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단독/임태희 “2009년 정상회담 비밀접촉” 첫 공개

2012-06-20 00:00   정치,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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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2009년 남북의 싱가포르 비밀 접촉의 진실을 처음 공개했습니다.

"국군포로 이산가족 납북자 문제들에 대한 북측의 인도적 조치에 상응해서 우리가 식량이나 기타 물품들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서 상응하는 조치의 형식으로“

즉 ‘돈을 주고 자유를 사는’, 한국판 '프라이카우프'가 양해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신석호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리포트]
2009년 10월에 북한 김양건 통전부장을 싱가포르에서 만나서 연내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예, 사실입니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것 사실입니다.”

2009년 정상회담 논의를 위해서 김양건 통전부장을 적어도 세 차례 이상 만나셨지요?

“숫자는 말씀드릴 수 없는데 여러 번 만났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놓고 북한과 가장 가까이 다가섰던 싱가포르 비밀접촉.

남측 주역인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그 진실을 공개하기까지 꼭 2년 8개월이 걸렸습니다.

당시 임 전 실장과 북측 김양건 부장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양해각서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양해의 핵심은 북한이 국군포로와 납북자 일부를 송환하고 남한은 그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하는 한국판 '프라이카우프' 였습니다.

"국군포로 이산가족 납북자 문제들에 대한 북측의 인도적 조치에 상응해서 우리가 식량이나 기타 물품들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서 상응하는 조치의 형식으로."

회담에서는 북한 지역 내 국군 유해 송환 문제도 정식 의제로 논의됐습니다.

“우리가 제의해서 그것에 대해서 함께 공동 노력을 하고 구체적으로 실천 문제 까지도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양해각서 초안에 대한 최종 합의는 남북 당국간 회담에 넘겼습니다.

“이에 따라 남북 당국간 비공식 회담이 한 달 뒤인 2009년 11월 개성에서 열렸습니다. 하지만 최종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고 다음해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채널A뉴스 신석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