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지난날, 대한민국은 많은 아이들을 외국으로 입양을 보내야 했죠.
뿌리를 찾고 싶은 건 사람의 본능이라, 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부모를 찾기 위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친부모를 찾는 확률은 단 5%. 왜 그럴까요.
김단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툰 한국말로 전단지를 나눠주는 한 여성
[현장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46년 전 해외로 입양된 레베카 카밀 씨입니다.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네 번째로 친부모를 찾기 위해섭니다.
[현장음]
"얼마나 힘들까. 미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1975년, 광주 유덕동 길가에서 발견됐다는 입양 기관 기록 외에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
수년 전부터 입양기관과 고아원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광주시청까지 직접 찾아 나섰습니다.
[광주시청 관계자]
"(관할 구청에) 아동 카드가, 예전 자료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2000년대 자료만 있다고 합니다. (당시 고아원은) 현재 어린이집밖에 운영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레베카 씨는 최근 충격적인 사실도 새로 알게 됐습니다.
입양 직후 자신의 모습이 서류상 사진과 다르다고 느껴 미국 소아 기형 전문가에게 분석을 의뢰했더니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레베카 카밀 / 해외 입양인]
"어릴 때 제 사진을 보면 귓불이 붙어있는데 아래 (입양 서류) 사진에는 떨어져 있습니다. 저는 인중은 짧고 두꺼운 데 반해 이 사진 속 아기는 길고 얇아요."
한 해 수천 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보내지던 1970년대, 서류와 아이가 뒤바뀌는 일은 실제로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샤론 블럼 / 해외입양인]
"(입양기관이) 내 서류를 바꿨고, 다른 아기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너무 실망했고, 화가 났어요. 내가 다른 누군가라면 나는 누구인가…"
최근 5년 동안 8천 명 정도가 부모를 찾기 위해 입양정보 공개청구를 했지만 이 가운데 단 5%만 상봉에 성공했습니다.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이 해외입양인 정보관리와 지원을 담당하는데 인력 등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해외 입양인 상당수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직접 전국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레베카 카밀/ 해외 입양인]
"우리는 오직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채널A 뉴스 김단비입니다.
영상취재:장명석
영상편집:이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