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종현 회장 안목, SK그룹 성장에 큰 역할?

2025-04-10 12:50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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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녹음 기록을 들어보니, 한국의 경제 성장에 동참했던 기업가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경제산업부 신선미 차장, 카이스트 이지환 교수와 좀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Q1. 이번에 공개된 녹음 자료들은 디지털로 다시 정리됐다는데, 그 양이 방대하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복원된 자료를 보면 오디오와 비디오만 5300건, 문서 3500건 등 모두 13만여 점입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육성 녹음만 해도 3530건인데요.

하루 8시간씩 들어도 1년 이상 걸릴 만큼 방대한 분량입니다.

Q2. 고 최 회장은 회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강조했네요. 미래를 내다봤다고 해야겠죠?

네 맞습니다. 앞을 내다보는 기업만이 장수를 한다고 하죠. 

최종현 선대회장은 우리나라 산업이 하드웨어 제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소프트웨어 산업의 고부가가치를 역설하곤 했습니다.

선대회장은 사업 방향을 두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임원들과 토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육성 직접 들어보시죠.

[최종현 선대회장]
"한 집에 냉장고를 갖다가 5개, 6개씩 있는 집이 없잖아. 그러니까 하드웨어는 성장에 한계가 있지. 그럼 앞으로 경제 발전을 뭘로 할 거냐 이런 얘기야. 소프트야. 소프트."

현재 SK그룹의 핵심 사업은 반도체와 바이오죠.

모두 최종현 선대회장이 일찍부터 앞을 내다보고 고부가가치 사업에 뚝심 있게 투자한 결과물로 평가되는데요.

반도체 사업은 1978년 10월 ㈜선경 자회사로 설립한 선경반도체가 출발점입니다. 

지금은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AI 반도체인 HBM을 생산하며, 전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죠.

특히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습니다. 

1993년에 출발한 바이오 사업도 독자적으로 개발한 뇌전증 신약을 미국에서 판매할 정도로 성장했고, AI를 활용해 신약 개발 속도도 단축하고 있습니다.

Q3. 최종현 회장의 독특한 그룹전략이 SK를 우리나라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 할 수 있었다고요?

최종현 회장의 경우 사업적인 성과와 더불어, 우리나라 다른 기업과 매우 차별화되는 유산을 남김.

1979년에 첫 제정한 선경경영관리체계, 지금은 SKMS라고 불리는 것인데 경영철학을 담은 것. 현재 SK그룹은 여러 계열사를 두고 있지만 모두 이 SKMS를 기반으로 기업 비전과 문화를 공유하되 각사의 자율성도 존중하는 소위 “따로 또 같이”라는 그룹 전략을 추구하고 있음.

1979년에 나온 선경관리체계 초판은 “기업은 영구히 존속, 발전해야 한다”는 말로 시작하는데 사람과 달리 통상적인 수명의 한계가 없는 기업은 전략적인 혁신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걸 강조한 것.

그리고 혁신을 위해서는 경영진의 리더쉽을 바탕으로 연구개발, 생산, 마케팅, 그리고 경영지원 등 기업내 다양한 활동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로 움직여야 한다는 행동강령까지도 제시.

Q3-1. 어떤 것들을 예로 들 수 있을까요?

1980년에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한 최종현 회장은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중장기적으로 유공을 단순한 정유회사가 아닌 종합에너지 회사로 키워야 한다고 사내 간담회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

이 종합에너지 회사의 개념에는 그로부터 한참 후에나 화두가 된 태양에너지, 원자력, 배터리 등이 포함되어 있음.

나아가 Super와 Excellent를 결합한 “SUPEX”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자는 의미. 이처럼 고유한 비전, 목표, 조직운영, 그리고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SK는 혁신적인 기술개발과 더불어 도전적인 사업화를 빠르게 추진해서 기술과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역량을 보여주었음. R&D와 R&DB 차이.

윤활기유, 2차전지 분리막, 고성능 폴리에틸렌, 뇌전증 치료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

Q4. 미국발 관세폭탄을 비롯해, 환율 등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안팎의 변수들이 많습니다. 과거에도 우리 기업들은 많은 어려움을 스스로 헤쳐왔죠. 석유파동 당시에도 국가 위기 상황 극복에 SK가 역할을 했었다고요?

