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경선 '최종 2인' 발표를 하루 앞둔 어제(28일) 홍준표 후보 메시지에 자주 등장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당권'입니다. 치열한 대권 경쟁 와중에 난데없이 당권을 수차례 언급한 이유는 뭘까요. 지금 대권 주자들의 움직임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책임질 당권과도 무관치 않기 때문입니다.
"당권에 눈먼 사람들" 저격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어제(2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해 간담회를 갖고 발언하고 있다. (출처 = 뉴시스) 홍 후보, 어제 아침 SNS에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습니다. "대선보다 당권에만 눈먼 사람들"이라며 "나홀로 고도(孤島)에서 대선 치루는거 같다"고요. 당초 자신을 지지하기로 했다가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현역 의원을 겨냥한 겁니다.
같은 날 올린 또다른 글에선 "나는 대선에만 집중하지 당권에는 전혀 관심 없다"며 "후보가 되어 패배하면 그 책임을 지고 바로 정계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계 은퇴' 배수진을 치며 본선 후보가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SOS를 친 글인데, 여기서도 '당권'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의원들 만나서도 "당권 생각 없다"
홍 후보, "이미 당 대표를 두 번이나 한 사람이 다른 후보들처럼 당권이나 잡으려고 나왔겠냐"고 했는데요. 그가 당권을 계속 언급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당 중진 의원들은 물론 소위 '친윤'으로 불리는 의원들의 물밑 움직임이 '당권'과 연관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권력 의지가 강한 홍 후보, 스스로를 '독고다이'라고 부르며 어느 계파에도 소속되지 않음을 강조해왔죠. 당내 의원들 사이에선 홍 후보가 대권 도전 이후 당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 것도 사실입니다.
한 중진 의원은 "홍준표 후보도 결국은 대선에서 떨어지면 당권에 나설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홍 후보가 당 대표가 될 경우 독고다이 정치 스타일 고스란히 드러날 텐데, 과연 현역 의원들이 좋아하겠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나 당권 도전 안한다, 정계은퇴까지 생각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의원들에게 전달했다는 게 홍 후보 측 설명입니다. 홍 후보, 최근 만난 의원들 앞에서도 "당권 생각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고 합니다.
"차기 당권, 내년 지방선거에 영향력"
현역 의원들 입장에선 대권도 중요하지만,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권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지방선거 공천권을 가진 리더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그들의 정치적 입지가 갈리기 때문입니다.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대선 이후 당권은 지방선거 뿐 아니라 차기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세 지도부이기 때문에 현역 의원 입장으로서는 너무 중요하다"고요.
오는 6월 대선 두 달 뒤인 8월쯤 전당대회를 치러 새 당대표를 뽑을 경우, 당헌당규상 규정된 정식 당 대표 임기는 2년입니다. 그 사이 변수가 없다면 2027년 8월까지는 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 안에 지방선거(2026년 6월)를 치르고, 그 다음해(2028년 4월) 총선을 앞둔 거죠. 그만큼 중요한 자리입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탄핵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어차피 불리한 입지에 놓여있는건 사실"이라며 "차라리 근소한 차이로 지는, 이른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전략으로 당을 지키고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승리하는 전략을 세워야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의원들, 대선 주자를 돕는 것도 신중할 수밖에 없겠죠. 특정 후보 캠프에 직함을 올렸다가 뒤늦게 아니라고 정정하는 일이 벌어진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습니다. 대권 판도에 따라, 차기 당권 주자가 결정되고, 이 주자에 따라 포스트 대권 향배도 윤곽을 드러낼 테니까요.
대선 경선, 당권 경쟁 전초전?
당권을 앞둔 치열한 셈법 중심에는 한동훈 후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대선 결과가 어떻든, 경선에서 한동훈 후보가 유리한 고지에 오르면 차기 당 대표나 비대위원장에 다시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한 관계자는 "한동훈 후보가 경선에서 2등을 하더라도, 우리 당이 대선에서 지더라도, 그에게는 당권에 도전할 확실한 명분이 생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한 후보는 '계엄에 반대하고 끊임없이 대통령에게 쓴소리 해온 내가 맞았다'면서 정치적 정당성을 내세울 거라고 보는 거죠.
한 후보를 반대하는 친윤 의원들은 이를 저지할 수밖에 없는 구도에 설 것이란 관측입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단일화할 수 있는 후보를 물밑 지원한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동훈 후보가 당권을 갖는 건 막아야 한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는 겁니다.
벌써부터 의원들 사이에선 대선 이후 당권 구도를 그리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 의원은 대선에서 질 경우를 가정해 "한동훈 후보는 100%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고 그에 대적할 후보로는 홍준표 후보뿐일 것"이라고 전망하더라고요. 또다른 구여권 인사는 "대선 결과야 어떻든 김문수 후보도 당권에 생각 있을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원들하고 당협위원장들이 모이는 것 아니겠냐"고 했습니다.
김기현·권성동·나경원·윤상현 의원이 벌써부터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보수 진영에서 팬덤이 강한 한 후보를 견줄 상대 후보에 의원들의 관심이 쏠리는 거죠. 사실상 차기 당권 경쟁을 앞두고 치열한 수싸움이 이번 대권 경쟁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