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카메라]수십 년 쓰던 길 지워버린 ‘일몰제’

2020-11-27 19:42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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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 앞에서 사용하던 길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얼마나 막막할까요.

지난 7월 장기 도시계획에 묶여있던 부지들이 일몰제 시행으로 한번에 해제되면서, 여기저기 이런 소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배유미 기자의 현장 카메라입니다.

[리포트]
"20년 넘게 이용하던 길이 어느날 갑자기 막혀 버린다면 어떨까요? 이 도로에는 지난 달 가림막이 나타나 통행을 막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길은 한 사람이 지나갈 공간만 겨우 남았습니다.

[현장음]
"와, 여기 좁은데"

인근 공장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가림막이 문 바로 앞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김세동 / 통행로 막힌 공장주]
"참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고, 한 마디로 당황했죠. 25년 간 계속 우리가 이 도로를 사용해 왔고."

공장은 임시방편으로 새 문을 뚫고 직원들이 자재를 손으로 나르고 있습니다.

[김세동 / 통행로 막힌 공장주]
"일일이 들고 다녔죠 억지로. 도저히 안돼서 응급처치로 뒷집에 주인한테 말해서 당분간만…."

1988년 도시계획에서 도로로 지정됐던 공장 앞 땅이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일몰제로 해제된 게 발단이 됐습니다.

땅 주인이 재산권을 주장하며 가림막을 설치한 겁니다.

땅주인은 도로를 계속 쓰려면 부지를 사라고 공장 측에 요구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일감이 크게 준 상황에서 속앓이만 하고 있습니다.

땅을 돌려받은 땅주인들도 할 말이 많습니다.

[배유미 기자]
"이 오르막길을 따라 집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요, 길 가운데 울타리가 쳐졌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공간만 남아 있습니다."

45년 간 도로로 사용되던 이 땅 역시 도시계획이 해제됐습니다.

하지만 땅 밑에 상·하수도와 도시가스 시설이 매설돼 부지 활용은 엄두를 못냅니다.

재산세만 두 배 이상 올랐습니다.

[오영표 / 땅 주인]
"상,하수도 있는데 건축 허가 나겠어요? 건축 허가 난다고 해도 이 집하고 저 집하고 거리를 띄워줘야 할 것이고. 특별히 할 게 없어요."

수십 년 간 사용한 길을 잃어버린 주민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김영정 / 인근 주민]
"우리도 몰랐는데 주인이 있었다는데요. 구청에 전화했어요, 내가. 윗쪽으로 올라가다가 차가 사고 난다든가 하면 차 어떻게 빠지냐고."

공원이나 도로 등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됐다 지난 7월 이후 해제된 토지는 전국에 569km2.

대전시 면적보다 넓습니다.

지자체들이 도시공원 조성 등 공원 부지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도로 부지 문제는 개인 간 협의나 민사 소송 외에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지자체 관계자]
"국토교통부에서 도시계획시설 실효 대비 업무지침에 민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고 지침이 내려와 있습니다."

지자체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일몰제가 재산권 침해와 이웃 간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현장카메라 배유미입니다.

yum@donga.com

영상취재 : 김건영
영상편집 : 이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