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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언론으로 항일…인촌 김성수 70주기

2025-02-17 19:52 문화

[앵커]
교육과 언론으로 일제에 맞섰던 인촌 김성수 선생 서거 70주기가 내일입니다.

개인보다 공동의 이익을 우선했던 인촌의 '공선사후' 정신은 지금까지도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김재혁 기자입니다.

[기자]
[대한뉴스 (1955년 2월 24일)]
"그 일생을 조국의 정치 경제 교육을 위해 바친 故 인촌 김성수 선생의 국민장이 국민 각계각층이 애도하는 가운데 엄숙히 거행되었습니다."

항일과 독립, 6·25 전쟁 후 부통령으로 대한민국 기틀 마련에 일생을 바친 인촌 김성수 선생.

일본 제국에 나라를 빼앗기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중앙학교와 보성전문 인수 등 교육이었습니다.

올해 105세로 당시 중앙고 교사로 있었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궂은일도 마다치 않고 인재를 모으고 가르쳤다고 인촌을 기억합니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
"인촌 선생을 뵈고 나니까 큰 나무 같아요. 그 나무 밑에 이제 많은 사람이 머물 수 있고 나도 머물 수 있는 큰 나무 같은 생각이 드니까."

인촌은 중앙고 숙직실에서 송진우, 현상윤 선생과 함께 생활하며 3.1운동을 준비하고 이끌었습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독립 의지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민족의 혼을 깨우기 위해 동아일보를 창간했고 경성방직을 운영하며 독립운동가들도 꾸준히 지원했습니다.

[이종찬 / 광복회장]
"(이규봉 선생) 귀국시켰는데 다 팔고 왔으니까 지금 거처도 없다 그러니까 동아일보 교정부에 들어가서 있었어요. 안창호 선생이 사고무친 아무도 없으니까 (인촌 선생이) 뒷바라지를 해주신 것. 이런 것이 전부 우리가 알고 있는 거거든요."

민족 독립에 필요한 인재와 언론, 산업을 동시에 키워낸 인촌은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이 우선이란 '공선사후'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인촌의 70주기 추모식은 내일 남양주 인촌 묘소에서 진행됩니다.

채널A 뉴스 김재혁입니다.

영상취재 : 정기섭
영상편집 : 석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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