 여러 단체 협의가 불발이 됐어요. 판이 깨져버렸더라고요. 협의체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하는 가운데 이야기하자"

시간 강사들을 비용으로 보는 대학들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정부 당국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채널 A 뉴스 최주현입니다.

최주현 기자(choigo@donga.com)
연출 : 송 민
구성 : 고정화 이소희
그래픽 : 전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