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사위원장. 요즘 최고의 이슈 메이커가 됐습니다. 6선 법사위원장으로 거의 국회를 지금 주도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내에선 추미애 의원의 ‘3차 대전’ 얘기가 나왔습니다. 이 얘기를 한 민주당 의원은 전쟁의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고 했죠. 국민의힘은 추미애 의원을 향해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보수의 어머니 같은 사람이다. 어쨌건 추 의원, 지금 여의도 최고의 이슈 메이커입니다.
이번에 추미애 의원이 쏘아 올린 공은 과연 우리 정치판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추나(추미애 나경원) 3차 대전’을 포함한 추미애 의원의 모든 것, 그의 정치 인생까지 살펴봅니다.
▶ DJ 손잡고 정계 입문한 ‘대구 출신 여성 판사’
추미애 의원은 1958년 대구 출생입니다. 2남 2녀 중에 둘째로 태어났고 아버지는 세탁소를 운영하셨다고 하는데요. 세 살 때 세탁소에 도둑이 들면서 집안이 어려워져 외갓집에서 많이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한양대 법대에 들어가요. 한양대 법대에 들어가서 1981년 졸업을 하는데 남편인 서성환 변호사와 7년을 사귀었어요. 대구의 딸인데 남편인 서성환 변호사가 전북 정읍 출신이에요. 그러니까 호남의 며느리가 된 거죠. 지역 정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 생겼죠.
1982년에 바로 법대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합니다. 이때 300명이 사법고시 합격을 했는데 그중 여성이 단 3명이었다고 합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 주호영 국회부의장, 김진태 강원도지사. 여기가 같이 사법연수원 동기들이에요. 광주, 인천, 전주 이런 데서 판사를 하는데 그때부터 결기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불온서적이라고 해서 출판사 이런 데 압수수색에 들어가거든요. 당시 군사 독재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때 다른 판사들은 다 영장을 발부했는데 추미애 판사만 기각을 했다고 하죠.
그런 결기들이 알려지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추미애 의원을 정치에 입문시킨 사람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서 YS한테 지고 정치판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새정치국민회의라는 당을 만듭니다. 그때 영입한 인사가 바로 추미애 의원입니다.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을 하는데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미애 의원 영입하고 엄청 좋아했다고 하죠. 왜냐하면 당시에 판사나 검사 같은 법조인들은 주로 보수 정당으로 갔어요. 그러니까 판사에 정말 드문 여성에 대구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되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당으로 들어온 거죠.
1996년 서울 광진에서 총선에 당선이 됩니다. 대단한 거였어요. 소선거구제로 바뀐 이후 서울 지역구에서 여성이 당선된 첫 사례라고 합니다.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될 때, 추 의원이 김대중 후보의 유세단장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때 추미애 의원이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김대중 후보 선거 유세를 하려니까 사람들이 말렸다는 거예요.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유세하고 다니면 돌 맞습니다. 그렇게 다니면 안 됩니다"라고요. 그러자 추 의원이 "지역주의의 악령과 싸우는 잔다르크가 되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지지자들이 추다르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라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차세대 정치인으로 유명해져요. 1999년 아시아 위크, 21세기를 활약할 젊은 정치인 20인 중 1명에 꼽힙니다. 이러면서 이제 승승장구해요. 그 다음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생깁니다.
▶천당과 지옥 오간 ‘노무현과의 인연’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민주당에서 대선 후보가 되긴 했지만 깜짝 돌풍을 일으켰던 거였죠. 원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위가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추미애 의원은 초반부터 노무현 후보를 지지합니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엄청 좋아했죠.
기억나십니까? 막판에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를 파기하잖아요. 파기 전날 유세에서 "노무현 다음엔 정몽준" 이런 분위기에서 정몽준 대통령을 막 외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속도 위반 하지마라, 대찬 여자 추미애 의원이 여기 있다” 했잖아요. 여기에 정몽준 전 의원이 화가 나서 파기했다, 이런 소문이 있을 정도로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추미애 의원과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참 인생이 기구한 게요.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결별을 하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에서 탈당해서 열린우리당을 만들 거든요. 추미애 의원은 “지지해 준 정당을 탈당하고 지지 세력을 분열시켰다. 본체를, 본질을 모르고 대선 운동에 앞장서서 지지를 호소했던 것이 참 염치없고 할 말이 없다”고 반대를 합니다.
이후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의결을 하죠. 추미애 의원은 당시 탄핵까지 찬성하지는 않았었어요. "탄핵에는 한나라당과 같이 할 수는 없다"고 했었는데, 결국은 민주당의 당론을 따라서 탄핵에 찬성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역풍이 불죠.
그래서 추미애 의원이 그 유명한 삼보일배를 합니다. 호남에서 13km 정도를 삼보일배해요. 그래서 지금도 운동화 신고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아예 연골이 많이 망가져서 지금도 많이 걸으면 힘들다고 하죠.