원유 공급을 이끌어내며 2차례의 오일쇼크를 이겨내는데 기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최종현 선대회장의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의 인맥이 큰 역할을 했는데요. 

1차 오일쇼크는 1973년입니다. 두 달 사이에 원유 가격이 4배로 치솟았는데요. 

석유수출국기구 OPEC이 한국의 정유 3사에 원유 공급을 줄이겠다고 통보하자 우리 정부는 당시 김종필 총리를 포함한 민관사절단을 사우디아라비아로 급파했는데요.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하자 최 선대회장이 구원투수로 나선 겁니다.

육성 직접 들어보시죠.

[최종현 선대회장]
"원유가 모자라서 나라가 힘든 것을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얘기를 해서 그때도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고. 그래서 박 대통령 시절에 내가 굉장히 고마운 것을 했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박 대통령한테 칭찬도 받고."

Q5. 최종현 선대회장은 당시 어떻게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맥이 있었던거죠?

선경그룹의 석유산업 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사우디 왕족은 물론 사우디 정·재계 인사들과 끈끈한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문제는 이란의 석유 수출 중지 조치로 1978년 말부터 1979년까지 2차 오일쇼크가 또 발생한 겁니다. 

우리나라는 다시 한 번 위기에 빠지는데요.  

당시 얼마나 심각했냐면 원유 재고가 바닥이 나자 서울 시민들은 남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난방을 해결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때도 최 선대회장이 해결사로 나섰는데요. 

당시 배럴당 42달러에 거래되던 원유를 24달러에 하루 5만 배럴씩 공급받으면서 2차 오일쇼크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Q6. 정부도 해결못한 오일쇼크를 기업이 해낸 것처럼 과거 기업들은 한국 경제 성장에 큰 힘이 됐죠?

해방 직후 산업 기반은 대부분 북한에 있었고,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세계 경제에서 우리나라 GDP 순위는 40위권 밖이었음.
1인당 GDP는 250달러 내외에 불과해 당시 기준으로 태국, 필리핀, 콜롬비아와 비슷한 수준이었음. 그런데 50여년 만에 GDP 순위가 12위 안팎으로 오른 것임.

1970년대와 80년대에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한 정부의 역할도 물론 중요했지만, 급속한 산업화와 수출주도 성장을 견인한 민간 기업의 역량이 우리 경제를 양적으로, 질적으로 급격히 발전시켰음.

1980년에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서 우리나라 최초 민간 정유회사인 유공을 설립한 선경의 사례를 비롯하여, 삼성의 반도체 산업 진출, 현대의 건설, 자동차, 조선 산업 개척, LG의 전기전자 설립 등. 이처럼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대기업들 사례 외에도 중견, 중소기업들이 일궈낸 사례도 매우 많음.

Q7. 최종현 선대회장 육성 중에는 논란이 되고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과 관련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이 내용이 궁금한데 증권사를 사는데 사돈 비자금은 사용하지 않았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당시 선경그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들여 태평양증권을 사들였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내용인데요. 

직접 들어보시죠.

[최종현 선대회장]
"무슨 내가 돈이 없어서 말이야. 4300억씩 일시불을 하고서 제 2이동통신을 사는데 무슨 증권회사의 뭐 저기 사는데 사돈한테 비자금 빌려다가 내가 산 거모냥. 누가 보더라도 이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니냐"

설득력은 있습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회장이 소송 중이하 사법부의 판단은 더 지켜봐야겠지만요.

Q8. 이동통신 인수에 커다란 프리미엄도 치렀는데, 증권회사 인수에 남의 돈을 왜 빌렸겠냐는 얘기도 나왔다고요?

오히려 비자금을 조사하던 검사가 "왜 수지 안 맞는 장사를 하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는 건데요.

이에 최종현 선대회장은 정부 허가니까 커다란 대가를 치른 거라고 말합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최종현 선대회장]
"그런데 뭐 그 증권회사를 하면서 돈이 없어서 대통령 돈을 빌려다가 그거를 했겠냐고. 그정도 돈은 우리가 얼마든지 움직인단 말이야"

Q9. 증권사에 이어 한국이동통신 지분 인수도 오히려 더 비싸게 주고 샀다고요?

