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3 12:29 정치 사진 : 유튜버 김어준 씨가 2024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계엄 사태 당시 암살 제보와 관련해 폭로하고 있다. (출처 : 뉴스1)
더불어민주당 출입 기자들의 주요 일과 중 하나는 당 소속 의원들의 발언을 챙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챙겨 들을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이죠. 인터뷰를 잘 안 하는 정청래 대표도 게시판에 글을 자주 남기고,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출연하니까요.
과거엔 출연하는 정치인의 얘기를 들었는데, 요즘은 '범여권 최대 스피커'인 진행자 김어준 씨의 말이 더 기사화 되고 있습니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전준철 변호사 2차 특검 후보 추천 논란' 국면에서 적극 목소리를 냈으니까요. 이번주만 해도 "(2차 특검을) 전준철이 했어야 한다"(지난 9일), "청와대 민정실이 전준철을 걸러냈어야 한다"(지난 11일)고 발언 쏟아냈죠.
김 씨는 스스로를 언론인이라 칭하지만, 정치권이나 미디어에선 김 씨를 '범여권의 주요 플레이어'로 보는 상황입니다.
방송 27분 출연 뒤 후원금 마감
김 씨는 여권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고 있을까요. 지난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난 후 당시 박찬대 의원을 도왔던 한 의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출마 선언 후 박 의원이 김어준 방송에 출연했더니 30분 중 29분은 불리한 얘기만 하더라. 그때 속으로 '아, 게임 끝났다' 싶더라"고요. 과장이 섞였겠지만, 김 씨 방송 30분으로 전대 결과가 판가름 났다고 말할 정도니 그 영향력을 부정할 순 없을 겁니다.
특히나 인지도가 낮은 '신인' 정치인들에겐 김 씨 방송에 출연하는 것만큼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지지층을 확보하는 데 좋은 수단이 없습니다. 지난해 10월 2일, 초선 차지호 의원 출연분을 보면요. 차 의원이 "후원금이 10%밖에 안 찼다"고 하자, 김 씨가 차 의원에게 '후원금 계좌 번호'가 적힌 팻말을 들게 하는데요. 방송이 끝난 직후 차 의원은 자신의 후원금 모금이 마감됐다며 감사 인사를 올렸습니다. 270일 동안 열심히 의정 활동해도 10%밖에 안 모였는데, 김어준과 27분 방송했더니 90%가 차버린 겁니다.
지난 2022년엔 김 씨가 여론조사 기관 '여론조사 꽃'을 만들면서, 여권 내 직간접적 영향력이 더 커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특히 전국 선거를 앞둔 시기 '당내 경선' 조사에서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건데요.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여론조사 꽃은 여권 성향 정치 고관여자들이 적극 응답할 확률이 높다"면서 "특정인의 이름을 여론조사에 넣고 방송 출연까지 패키지로 해서, 마음만 먹으면 김 씨가 경선에서 힘 실어주는 건 일도 아니다"고 했습니다.
"자기 주관 섞어 말하면 '사이버 렉카'" 비판
최근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국면에서도 김 씨는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방송을 통해 "합당해야 한다", "정청래가 친명 아니면 누가 친명이냐"며 마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심지어 진보진영 스피커인 유시민 작가까지 등판시켜 "합당에 반대하는 건 절차 시비일 뿐"이라며 범여권 총결집을 압박했죠. 하지만 당내 반발에 합당이 무산되면서 김 씨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게 아니냔 해석도 나옵니다.
영향력이 너무 커진 탓일까요. 여권 내부에서 '탈(脫) 김어준'을 외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의원이 "유튜브 권력이 정치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김 씨에게 직격탄을 날렸죠.
당내 얘기를 들어보니, 곽 의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한 친명계 재선 의원은 "정청래와 김어준이 중심이 된 새 카르텔이다. 자기들이 대통령도 만들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다"고 했습니다. 한 수도권 초선 의원도 김 씨를 겨냥해 "자기 주관을 섞어 선악을 구분하는 건, 언론인이 아니라 '사이버 렉카'다. 세상이 자기 발밑에 있는 줄 안다"고 직격했습니다.
최근에는 동료 의원이 한 기자 출신 의원에게 "김어준 대신 당신이 직접 아침에 유튜브 방송을 해보는 게 어떠냐? 그리고 거기에 의원들이 출연해서 우리가 내야 할 메시지를 내자"는 제안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당내에선 김어준의 영향력에 대한 위기 의식을 느낀다는 뜻이기도 하죠. 최근 '뉴스공장'의 구독자가 2만 명가량 줄어들었다고 하니, 지지자들도 이런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레거시 미디어의 한계를 뛰어넘겠다고 나선 김어준 씨가 '감시자'보다 '권력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단 평가도 나옵니다. 여권 일각의 비토 속에서 '민주당 상왕'으로 불리던 김어준 씨의 견고한 영향력 이어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