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남) '누가 문화를 지배하는가‘라는
기획 기사를 취재한 동아일보 문화부 전승훈 차장이 출연했습니다.
전 차장 안녕하십니까.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리포트]
1) (남) 정치권력 경제권력이란 말은 많이 들었는데. 언제부턴가 ‘문화권력’이란 말이 등장했죠.
문화권력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요.
흔히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정치든, 경제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문화적인 매력이기 때문이지요. 문화권력은 투표로 선출되거나, 누군가에게 임명되는 권력은 아닙니다. 문화권력은 수십년간 쌓아온 상징적 자본과 발언권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창작물의 제작 유통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대선은 보수와 진보의 후보가 1대1로 맞붙었던 선거였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이념적 갈등이 벌어졌는데요. 문화인들도 문학, 영화, 학술, 인터넷,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2013년 체제론’을 주장하고 정치에 깊숙이 개입한 문학평론가 백낙청 씨에 대해 시인 김지하 씨는 “한류 르네상스를 가로막는 쑥부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에대해 진보 문인단체인 작가회의는 백낙청 교수를 원색적으로 김지하 씨에 대해 회원에서 제명하자는 안을 내놓으며 갈등을 벌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문화와 정치이데올로기가 결합되는 ‘문화권력’ 현상이 강화되면서, 문화계 전반에서 서로 편을 갈라 자기 편만 키워주고,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으려조차 하지 않는 현상이 점점 자리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2) (여) 앞서 리포트에도 잠깐 나왔지만, 한국 사회 대표적인 문화권력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주시죠.
동아일보는 2월초 문화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문화계 인물’ 중 상위 그룹에 속한 분들을 보면 문학계 인사들이 많았습니다. 트위터의 제왕으로 불리는 이외수 씨가 1위를 기록했고, 시인 김지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소설가 공지영, 이문열, 황석영 씨 등은 ‘지난 대선에서도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로도 꼽혔습니다.
3) (남) 문화계 종사자들은 실질적인 문화 권력으로
유통 권력 즉, 문화 예술을 실어나르고 퍼뜨리는 기업과 기획사을
첫 손가락에 꼽기도 하던데요?
네.
최근에 점점 눈여겨 봐야할 실질적 문화권력으로는 막대한 자본을 배경으로 한 대기업 문화유통 권력입니다. 설문조사 결과 ‘문화계의 유통권력’으로는 1위가 CJ E&M, 2위는 SM엔터테인먼트, 3위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4위는 교보문고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CJ는 영화, 방송, 뮤지컬, 음악, 게임산업까지 대중문화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계의 유통권력은 장점도 있지만 ‘종다양성’을 해치는 주범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영화,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기획사들은 천편일률적인 아이돌그룹과 상업주의 영화만 제작하고,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은 대중들과 만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실입니다.
4) (여) 소설가 이문열 씨가 “대선 결과로 보듯 우리 사회의
보수 대 진보는 50대 50인데, 유독 문화분야에서는 9대1”이라고 지적했는데요. 우리 사회의 문화권력이 이렇게 한쪽으로 쏠리게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세계적으로 문화는 진보진영이 주도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그 정도가 유독 심합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진보 진영은 문학, 방송, 영화, 인터넷까지 광범위하게 장악한 데 비해, 정치권력 경제권력을 쥔 보수 진영은 상대적으로 문화의 중요성을 소홀히 했습니다.
- 예를 들어 지난 대선을 앞두고 영화계의 움직임을 한 번 볼까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화려한 휴가’가 개봉돼 시기적으로 민감하다는 논란이 있었죠. 2012년 대선에서도 선거 한달을 앞두고 강풀 만화가 원작의 ‘26년’이 개봉돼 290만 명이 관람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김근태 민주당 고문의 영화 ‘남영동 1985’도 개봉됐고요. 반면 영화계에서 보수적인 내용의 영화는 제작이 지지부진했습니다. 작년에 ‘제2연평해전’ 10주년을 맞아 개봉을 하려던 영화가 있었는데요. 이 영화를 준비한 김학순 감독은 해군본부 지원까지 받았는데도 제작비 투자를 받지 못해 개봉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1~2년 사이에 치러진 지방선거, 총선, 대선까지 민주당은 인터넷 팟캐스트 ‘나꼼수’에 깊게 의존해왔는데요. ‘나꼼수’의 전국투어 콘서트를 연출한 탁현민 씨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야외유세를 총괄기획하기도 했습니다. 나꼼수 멤버들은 대선 직후 해외로 출국한 상태인데요. 국내에 남아 있는 김용민 씨는 24시간 뉴스 생방송을 하는 ‘국민TV' 개국으로 ’나꼼수‘의 새로운 진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5) (남) ‘국민 모두가 행복한 100% 대한민국’를 열겠다는 박근혜 당선인에게는 국민통합이 가장 시급한 숙제인데요. 새 정부가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게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문화정책은 무엇입니까.
-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취임 직후 방송, 영화, 공연, 출판, 역사 등 각종 문화예술 단체장을 정권의 ‘코드’에 맞춰 일괄적으로 교체했습니다. 보수 정권이냐 진보 정권이냐에 따라 예총, 민예총 등에 지원하는 정부의 문화예술지원금 예산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이 때문에 문화계에서는 더욱 더 이념갈등이 커졌고, 니편이냐 네편이냐로 편가르기 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또한 정치권에 어느 정도의 줄이 있느냐에 따라서 예산을 지원받고, 출세하는 정치꾼들이 대거 양산됐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적 색깔보다는 예술성과 창조성을 존중하는 문화계 인사를 했으면 합니다.
전문가들은 문화계의 ‘종의 다양성’ 회복을 위해서는 보수 우파의 자기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진보 진영의 문화권력은 수십년간 쌓아온 힘이 있습니다. 조선 사대부의 인문학 공부나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레주’ 문화처럼 보수 진영도 21세기에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주류 제도권의 문화를 건설해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