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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면회·건국전쟁…장동혁은 ‘극우’인가 [런치정치]

2025-11-09 12:00 정치

 지난 9월 당 최고위에 참석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출처 : 뉴스1)

"내년 지방선거는 제2의 건국 전쟁이고 체제 전쟁입니다."(지난달 31일, 서울시당 당협위원장 및 선출직 공직자 워크숍)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자리에서 부쩍 자주 언급하는 말이 바로 '건국 전쟁'입니다. 사법개혁과 부동산 정책이란 이름으로 대한민국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정부·여당에 맞서 헌법과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시장 경제와 법치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꽤나 비장합니다.

당내에선 당장 볼멘 소리가 나옵니다. 한 영남권 의원은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실책과 김현지·최민희 논란 등 건수가 이렇게나 많은데, 웬 해묵은 이념 논쟁이냐"며 '완전 패착', '판단 미스'라고 깎아내렸습니다.

장동혁 지도부가 출범한지 70일이 넘었습니다. 지도부 내분이 없고,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돌발 변수에 메시지 대응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당내 이견이 없습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소수야당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좁은데, 이 정도 여건에서 정말 잘 돌파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제 삼는 부분은 있습니다. 전당대회 기간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극우 논란'입니다. 한 야권 인사는 "당 대표 후보와 당 대표는 달라야 하는데, 왜 여전히 아스팔트 우파와 거리 두기를 못하고 눈치를 보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장외 집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 면회, 그리고 영화 '건국 전쟁2' 관람으로 대표되는 체제 전쟁 강조. 장 대표의 취임 후 행보가 극우라는 비판의 빌미를 준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가하면 최근에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냉온탕 전략'을 오간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정치인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고 하죠. 장 대표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지지율, 그리고 내년 6월 지방선거입니다. 장 대표는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요.

 장동혁 대표가 지난 9월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열린 사법파괴·입법독재 국민 규탄대회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던 도중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출처 : 뉴스1)

'배신자 프레임' 거리두기

먼저 '나는 배신하지 않는다', 즉 배신자 프레임과 철저한 거리두기입니다.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 한 번 낙인 찍히면 정치적 생명에 치명타를 입는 배신자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겠다는 겁니다. 유승민 전 의원과 한동훈 전 대표 선례를 본 학습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 면회는 사실 부담스러운 이벤트였습니다. 계엄을 하고 탄핵 당한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 못하고 함께가는 것처럼 보여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 도대체 지방선거를 어떻게 치르려고 하는 거냐'라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당장 면회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민주당은 물론 당내에서도 "당대표로서 대단히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처사"(김재섭 의원), "국민의힘을 나락으로 빠뜨리는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정성국 의원) 등 장 대표 입장에서 아픈 비판이 터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 면회를 결정했습니다.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가야하는 이유가 있었고, 그로 인해 얻고자 하는 게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 대표는 전당대회 기간 자신의 지지 기반인 강성 지지층에게 윤 전 대통령 면회를 간다고 약속했고, 취임 후에도 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공언해왔습니다.

장 대표는 측근들에게 "여기서 약속을 안 지키면 정치 오래 못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윤 전 대통령 면회 사실이 알려진 후 기자간담회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은 아침에 말한 것을 저녁에 뒤집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위대한 정치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며 "그러나 저는 정치인은 약속을 지키는 것,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 생명이라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장 대표는 전당대회 당시에도 '단일대오' 기조를 막판에는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는 주변의 만류에 "선거에 떨어지더라도 어떤 정치를 하는지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 면회로 플러스(지지층), 마이너스(중도층)가 있었다"며 "마이너스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면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플러스 없이 지지층만 이탈했을 거란 취지입니다.

다만 그 시기는 철저히 정무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 대표 취임 직후보다는 논란이 크지 않으면서 지방 선거에도 최대한 영향을 적게 미칠 만한 국정감사 시점을 선택했습니다. 금요일(지난달 17일) 오전에 다녀왔지만, 언론에 공개한 타이밍은 뉴스 소비가 가장 적게 되는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최대한 마이너스를 줄인 겁니다.

'극우의 탈'을 쓴 정통 보수일까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16일 오전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 국립3·15민주묘지를 참배한 후 작성한 방명록. (출처 : 뉴스1)

두 번째는 '겉우속보', 즉 겉으로는 극우처럼 보여도 논리는 정통 보수로 간다는 전략입니다. 두 마리 토끼 다 잡겠다는 거죠. 민주당에 개딸이 있다면 국민의힘엔 아스팔트 우파가 있습니다. 이들을 먼저 확실히 끌어안지 않고서는 중도 확장도 없다는 게 장동혁 지도부의 판단입니다. 이를 위해 진짜 극우가 될 순 없지만 극우처럼 '보이는' 부담까진 감수한다는 거죠.

장 대표는 극우 논란이 있을 때마다 "우파 지지자 분들이 하는 모든 말을 당이 받아들일 순 없더라도, 함께 갈 수 있는 부분은 같이 가겠다"고 해왔습니다. 당에서는 이를 두고 '왜 극우와 거리 두기를 못하냐'고 비판하지만, 뒤집어보면 절묘한 선 긋기로 해석되는 발언입니다.

