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시그널은 채널A 법조팀의 온라인 코너입니다. 2분 짜리 방송 리포트에 다 담지 못한 취재 뒷 얘기와 해설을, 때로는 기자의 주관을 담아 전하는 ‘법조 에세이’기도 합니다.]
지난 5일, 대검찰청에선 한 공직자의 퇴임식이 조촐하게 열렸습니다. 검찰 고위 간부가 퇴임할 때처럼 거창한 연설도 없었지만, 검찰 역사의 ‘산 증인’이 일을 마친 순간이었습니다. 35년 3개월. 대검찰청의 문턱을 지킨 유연호 전 방호실장이 주인공입니다. 방호행정관으로, 누구보다 오랫 동안 대검에 머물며 일해온 유 전 실장을 만났습니다.
◆“격식 안 따지는 윤석열, 반듯한 이원석”…검찰총장 24명 거쳐
유 전 실장이 방호행정관 일을 시작한 건 1989년 4월 3일입니다. 검사들은 근무지를 옮겨다니지만, 유 전 실장은 대검찰청에서만 35년 넘게 일했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검찰총장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습니다.
김기춘 총장부터 이원석 총장까지. 그동안 스물 네 명의 검찰총장을 거쳤습니다.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총장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한 건 1988년입니다. 하지만 임기를 모두 채우고 무사히 퇴임한 사례는 8명 뿐입니다. 김기춘 전 총장은 박근혜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올랐지만,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유 전 실장이 일하는 동안 많은 검사들이 대검을 거쳐갔습니다. 무탈히 공직을 마친 사람도 있었지만, 수사를 받고 불명예스럽게 은퇴한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유 전 실장은 “개인을 보면 다 괜찮은 분들인데, 자신이 쌓은 명예를 무너트리는 사례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죠.”
최근 몇 년 동안, 검찰총장의 검정색 세단이 대검 청사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건 유 전 실장이었습니다. 취재진이 몰릴 때면, 기자들 못지 않게 긴장하고 돌발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게 그의 일입니다.
“윤석열 총장님은 인간적인 모습이 좀 있는 스타일이었죠. 격식 같은 데 얽매이지 않는 편이고요. 그 때 윤석열 총장님이 제 어깨를 툭 치신 적이 있었잖아요? 그게 방송에 나갔는데, 한 20년 만에 전화연락이 온 친구도 있었어요. 반대로 이원석 총장님은 엄청 반듯하세요. 흐트러짐이 없는 분이죠. 퇴근하실 때 항상 오늘도 고생했다, 수고했다 인사를 해주시죠.”
유 전 실장이 말하는 장면은 2020년 12월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입니다. 윤석열 총장이 정직 2개월 징계로 직무에서 배제됐다가, 법원에서 집행정지 결정이 나면서 서초동 대검 청사로 복귀한 날입니다. 그 순간에도 검찰총장이 차에서 내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유연호 방호실장이었습니다. 막상 유 전 실장은 “총장님이 제 어깨를 친 줄은 나중에 영상을 보고 알았다”고 말합니다. 방호실장이 수행하는 업무는 단순히 문을 열어주는 ‘의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호’에 가까운 일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살피는 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민원인이 가장 먼저 만나는 검찰의 ‘얼굴’… “억울함 들어주는 게 답”
대검 청사에 들어올 때, 방호원들을 처음 접하는 건 검찰총장 뿐만이 아닙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원인, 사건 때문에 왕래하는 변호사들도 ‘주 고객’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찰 출신 변호사가 “내가 누군데 잡느냐”는 항의를 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대검에 근무하던 검사였는데, 알아서 차단기를 올리지 않느냐는 겁니다. 험한 일도 많이 겪을 것 같은데, 그래도 유 전 실장은 “예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다”고 합니다.
유 전 실장은 지금은 사라진 전투경찰 출신입니다. 공무원이 되기 전부터 비슷한 일을 해온 셈입니다. 수십 년 현장 경험이 가장 큰 자산이었습니다. 사람이 모여드는 상황에서, 최대한 이른 시간에 ‘이상징후’를 포착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 이상징후를 어떻게 포착하느냐, 묻는 질문에는 마땅한 답이 없습니다. “촉이 온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현장 감각이라고 해야 되나요? 어쨌든 오래 하다 보니까 촉이라는 게 생기죠. 의도가 있는 사람들은 눈빛부터가 달라요. 말을 걸어 보면 더 확실해지죠. 진짜 민원인은 행동이 자연스럽습니다. 반면에 딴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당황을 하고요.” 실제로 민원인을 가장하고 청사에 들어오는 사람을 붙들어보니, 소지품 가방에서 칼이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행동이나 눈빛이 변함이 없는 고수들도 있다”고 전합니다.
