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별세한 이상민 전 의원의 빈소. 평소 유쾌한 성품처럼 영정 사진에서도 활짝 웃고 있다. (출처 : 뉴스1)
이상민 전 의원의 별세에 여야와 정파를 떠나 애도가 이어진 까닭은 뭘까요. 이 전 의원의 메시지는 우리 정치에 어떤 숙제를 남겼을까요.
"장애로 위축된 적 없었다"

이 전 의원은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은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의정 활동을 했습니다. 선거운동을 할 땐 일어나 인사를 못하니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았다는데요. 이 전 의원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생이 유쾌한 성격이라 그런지 한번도 장애로 위축된 적이 없다"고요. 그러면서도 "장애인 이동권은 시혜가 아니라 기본권"이라며 관련 법안 마련하는데 열심이었죠.
고교 시절엔 성악가를 꿈꿨던 이 전 의원. 부친의 반대에 충남대 법대에 들어가 변호사가 됐습니다. 2004년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대전 유성구에서 당선돼 국회에 처음 입성했죠. 2008년 18대 총선 땐 통합민주당에서 낙천한 뒤 같은 지역구에서 자유선진당 의원으로 당선됐습니다. 19대 총선부터는 민주당 소속으로 내리 당선돼 5선에 성공했죠. 하지만 2023년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당화'에 반발하며 탈당한 뒤 국민의힘에 입당했습니다.
잦은 당적 변경에 비판도 있었죠. 하지만 "소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란 평가도 함께 나옵니다. 소속 정당과는 무관하게 늘 원칙에 따라 당내 주류에 쓴소리를 해왔기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만년 비주류'란 꼬리표도 함께 따라다녔습니다.
2012년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 선대위 공동본부장도 맡았지만, 문 대통령을 비판하며 비주류로 남았습니다. 이재명 대표에게도 각을 세웠죠. 국민의힘에 와선 "계엄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힘을 실었고요.
양 진영의 극단 대립은 경고한 의회주의자였습니다. "정치권이 국민적 갈등을 더 증폭시켰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정치권 스스로 무한책임을 느껴야 한다"(2020년)고요. 법사위원장 땐 대화와 타협, 토론을 앞세웠습니다. 이 전 의원은 최근 법사위의 극한 갈등을 이렇게 질타했죠. "정치 생활 중에서 법사위원장을 했다는 걸 자부심을 갖고 지내왔는데 정청래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휘젓고 오염시키고 하는 걸 보고 정말 부끄러웠어요, 낯부끄러웠어요"(지난달 2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라고요.
여야 막론 추모…"불의에 타협 안 해"

그런 이 전 의원을 향해 소속 정당을 막론하고 추모의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붉은 넥타이를 매고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왔다'고 결연히 외치며 우리당에 입당하셨던 모습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참된 정치인의 기개 그 자체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한 달 전 제 패스트 트랙 공판에 나오셔서 대한민국 법사위원장으로서 겪었던 일을 진실되고 일관되게 증언하셨다. 당신께서 지내온 정치 여정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
"때로는 다른 위치에 서서 서로 날을 세운 날도 있었지만, 후배 정치인인 저를 따뜻이 보듬고 가르쳐주시던 날들을 항상 기억하겠다." (장철민 민주당 의원)
"특별히 인간의 존엄과 평등 실현을 목표로 하는 '평등법'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의정활동을 기억하겠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
특히 지난 22대 총선을 앞두고 이 전 의원을 국민의힘에 영입했던 한동훈 전 대표는 빈소에서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측근이 "그렇게 우는 것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요. 한 전 대표는 "정치를 오래 하다보면 명분보다 자리에 집착하게 된다는데, 민주당에서 5선을 하신 이상민 의원님은 명분과 상식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해 주셨다. 정말 어려운 결정이셨을 것"이라고 기억했습니다.
"양쪽에 쓴소리" "따뜻한 사람"
이 전 의원과 함께 방송 출연을 했던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초기에 이 전 의원을 처음 만났다.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대통령을 지나치게 공격하는 건 과하다'면서도 '윤 대통령도 선거 끝났으니 민주당과 만나야 하는데 안 만난다'며 양쪽에 쓴소리를 했었다"고요.
추석 즈음 이 대통령의 예능 출연으로 시끄러울 때, 주진우 의원은 별다른 인연이 없는 이 전 의원으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요새 너무 고생하는 거 다 알고 있다. 혼자 힘들어 보여서 전화했다"고요. "그렇게 따뜻한 분이었는데 너무 황망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의회주의자'의 마지막 쓴소리는
이 전 의원이 생전 SNS에 마지막으로 남긴 쓴소리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불러놓고 모욕을 준 법사위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판사님들은 어째 끽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있나요! 여러분의 수장이 온갖 능멸을 당하고 있고, 생명처럼 받드는 사법권의 독립과 권위가 무너뜨리고 있는 마당에 남 일 보듯 뒷전인가요!"라고요.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고 진영 극한 대결의 장이 되어버린 국회를 되돌리는 것. 의회주의자였던 이 전 의원이 남긴 숙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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