윤 전 대통령 면회 문제를 보면 이런 겁니다. 장 대표는 "당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예의를 다한 것"이란 입장입니다. 이미 탄핵 당하고 탈당까지 한 전직 대통령 면회에 그 이상의 정치적 함의는 없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민주당이 말하는 '윤 어게인'이나 '도로 내란당'과는 관련 없다는 겁니다.

극우라고 줄곧 공격 받아온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 대표는 전당대회 내내 "계엄은 잘못됐다. 하지만 '무조건 탄핵'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충분히 풀수 있는 문제였다", "계엄이 잘못됐지만 공수처와 헌법재판소의 절차적 위법은 지적해야 한다"고 해왔습니다. 계엄과 탄핵, 그리고 내란 수사와 탄핵 심판은 분리해야한다는 거죠. 보수 지지층에겐 아직 탄핵 트라우마가 있고, 법치주의는 보수의 핵심 가치입니다.

체제 전쟁 메시지를 내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이념 논쟁을 꺼내드는 게 당장은 극우처럼 보일 순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 민주주의같은 이념을 바탕으로 한 굵직한 담론을 지금부터 말해야 보수 정당이 앞으로 큰 선거에서 치러지는 '구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장동혁 지도부는 보고있습니다.

장 대표 측근은 "대중 정치인은 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도록 해야하는데, 그때 그때 단편적으로 인기 영합적 메시지를 내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장 대표는 사석에서 "체제 전쟁을 말하지 않는다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권력을 쥔 주체만 그저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오는 것 뿐"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정치를 왜 하는가'의 문제와도 맞닿아있습니다.

당 관계자는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 판을 기준으로 전략을 짜야한다"며 "민주당이 개딸을 등에 업고 어떤 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지 연구하고 여기에 국민의힘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해야지 무조건 아스팔트 우파와 선 긋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중도는 허상"이라며 "일단 지지층이 결집해 지지율이 올라야 그때부터 소위 중도층이라고 하는 이들도 국민의힘에 눈길을 주고 표를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선 흔히 말하는 중도 확장보다는 지지층 결집이 우선이라는 겁니다.

'좌클릭'은 없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출처 : 뉴스1)

지지층 총결집 시점은 언제일까요. 장동혁 지도부 출범 직전 당 혁신위원회 파동 등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까지 추락했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완만한 상승 추세긴하지만, 아직 지난 대선에서 김문수 후보를 찍어줬던 40%대까지는 오지 않았습니다.

일단 내란·김건희·채상병 3대 특검이 마무리되는 연말은 지나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당의 한 인사는 "지금은 TV만 틀면 윤 전 대통령 부부와 국민의힘 수사 뉴스가 나오기 때문에 호감도가 올라갈 수 없다"고 했고, 또 다른 인사는 "계엄과 탄핵으로 상처 받은 지지층이 돌아오기까지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린다"며 "그때까진 일단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당 안팎에선 당의 지지율 정체를 돌파하기 위해선 장 대표가 '윤 어게인' 세력과 확실히 절연해야한다는 얘기를 흔히 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배신자 프레임을 경계하고 강성 지지층을 안고 가야한다는 생각이 분명한 장 대표가 앞으로도 계엄 사과나 윤 전 대통령과 선 긋기를 두드러지게 하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절연이 아니더라도 장 대표만의 방식으로 중도층 공략은 해야겠죠. 지지층과의 약속, '숙제'를 끝낸 장 대표, 몸풀기에 나서고는 있습니다. 당 부동산정책 정상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직접 맡아 민생에 힘을 주고, 최근에는 광주를 찾았습니다. 오히려 이번엔 당내에서 "왜 갑자기 광주냐", "광주를 가더라도 5·18묘역은 안 가야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호남에 진정성을 보여야 지방선거에서 호남 승리까진 아니더라도 '호남 출신 수도권 표심'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절실함이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철저히 선거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한 겁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일 광주를 찾아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기 위해 들어서자 광주전남촛불행동 회원들이 몸싸움을 하며 막아서고 있다. (출처 : 뉴스1)

장 대표 혼자서 지지층과 중도층 사이 '줄타기'가 쉽지 않으니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부산 지역 한 의원은 "장 대표는 '정치'를 해서 지지층을 끌고 가고, 송언석 원내대표와 김도읍 정책위의장 등 원내에서 '정책'을 통해 중도를 품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역할 분담해야 한다는 거죠.

일각에선 내란 정당 '색채'를 빼기 위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나 유승민 전 의원, 한동훈 전 대표 등과 연대도 거론됩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단순히 선거공학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기계적 연대로는 감동도 효과도 없다는 게 장 대표의 생각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중도 성향의 4선 김도읍 정책위의장을 인선한 뒤 '변심' 비판을 의식한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수의 가치에 충실한 국민의힘을 만들겠습니다. 중도 외연 확장하겠다고 왼쪽으로 움직이는 보수가 아니라, 중도에 있는 분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보수 정당을 만들겠습니다." 절연이나 연대란 쉽고 빠른 길보다는 다소 불확실하고 돌아가는 길을 가겠다는 장 대표, 그의 새로운 초식(招式)이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가 아닌 전국 단위 지방선거에서도 통할지는 지켜봐야할 일입니다.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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