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에 북한 담화?…다 같은 ‘말’ 아닙니다 [런치정치]

2026-08-29 11:30   정치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이나 우리 정부를 비난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담화'입니다. 메시지는 얼핏 비슷해 보여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의도와 무게가 제각각인걸 알 수 있습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어떤 형식으로 메시지를 내느냐에 정치적 의미가 다른 겁니다. 북한의 어느 매체에 담화가 실렸는지, 몇 시에 발표했는지 등에도 북한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누가 말했나'에 숨겨진 의미

북한 메시지의 무게를 가르는 첫 번째 기준은 '누가 말했느냐'입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4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26일 보도했다.(뉴시스)
가장 무게가 큰 것은 물론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내놓는 메시지겠죠. 김 위원장의 동생이자 대남·대미 문제에 깊숙이 관여해온 김여정 부장이 직접 나서는 경우에도 상당한 정치적 무게가 실립니다.

그 아래로는 최선희 외무상 등 고위 당국자의 담화가 있고 외무성·국방성 대변인이나 국장급 인사 명의의 메시지도 종종 나옵니다. 이밖에 특정 당국자의 이름 없이 조선중앙통신이 자체적으로 내놓는 '논평'은 상대적으로 격이 낮은 메시지로 평가됩니다.

지난 19일 북한의 반응이 대표적입니다. 조선중앙통신은 한미연합훈련 을지 프리덤 실드(UFS)를 비난하며 "자위적 권리 행사는 더욱 명백한 행동으로 표현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말 자체는 강경했지만 김여정 부장이나 외무성·국방성 등 고위급·당국 명의의 담화가 아닌 조선중앙통신의 자체 논평이라 ‘북한이 수위를 조절했다’는 전문가 평가가 있었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연합훈련 규모를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하면서 김 위원장과 자신이 "매우 좋은 관계"라고 강조한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이 미국의 손짓에 당장 화답하지 않으면서도 비난 메시지의 격은 낮춰 북미대화의 판 자체를 깨지는 않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이유입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가장 격이 높은 것은 정부의 성명이고 다음이 담화, 그 뒤가 질의응답, 마지막이 논평 순"이라며 "상대방이 공식적으로 무언가 제의하면 담화로 대응을 하고 공식 제의가 없는 상황에선 입장 표명을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같은 날 밤에는 김여정 부장이 직접 입장을 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훈련 축소 조치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관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훌륭하다"고 평가한 겁니다.

양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북한을 향한 러브콜은 공식 제안이 아니기 때문에 김여정이 입장 표명을 한 것이고 한국 측에 대해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경축사 등이 있었기에 이에 북한이 반응하고자 담화를 발표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조중통이냐 노동신문이냐…밤 10시에 담화 내는 이유

북한이 메시지를 어느 매체에, 몇 시에 내놓는지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의 공식 입장을 외부에 전달하는 ‘대외 발신’ 기능이 강한 관영통신입니다. 반면 노동신문은 노동당 기관지로 북한 주민들이 접하는 대표적인 대내용 매체입니다.

때문에 대남·대미 메시지가 조선중앙통신에만 실렸다면 우선적으로 한국이나 미국 등 외부를 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노동신문에까지 같은 내용을 싣는다면 외부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도 해당 입장을 알리겠다는 의미가 더해집니다.

 연내 북미 정상회담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과거 회동 사진을 현지시각 지난 24일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만난 모습. (뉴시스)
발표 시간에도 북한의 의도가 숨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지난 19일 밤 10시쯤 '주요 국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던 김여정 부장, 20일에는 밤 9시쯤 다시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평양에서는 늦은 밤이었지만 미국 워싱턴은 각각 오전 9시 전후죠. 미국 정부가 하루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대로 현지 언론의 관심을 받기에 딱 좋은 시간입니다.

김정은 메시지는 언제?

국제사회의 관심은 김정은 위원장의 입에 쏠려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매우 좋은 관계"를 거듭 강조하며 대화의 손짓을 보내고 있지만 김 위원장은 아직 직접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가장 최근 발언은 지난 25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나왔습니다. 경제 등 주요 정책 과제를 언급했을뿐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안이나 북미관계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다음 달 9일은 북한 정권수립 78주년입니다. 김 위원장의 연설이 예정된 것은 아니지만 북미대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직접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됩니다.




박선영 기자 tebah@ichanne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