이런 어려움 속에 추미애 의원이 민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데요. 민주당이 폭삭 망합니다. 9석밖에 못 얻는 소수 정당이 됩니다. 그리고 본인도 이 서울 광진을에서 떨어집니다. 그리고는 미국으로 가죠.
▶문재인 손 잡고 당대표까지 ‘승승장구’
미국에 오래 있지는 않아요. 2007년 정치에 복귀합니다. 2008년 총선에서 당선이 돼요. 그때부터는 계속 당선됩니다. 그러면서 누구와 인연이 이어지냐. 2015년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최고위원으로 추미애 의원을 지명합니다. 이때 사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어려웠던 시기예요.
기억을 돌이켜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에 당선이 되잖아요. 그러고 나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율이 늘 40% 이상입니다. 당시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 대표가 되고도 민주당 지지율이 잘 안 나옵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단식 투쟁도 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별로 안 나왔죠. 그때 안철수 의원, 그리고 동교동계 일부도 당을 나갔죠.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정권이 넘어갔을 당시 친노 세력을 폐족이라고 불렀잖아요. 그게 회복이 완전히 잘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어려웠던 시기에 추미애 의원이 힘이 됩니다.
"저는 1995년 여름에 제 일생 입당원서라고 한 번 써봤다. 쓸 때 무척 손이 떨렸다. 내가 정치호적을 지금 작성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호적을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버리고 나가는 쪽을 엄청나게 비판합니다. 그리고 2016년 또 당선이 됩니다. 여성 최초 지역구 5선이었어요. 물론 그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박순천 전 의원도 있었지만 비례대표까지 포함한 5선이었고, 지역구만 5선 한 여성은 최초였습니다.
그리고 2016년 당 대표로 당선됩니다. 이때 권리당원의 압도적인 표를 얻어 당선되는데 친문, 호남 이쪽에서 50% 넘는 득표를 해서 당선이 돼요.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한나라당과 함께 했다는 게 비판의 소지가 있었죠.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지킨 것이 평가를 받으면서 당대표가 되고 나름 선거도 계속 이겨요. 2017년 대통령을 만들죠. 2018년에 지방선거 압승하고, 재보궐선거까지 압승합니다. 당 대표가 되고 나서 모든 선거에서 이깁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조금씩 내부에서 삐걱거립니다. 당대표 시절 댓글 조작 사건이 벌어지니까 ‘이거 이상하다. 댓글 조작 같다’면서 민주당이 고발을 했죠. 그 고발에 걸려든 게 드루킹이었습니다. 그 고발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구속까지 되죠. 아까 얘기한 3차 대전의 핵심이 뭐예요? 추미애 의원이 뭔가 일을 벌이는데 그게 제 발등을 찍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정치권에서 회자되기 시작하는 게 바로 이 건이죠. 괜히 고발을 해서 김경수 전 지사만 타격을 보는 일이 벌어졌다는 거예요.
이재명 대통령과도 각별하죠. 작년 국회의장 선거 때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대표로서 총선을 이긴 거 아닙니까? 그래서 압도적으로 당내 영향력이 커진 상황에서 국회의장 선거를 하게 된 거예요.
많은 후보들이 있었고, 이재명 대통령이 중립을 지킨다고 했지만 막판에 명심이 추미애 의원 쪽으로 갔다는 평가가 많았죠. 당시 시민사회 쪽에서 추미애 의원을 밀어달라는 요구가 나오면서 이 대통령이 추미애 후보 쪽에 마음이 있는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겼죠.
▶‘1차 대전’ 윤석열 대통령 만든 추미애?
추미애 의원의 3차 대전을 살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1차 대전이 시작됩니다. 2019년 12월 당시 추 의원이 법무부 장관으로 들어옵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이후 16년 만에 여성 법무부 장관이었죠. 전임은 조국 전 장관인데 35일 만에 낙마하죠. 어떻게 보면 조국 전 장관이 물러나고 더 센 법무부 장관이 온 겁니다.
오자마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수족들을 착착 제거합니다. 그 대표적인 수족이 바로 한동훈 전 장관이죠.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는데 부산고검 차장 검사로 보냅니다. 한직으로 보낸 거죠. 또 윤석열 전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등의 수사 지휘를 할 수 없도록 수사 지휘권을 발동하고요.
그러면서 갈등이 계속 올라가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시키고 징계를 합니다. 당시 징계에 대해서 윤 전 대통령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고, 받아들여지죠.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면서 한 말이 "검수완박, 부패완판(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한다)"이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계속 윤석열 검찰총장을 때리는데, 윤석열 검찰총장의 몸값은 계속 올라갑니다. 이 징계에 문재인 전 대통령도 동의했는데, 결과적으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 건에서 여론이 안 좋아져요. 그러니까 본인도 그만둡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물러나고 바로 대통령이 되죠. "보수의 어머니"라는 국민의힘의 논리가 이때부터 시작이 됩니다.
▶‘2차 대전’ 한동훈, 추미애 법무부 지우기
2차 대전 상대는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입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에 한 전 장관을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보냈잖아요. 진천 연수원도 보냈다가 또 용인으로 보냈다가, 또 계속 한직으로 보내죠.