유 전 실장이 꼽는 아찔했던 장면은 1993년 1월입니다. 지금은 작고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검찰에 소환됐던 날입니다.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 조사를 받으러 나왔는데, 기자들과 현대그룹 관계자들이 뒤엉키며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사진기자 카메라가 정 회장의 이마와 부딪쳤고, 2㎝가량 찢어져 피가 흐르는 사고가 났습니다. “서소문 청사 시절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더 근무를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최대한 안전을 생각해야죠. 우리 일은 진압보단 사람들 안전을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 일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검찰청엔 ‘포토라인’이 생겼습니다. 라인을 쳐놓고 피의자의 동선을 확보해 안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였는데, 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를 계기로 폐지됐습니다.
민원인들은 경계 대상이지만, 손님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도 방호행정관들입니다. 억울한 마음으로 찾아오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건 고된 일입니다. “일단은 그 분들이 하는 말을 들어주는 수 밖에 없어요. 듣다 보면 달래는 법도 알게 됩니다. 억울하다는 말을 꺼내다 보면, 그 사이 마음이 누그러지기도 합니다.”
◆쉬지 않고 달려 온 ‘페이스 메이커’… “검찰 놔두는 게 개혁”
정치권에선 ‘검찰 개혁’을 수십 년간 의제로 삼고 있습니다. 민원인처럼, 유력 정치인들이 불쑥 검찰청에 ‘항의방문’을 올 때도 있습니다. 거기엔 대검 청사를 드나들던 검사 출신도 여럿 있습니다. 누구보다 오래 검찰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유 실장이 하는 말은 “그냥 놔두라”는 겁니다. “답답합니다. 검찰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옆에서 자꾸 흔들어놓으니까요. 자기들이 듣고 싶은 대답이 있는데, 원하는 답이 안나오니 괜히 어깃장을 놓는 걸 보면 안타깝죠.”
유 팀장은 수십 년 간 고된 일을 했지만, 다치지 않고 일을 마쳤습니다. 스스로 행운이라고 여기는 부분입니다. 방호 업무를 하다 보면 얘기치 않은 부상을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2017년, 국정농단 사태에 화가 난 한 시민이 포크레인을 몰고 대검 정문으로 돌진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원래는 서울중앙지검을 가려고 하셨대요. 근데 네비게이션이 대검으로 안내해줬답니다. 그래서 여기로 곧장 들어온 거죠. 포크레인은 일반 타이어가 아니라서, 그냥 탱크처럼 올라가거든요. 진압하는 데 좀 애를 먹었습니다.”
국정농단 사태에 화가 난 시민이 대검 정문 차단기를 부수고 진입한 사건이었지만, 정작 다친 건 방호관이었습니다. 부상을 입고 병상에 누운 동료를 보면서 다른 방호관들도 마음을 다쳤습니다. 누가 알아줄 수 없는 억울함과 서운함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에, 수사관 출신 법무사 한 명이 조용히 치료비에 보태라고 격려금을 전달하고 가기도 했습니다.
무사히 경력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건강 관리를 꾸준히 해 온 덕분이었습니다. 한 번 완주하기도 힘든 풀 마라톤 42.195km를 수도 없이 달렸습니다. 유 실장이 오랫동안 활동한 ‘대검 마라톤 동호회’를 함께 한 검사들도 적지 않습니다. ‘강력통’ 검사 출신의 류혁 법무부 감찰관은 검사 이전에 유 실장의 오랜 ‘운동 파트너’입니다.
유 전 실장은 이제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페이스 메이커’를 맡습니다. 화려한 기록을 앞세운 선수들이 돋보이는 마라톤 대회엔 무수히 많은 ‘아마추어 러너’들도 참가합니다. 페이스메이커는 대회 참가자들이 무사히, 자신이 목표한 시간에 골인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입니다. 프로 선수들만큼 돋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자리입니다. 무엇보다 완주 경험이 많아야 맡을 수 있는 임무입니다.
