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통일부(당시 장관 정동영)는 2005년 10월 법무부(당시 장관 천정배)를 비롯한 남북경협 관련 부처에 이 씨가 1991년 설립한 남북교역업체 대동무역의 남북경제협력사업자 및 협력사업 승인 신청에 대한 검토의견을 요청했다. 법무부는 “이 씨는 피보안관찰자 신분으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재차 간첩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 등 재범 우려가 있다”며 “남북 경제협력사업 수행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이 씨는 1972년 ‘김일성 회갑 선물 간첩단’ 사건 때 검거된 9명의 고정간첩 중 한 명으로 북한 노동당 연락부 소속으로 활동해왔다. 그해 1월 간첩 권영섭과 경제·군사정보를 수집보고하고 국가전복 등을 꾀했으며 통일혁명당 재건에 협조했다가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재일 북한 공작원 포섭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1990년 3·1절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된 뒤 보안관찰 대상으로 지정됐다. 보안관찰법에 따르면 이 씨처럼 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 같은 중범죄나 내란음모 외환죄 등으로 기소돼 확정 판결을 받고 형기를 마친 사람은 주거지를 옮기거나 열흘 이상 집을 떠나 여행할 경우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하는 등 당국의 관리를 받도록 돼 있다. 검사 및 사법경찰관리는 이들의 재범을 막기 위해 필요한 지도와 조치를 할 수 있다고도 규정돼 있다.
하지만 통일부는 법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달 뒤인 2005년 11월 대동무역에 대해 강서청산수 생산 및 판매사업 관련 남북 경제협력사업자 및 협력사업 동시 신청을 승인했다. 당시 통일부는 “이 사업은 교역사업에서 경협사업으로 확대 발전된 것으로 그동안의 대북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 간 경제교류와 상호이익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1970년대에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형을 살았다고 해서 협력사업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승인 사유를 설명했다.
이 씨는 이듬해 8월 평안남도 남포에 강서청산수 생산 공장을 짓고 2008년까지 수시로 남북한을 오갔다. 그는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 정권이 교체되면서 남북 관계가 경색됐고 정부의 민간인 대북접촉 제한 때문에 북한으로부터 계약무효 통고를 받았다”며 “하루빨리 남북교류 제한 조치가 풀려 자유롭게 사업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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