이어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추미애 의원이 “윤석열 부부와 한동훈 등이 모의 기획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죠. 그러자 한동훈 전 대표는 "추미애 씨"라고 부르면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 등으로 추 의원을 공수처에 고소‧고발했죠. 그러는 사이에 1차 대전, 2차 대전을 했던 두 사람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를 하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오자마자 시작한 게 바로 추미애 법무부 지우기입니다. 첫 번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없앴던 증권범죄합수단을 바로 다음 날 복구시킵니다. 당시 추 장관이 검찰 수사권을 낮추는 데 엄청 앞장서거든요. 검찰의 직접 수사 중 큰 부분이 바로 경제범죄죠. 그래서 남부지검에 있는 증권범죄합수단을 없애버립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증권과 관련된 주가 조작, 이런 강력한 범죄를 처벌하는 기능을 약화시켰다면서 바로 부활시키고요.
또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 한직에 보냈던 사람들을 다 복귀시키고, 검수완박을 무력화시키죠. 시행령에 '등' 자를 붙여서 "부패와 경제 등"을 할 수 있게 돼 있거든요. '등'을 잘 살려서 여러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거죠.
'등' 관련해서는 지금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또 정권이 바뀌어서 내년 9월 검찰청 폐지와 별도로 직접 수사를 지금보다 60% 줄여서 40%만 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하거든요.
어쨌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싸우면 같이 몸값이 커지는 모양새가 됩니다.
▶‘3차 대전’ 나경원 간사 부결, 결말은?
그리고 3차 대전이 추미애 법사위원장과 나경원 법사위 간사 내정자죠. 아직도 내정자예요. 왜냐하면 부결시켜버렸잖아요. 전례를 찾기 힘들죠. 보통 간사라고 하면 각 당이 알아서 정하면 하는 건데 추미애 위원장이 "안 해. 국민의힘 간사 나경원 하지 마. 다른 사람이 해"라면서 부결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김영진 민주당 의원이 3차 대전을 얘기하면서 “전쟁의 결과가 좋았던 적이 없다”고 해요. 왜냐하면 부담된다 이거죠. 너무 이렇게 싸우니까. 사실은 원내 지도부에서도 나경원 간사 그냥 해주자는 의견이 있었거든요. 근데 안 된다면서 부결을 시켜버린 거죠.
왜 전쟁의 결과가 좋지 않았나. 그러니까 싸운 사람을 봤더니 1차 대전, 대통령 됐죠. 2차 대전, 대선 주자가 됐습니다. 3차 대전, 지금 보수의 전사가 되고 있다는 거예요. 결과가 안 좋다는 거죠.
▶‘독주’ 추미애 법사위원장, 진짜 이유는?
추미애 법사위원장 정치 인생을 쭉 보면 초창기만 해도 지금과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정치부 아주 초짜 시절에 말진 기자 시절 때 보면 추미애 법사위원장 이미지가 지금처럼 강성이고 싸우고 이랬던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이미지가 됐고, 그러면서 여러 어록들이 생겼죠.
“(윤석열) 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한 것입니다” “소설을 쓰시네” “윤석열 오빠에게 도움이 됩니까?”
그러면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지금 국회에서 최고의 이슈 메이커가 되는 이유는 뭘까요. 지지세가 강하거든요.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올려놓은 글들 보면 찬양 일색입니다.
국민의힘은 이런 논리로 비판합니다. 대통령 위에 정청래 있고, 정청래 위에 추미애 있다. 그러니까 강성 지지층은 더 사이다 같고 더 센 사람을 지지하는데,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워낙 세고 워낙 잘 싸우니까 이제 정청래, 대통령도 밀린다. 이런 논리로 지금 국민의힘이 공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하느냐.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내년 지방선거 때 경기지사를 나갈 거라는 설이 많잖아요. 경기도는 지금 민주당한테 유리한 지형이긴 합니다. 먼저 당내 후보가 되는 게 진짜 중요한데 김동연 경기지사가 챔피언이잖아요.
당내 경선에서 더 강성층의 지지를 받아서 이겨보려고 더 세게 하는 거 아니냐 하는 의혹도 나옵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지금 여야 가릴 것 없이 여의도를 주름 잡는, 어떻게 보면 최고의 이슈 메이커가 됐습니다.
하지만 추미애 법사위원장 입장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전쟁의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게 아니라 "검찰청 폐지, 윤석열이 결국 만들어낸 거"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그러니까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고, 추미애 법사위원장 입장에서는 "내가 이기는 거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겠죠.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쏘아 올린 공들은 지금 시끌시끌합니다. 중도 진영에서는 추 의원이 우리 정치판을 이상한 데로 끌고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지자들에겐 확고하게 본인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있죠.
여성 최초로 지역구에서 당선되고, 소선거구 구조에서 여성 최초로 지역구 5선이 된 추미애 의원. 여전히 화제의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분명해 보입니다.
퀴즈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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