유 전 실장은 30년 넘게 일한 공로를 인정받아 방호행정관 중 처음으로 사무관 직급으로 퇴임했습니다. 돋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자리에서 오랫 동안 달려 온 ‘페이스 메이커’로 인정받은 보상일지 모릅니다.
지난 5일, 대검찰청에선 한 공직자의 퇴임식이 조촐하게 열렸습니다. 검찰 고위 간부가 퇴임할 때처럼 거창한 연설도 없었지만, 검찰 역사의 ‘산 증인’이 일을 마친 순간이었습니다. 35년 3개월. 대검찰청의 문턱을 지킨 유연호 전 방호실장이 주인공입니다. 방호행정관으로, 누구보다 오랫 동안 대검에 머물며 일해온 유 전 실장을 만났습니다.
◆“격식 안 따지는 윤석열, 반듯한 이원석”…검찰총장 24명 거쳐
유 전 실장이 방호행정관 일을 시작한 건 1989년 4월 3일입니다. 검사들은 근무지를 옮겨다니지만, 유 전 실장은 대검찰청에서만 35년 넘게 일했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검찰총장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습니다.
김기춘 총장부터 이원석 총장까지. 그동안 스물 네 명의 검찰총장을 거쳤습니다.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총장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한 건 1988년입니다. 하지만 임기를 모두 채우고 무사히 퇴임한 사례는 8명 뿐입니다. 김기춘 전 총장은 박근혜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올랐지만,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유 전 실장이 일하는 동안 많은 검사들이 대검을 거쳐갔습니다. 무탈히 공직을 마친 사람도 있었지만, 수사를 받고 불명예스럽게 은퇴한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유 전 실장은 “개인을 보면 다 괜찮은 분들인데, 자신이 쌓은 명예를 무너트리는 사례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죠.”
최근 몇 년 동안, 검찰총장의 검정색 세단이 대검 청사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건 유 전 실장이었습니다. 취재진이 몰릴 때면, 기자들 못지 않게 긴장하고 돌발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게 그의 일입니다.
“윤석열 총장님은 인간적인 모습이 좀 있는 스타일이었죠. 격식 같은 데 얽매이지 않는 편이고요. 그 때 윤석열 총장님이 제 어깨를 툭 치신 적이 있었잖아요? 그게 방송에 나갔는데, 한 20년 만에 전화연락이 온 친구도 있었어요. 반대로 이원석 총장님은 엄청 반듯하세요. 흐트러짐이 없는 분이죠. 퇴근하실 때 항상 오늘도 고생했다, 수고했다 인사를 해주시죠.”
유 전 실장이 말하는 장면은 2020년 12월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입니다. 윤석열 총장이 정직 2개월 징계로 직무에서 배제됐다가, 법원에서 집행정지 결정이 나면서 서초동 대검 청사로 복귀한 날입니다. 그 순간에도 검찰총장이 차에서 내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유연호 방호실장이었습니다. 막상 유 전 실장은 “총장님이 제 어깨를 친 줄은 나중에 영상을 보고 알았다”고 말합니다. 방호실장이 수행하는 업무는 단순히 문을 열어주는 ‘의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호’에 가까운 일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살피는 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민원인이 가장 먼저 만나는 검찰의 ‘얼굴’… “억울함 들어주는 게 답”
대검 청사에 들어올 때, 방호원들을 처음 접하는 건 검찰총장 뿐만이 아닙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원인, 사건 때문에 왕래하는 변호사들도 ‘주 고객’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찰 출신 변호사가 “내가 누군데 잡느냐”는 항의를 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대검에 근무하던 검사였는데, 알아서 차단기를 올리지 않느냐는 겁니다. 험한 일도 많이 겪을 것 같은데, 그래도 유 전 실장은 “예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다”고 합니다.
유 전 실장은 지금은 사라진 전투경찰 출신입니다. 공무원이 되기 전부터 비슷한 일을 해온 셈입니다. 수십 년 현장 경험이 가장 큰 자산이었습니다. 사람이 모여드는 상황에서, 최대한 이른 시간에 ‘이상징후’를 포착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 이상징후를 어떻게 포착하느냐, 묻는 질문에는 마땅한 답이 없습니다. “촉이 온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현장 감각이라고 해야 되나요? 어쨌든 오래 하다 보니까 촉이라는 게 생기죠. 의도가 있는 사람들은 눈빛부터가 달라요. 말을 걸어 보면 더 확실해지죠. 진짜 민원인은 행동이 자연스럽습니다. 반면에 딴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당황을 하고요.” 실제로 민원인을 가장하고 청사에 들어오는 사람을 붙들어보니, 소지품 가방에서 칼이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행동이나 눈빛이 변함이 없는 고수들도 있다”고 전합니다.
