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는 성난 불심(佛心) 어떻게 되돌렸나 [런치정치]

2025-08-23 12:00   정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오전 경북 경주시 불국사 경내를 스님들과 함께 걷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APEC 정상회의 준비상황 점검 차 경주에 들렀을 때 불국사를 찾았습니다. 조실 큰스님은 정 대표를 향해 "고향사람 만난 것 같다"며 친근함을 보였고 정 대표도 "제가 불교 고등학교를 나왔다"며 불교와의 인연을 강조했죠.

정 대표는 대표 취임 후 종교계 예방을 시작하며 불교계를 가장 먼저 찾았습니다. 지난 11일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만나 "당 대표로서 머슴 노릇 잘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죠.

불교계를 가장 먼저 만난 건 조계종 총무원장이 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 의장이기 때문지만, 불교계와의 남다른 인연도 작용했습니다. 4년 전 국감 때 '해인사 통행세' 발언으로 불교계에서 '제명 요구'까지 받았던 악연이 있었죠.

그런데 불교계를 취재해보니, 지금은 정 대표에 대해 꽤 우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비온 뒤 땅이 굳은 걸까요. 정 대표는 어떻게 불교계 마음을 되돌렸을까요.

"봉이 김선달" 발언에 대선후보까지 사과 

 지난 2022년 1월 전국 승려 5000여 명이 참석한 전국승려대회에서 스님들이 정청래 의원 제명과 문화체육부 장관 사퇴,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출처 : 뉴스1)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기억을 되살려보겠습니다. 발단은 2021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정청래 의원이 했던 발언이었습니다. 당시 정 의원이 경남 합천 해인사 문화재 관람료에 대해 "절과 3.5km 떨어진 밖에서 통행세를 내야한다.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라고 말해 불교계에서 집단 반발이 일었죠. 스님들은 전국 승려대회를 열고 정청래 의원의 제명과 문체부 장관 사퇴,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불교계 반발이 이어지자 당시 민주당 지도부와 이재명 대선후보까지 사과에 나설 만큼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 사태가 20대 대선 패배의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되기도 합니다.

"진심 다했다…문화재 관람료 문제도 해결"

 지난 2023년 5월 문화재관람료 감면 시행 첫날 충북 보은군 법주사에서 열린 매표소 명칭 변경 행사에 참석한 정청래 민주당 의원. (사진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이렇게 성난 불심(佛心)이 왜 누그러진 건지, 정 대표가 어떻게 상황을 돌파했는지, 다수 불교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공통적인 답변은 "정 의원이 진심을 다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조계종 관계자는 "정 의원의 사과는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았다. 어딜 가나 꼭 절에 들러 스님들에게 인사하고 '제가 그때 미처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건 카메라가 있든 없든 꾸준히 이어졌고 정 의원을 만난 스님들은 자연스럽게 그 진심을 알게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 스님은 "스님들의 기본 모토가 '자비'인데, 그 정도로 진심을 보이는데 마음이 안 풀릴 수가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정청래 의원은 다른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더 친근한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고요.

오히려 정청래 의원 덕분에 불교계가 늘 억울해하던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해결책을 찾게 됐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갈등 당사자였던 정 의원은 2022년 사찰이 문화재 관람료를 감면하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재 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해 본회의 통과를 이끌었거든요. 결자해지(結者解之)였죠.

조계종 지도부인 한 스님은 "정 의원이 그런 해프닝을 만들어준 덕분에 오히려 상황이 잘 해결되지 않았느냐. 한 때의 감정은 말 그대로 감정이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퇴출하라더니…4년 만에 '지지 현수막' 

물론 불교계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정 대표에 대한 지지세가 강해진 건 분명해 보입니다. 지난 전당대회 때 조계종의 한 사찰이 '정청래 민주당 당대표를 지지한다'는 현수막을 내걸 정도였으니까요. '정청래 퇴출' 현수막이 사찰들에 내걸린지 약 4년 만의 일이죠. 악연(惡緣)이 선연(善緣)으로 바뀐 겁니다.

결국 정 대표가 불심을 사로잡은 건 '스킨십'이었습니다. 스님들이나 불교계 관계자들 상당수가 정 대표에 대해 '인간적'이라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외부에 비춰지는 강성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 만나보면 눈물도 웃음도 많더라"고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정 대표를 만났을 때 "여당 대표가 됐으니 여당뿐 아니라 국민 전체를 잘 보시고 평안하게 하는 게 여당 수장의 역할"이라고 조언했는데요.

정청래 대표, 여야 간 강성 대치 국면도 진정성 있는 스킨십으로 풀어나가주길 기대해봅니다.

구자준 기자jajoonneam@ichanne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