당시 상황을 보면 공개입찰로 시가보다 비싼 4300억 원에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합니다. 

주식 공개매각 발표 전만 해도 8만원 대였던 한국이동통신 주가가 30만 원까지 올라갔는데요. 

시가보다 높은 주당 33만5000원을 투입해 인수하다보니 승자의 저주라는 말도 나왔었습니다. 

당시 입찰 기업들이 써낸 주당 평균가격은 18만7400원이었거든요.

SK 입장에선 특혜 의혹과 비난을 씻어내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했던 셈입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최종현 선대회장]
"우리 그룹 전체를 생각하면 캐시 플로우가 8천억 원~1조가 되니까 몇 달 죽어라 하고 또 열심히 벌면 그 돈은 뭐 이제 우리가 벌 수 있는 거고. 그런데 사람이 병 나면 그건 큰일 나는 거 아니냐. 2천 몇 억 그냥 정부에 더 줬다 이렇게 하니까 속은 내가 편하더라"

Q10. 당시 사돈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신경쓰여서 전경련 회장직도 일부러 고사했다는 내용도 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육성을 들어보면 사돈이 대통령인데 내가 재계에서 전경련 회장을 할 수 없지 않냐는 언급이 있는데요. 

세간의 오해를 우려해 고사를 했고, 이에 유창순 전 국무총리가 2년 더 재임해 4년간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는 겁니다. 

수락한 건 거절할 명분이 없어진 김영삼 정부때에야 어쩔 수 없이 맡게 됐다고 언급합니다. 

직접들어보시죠.

[최종현 선대회장]
"6공화국이 끝나고 나니까 이제 다음에는 내가 익스큐즈가 안 통하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경련 맡은거다. 내가"

Q11. 최종현 선대회장은 '신뢰'를 중시했죠? 외국담배회사로부터 대리점 사업 권유를 받았지만 선경의 기업문화와 맞지 않다고 거절한 적도 있다고요?

네 맞습니다. 사실 담배 사업은 남는 장사라고도 하죠.

영업이익이 30%에 달할 정도니 대리점 사업을 권유받았다면 하는 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최종현 선대회장도 당시 돈만 보면 틀림없이 해야하는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몸에 좋지 않은 담배를 파는 건 선경의 기업문화와 맞지 않아 거절했단 건데, 경영에 있어 신뢰를 중시했던 겁니다.

육성 직접 들어보시죠.

[최종현 선대회장]
"역시 선경은 뭐가(경영철학) 확고하니까 더 이상 자기네들이 대리점 사업 해달라고 안 하겠다고. 그러면서 담배를 열심히 피워. 뭐 이렇게 담배를 많이 피냐? 그러니까 우리가 담배 회사인데 우리가 안 피우면 어떻게 하겠냐. 그러면서 피더라고. (사업이) 겉으로만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직원들하고 관계가 있는거야."

Q12. SK그룹은 사회적 가치 창출이나 이사회 중심 경영으로 ESG에서도 앞서가고 있죠?

ESG 경영이 SK그룹이 추진하는 기업전략의 중심축이라는 표현까지도 쓸 수 있을 것.

예컨대 유공이 모태가 된 SK이노베이션은 여전히 에너지 업종에 속하지만, 2020년대 들어 그린 비즈니스, 즉 친환경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한다는 비전과 전략을 일찍이 세움.

SK그룹은 2050년까지 넷제로, 즉 탄소순배출 제로 달성을 목표로 천명했고,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RE100 캠페인에도 가입. SK는 우리나라 글로벌 사회에서 “사회적 가치”라는 개념이 확산되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

예를 들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스타트업들이 만들어낸 고용창출, 환경보존, 건강증진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환산해서 보상하는 사회성과 인센티브 제도를 고안하고 시행해서 세계경제포럼 등에서 놀랍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음.

또한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사외이사 비중을 높이고 권한을 강화해서 제대로 일하는 이사회를 만든다는 소위 “이사회 중심 경영”을 필두로 기업 경쟁력과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2000년대 초반부터 기울여 왔음.

네 경제산업부 신선미 차장, 카이스트 이지환 교수였습니다.

신선미 기자 new@ichanne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