유 전 실장이 꼽는 아찔했던 장면은 1993년 1월입니다. 지금은 작고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검찰에 소환됐던 날입니다.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 조사를 받으러 나왔는데, 기자들과 현대그룹 관계자들이 뒤엉키며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사진기자 카메라가 정 회장의 이마와 부딪쳤고, 2㎝가량 찢어져 피가 흐르는 사고가 났습니다. “서소문 청사 시절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더 근무를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최대한 안전을 생각해야죠. 우리 일은 진압보단 사람들 안전을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 일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검찰청엔 ‘포토라인’이 생겼습니다. 라인을 쳐놓고 피의자의 동선을 확보해 안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였는데, 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를 계기로 폐지됐습니다.
민원인들은 경계 대상이지만, 손님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도 방호행정관들입니다. 억울한 마음으로 찾아오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건 고된 일입니다. “일단은 그 분들이 하는 말을 들어주는 수 밖에 없어요. 듣다 보면 달래는 법도 알게 됩니다. 억울하다는 말을 꺼내다 보면, 그 사이 마음이 누그러지기도 합니다.”
◆쉬지 않고 달려 온 ‘페이스 메이커’… “검찰 놔두는 게 개혁”
정치권에선 ‘검찰 개혁’을 수십 년간 의제로 삼고 있습니다. 민원인처럼, 유력 정치인들이 불쑥 검찰청에 ‘항의방문’을 올 때도 있습니다. 거기엔 대검 청사를 드나들던 검사 출신도 여럿 있습니다. 누구보다 오래 검찰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유 실장이 하는 말은 “그냥 놔두라”는 겁니다. “답답합니다. 검찰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옆에서 자꾸 흔들어놓으니까요. 자기들이 듣고 싶은 대답이 있는데, 원하는 답이 안나오니 괜히 어깃장을 놓는 걸 보면 안타깝죠.”
유 팀장은 수십 년 간 고된 일을 했지만, 다치지 않고 일을 마쳤습니다. 스스로 행운이라고 여기는 부분입니다. 방호 업무를 하다 보면 얘기치 않은 부상을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2017년, 국정농단 사태에 화가 난 한 시민이 포크레인을 몰고 대검 정문으로 돌진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원래는 서울중앙지검을 가려고 하셨대요. 근데 네비게이션이 대검으로 안내해줬답니다. 그래서 여기로 곧장 들어온 거죠. 포크레인은 일반 타이어가 아니라서, 그냥 탱크처럼 올라가거든요. 진압하는 데 좀 애를 먹었습니다.”
국정농단 사태에 화가 난 시민이 대검 정문 차단기를 부수고 진입한 사건이었지만, 정작 다친 건 방호관이었습니다. 부상을 입고 병상에 누운 동료를 보면서 다른 방호관들도 마음을 다쳤습니다. 누가 알아줄 수 없는 억울함과 서운함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에, 수사관 출신 법무사 한 명이 조용히 치료비에 보태라고 격려금을 전달하고 가기도 했습니다.
무사히 경력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건강 관리를 꾸준히 해 온 덕분이었습니다. 한 번 완주하기도 힘든 풀 마라톤 42.195km를 수도 없이 달렸습니다. 유 실장이 오랫동안 활동한 ‘대검 마라톤 동호회’를 함께 한 검사들도 적지 않습니다. ‘강력통’ 검사 출신의 류혁 법무부 감찰관은 검사 이전에 유 실장의 오랜 ‘운동 파트너’입니다.
유 전 실장은 이제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페이스 메이커’를 맡습니다. 화려한 기록을 앞세운 선수들이 돋보이는 마라톤 대회엔 무수히 많은 ‘아마추어 러너’들도 참가합니다. 페이스메이커는 대회 참가자들이 무사히, 자신이 목표한 시간에 골인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입니다. 프로 선수들만큼 돋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자리입니다. 무엇보다 완주 경험이 많아야 맡을 수 있는 임무입니다.
유 전 실장은 30년 넘게 일한 공로를 인정받아 방호행정관 중 처음으로 사무관 직급으로 퇴임했습니다. 돋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자리에서 오랫 동안 달려 온 ‘페이스 메이커’로 인정받은 보상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