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쇼츠 촬영장”…정쟁·먹방·노래까지 찍어야 산다? [런치정치]

2025-10-04 12:00   정치

 1. 국회 법사위 소속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추미애 법사위원장과 함께 한 쇼츠를 올리며 ‘추장군’ ‘서장군’이라고 해시태그를 달았다.(왼쪽) 2.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추석을 앞두고 시장에서 옥수수를 먹으며 시민들과 촬영하는 모습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지금 나를 빤히 찍고 있는 저 사람 누구야."(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아 왜요! 다 찍고 있잖아. 지금!"(곽규택 국민의힘 의원)
"누구야 누구야 누구 보좌진이야."(서영교 의원)

지난달 24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정부조직법 등 주요 법안 처리를 위해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등 기관 증인들 앉혀놓고 돌연 고성이 오갔습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 자신을 촬영 중인 국민의힘 보좌진을 발견하고 화를 낸 건데요. 곽규택 의원은 상호 합의로 촬영해왔으면서 왜 그러냐고 맞받았죠.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들, 요즘 서로 싸우는 장면을 '쇼츠(짧은 동영상)'로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기 바쁩니다. 서로 촬영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졌고, 결국 회의가 정회되기에 이른 겁니다.

법사위 관계자에게 진상을 물어보니 "이런 기 싸움, 언론에 공개 안 되는 법사위 소위에서부터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소위 회의실에서도 보좌진들은 카메라를 들고 의원들 찍기에 분주하다는 데요. 민주당 강성 지지층, 국민의힘과 각세워 싸우는 의원의 모습에 더 열광한다는 겁니다.

의원실 직원 절반이 '유튜브 담당'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국회는 쇼츠 촬영장 아니냐"고요. 지지층에 각인되려는 의원들의 쇼츠 경쟁,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민주당 지도부 소속 한 의원실은 직원 절반이 유튜브 제작을 담당합니다. 다른 의원실은 비서관과 인턴이 직접 영상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구독자가 곧 지지자들이니, 유튜브 정치가 우선이란 겁니다. 민주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한 의원은 그날 유튜브에 영상 업로드가 안 되면 '왜 아무것도 안 올라오느냐'는 항의 전화가 쇄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더불어민주당에서 유튜브 구독자 1등은 누굴까요. 독보적인 1등이던 이재명 대통령(177만)이 국회를 떠난 후 정청래 대표가 1등(70만)이 됐죠. 이어 김병주 최고위원이 2등(51만)을 달리고 있습니다. 박주민 의원(35만), 추미애 법사위원장(31만), 서영교 의원(18만), 박찬대 의원(17만)이 뒤를 잇는데요. 한 의원실은 하루도 빠짐없이 영상을 올리고, 쇼츠는 적어도 하루 3~4개씩 제작한다는데요. 잘 나온 쇼츠 조회수는 일반 동영상 조회수의 몇백 배가 되기도 하거든요.

조회수 끌어올리는 건 '먹방'

 박찬대 의원의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높은 것은 먹방 영상이다.
어떤 콘텐츠로 지지층을 공략하느냐도 관건입니다. '서영교TV' 쇼츠 영상 조회수 1위(341만)는 '김밥 먹방(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입니다. 10초가 안 되는 이 영상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촉구 도보 행진 날 서 의원이 부승찬 의원과 본청 앞 계단에 앉아 김밥을 먹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3천여 명의 지지자들이 "존경한다" "인간미가 넘친다"는 댓글을 달았는데요.

정청래 대표가 나무젓가락으로 닭꼬치 살을 발라 먹는 쇼츠도 387만 회를 기록했습니다. 박찬대 전 원내대표의 쇼츠도 조회수 1~4위 중 3개가 먹방이었습니다.

추석 앞두고 의원들이 유튜브에 올린 단골 영상도 '시장 먹방'이었는데요. 시장 상인들과 소통하며 입이 찢어져라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으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전략을 택한 거죠.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홍보전'

민주당 의원들의 쇼츠 전쟁, 내년 지방선거와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민주당 대표 경선 이후 공개 행보가 적었던 박찬대 의원, 유튜브에서는 지지층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는데요. 한동안 뜸했던 노래 부르는 영상도 많이 올리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박 의원이 내년 인천시장 선거에 도전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는데요. 공교롭게도 구독자 수 상위에 오른 김병주, 박주민, 추미애, 서영교 의원도 지방선거 출마를 고심 중이죠. 김병주, 추미애 의원은 경기지사, 박주민, 서영교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이 예상됩니다. 김병주 의원은 아예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경기지사 출마를 시사했죠.

여의도 정치도 '구독·좋아요·알람설정' 늘리기에 매달리는 시대가 됐죠. 의원들이 구독자 늘리고 영상 조회수 높이려 강성 지지층 입맛에 맞춘 메시지 내는데 골몰한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유튜브가 건강한 공론의 장이 될 수 있을까요.

박자은 기자 jadooly@ichanne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