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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늙는 게 죄인가요…슬픈 ‘노노 간병’
2018-01-19 19:48 뉴스A

지난해 여름부터 우리나라도 명실상부한'고령 사회'가 됐습니다.

젊은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건 이제 옛날 얘기가 됐는데요. 70대 부부가 서로를 돌보고, 80대 부모의 병 수발에 지친 아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노노 간병'의 심각한 실상을 취재했습니다.

이서현 기자의 [더깊은뉴스]입니다.

[리포트]
7년째 파킨슨병을 앓고있는 박영호 할아버지. 돌맹이가 깔린 지압판 위를 힘겹게 걷습니다. 일흔이 된 부인은 2시간 동안 남편을 부축해야 합니다.

[홍영자 (가명, 70세) / 박영호 할아버지 부인]
집 안에서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는 데가 여기에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거를 혼자 못 해요.

박 할아버지는 혼자서는 몸조차 가눌 수 없습니다.

[홍영자 (가명, 70세) / 박영호 할아버지 부인] 
이렇게라도 해야 일어날 수가 있어요 깍지를 뒤로 껴서 여기를 펴줘야 해 이렇게…

관할 주민센터에 '건강 안마 바우처'라는 치료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3년 째 대기 상태입니다.

[주민센터 관계자]
"대기자가 있으니까 이제 대기자 순서대로 연락이 갈 거예요"
(3년 정도 기다리셨다고?) 그게 왜 그러냐면… 대기자를 기존에 했던 분들이 아무래도 우선적으로 하시잖아요."

지난 3년 간 할아버지의 병은 더 깊어졌고, 부인은 '나홀로 간병'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김영호 (가명, 72) / 파킨슨병 투병 중]
(맨날 울어요 맨날) 세상사는 게 서러워가지고"

[홍영자 (가명, 70세) / 박영호 할아버지 부인] 
자식들 없고 마음대로 한다면 '그만 우리 갑시다. 다음 생에는 어떤가 거기 한 번 갑시다' 그 마음이에요

올해 82세인 김창희 할아버지는 말기 치매 환자인 동갑내기 아내를 24시간 내내 돌봐야 합니다. 아내와는 대화가 전혀 안되고, 식사에서 용변까지 모든 걸 챙겨줘야 합니다.

[김창희(82)]
"대소변 정리해줄 때… 하루 여섯 번 정도는 해줘야 하거든? 그리고 하체를 못쓰니까 전적으로 내 힘으로 움직여야 하니까 그게 힘들지"

김 할아버지의 지병인 허리 통증도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김창희 (82)]
"내 나이로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해내지를 못 해. 단지 정 때문에… 내 마음에 후회를 안 하려고"

[이서현 / 기자]
"치매나 파킨슨병같은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 가족들이 받는 정신적 고통도 큽니다 치매노인 보호자 3명 중 1명은 최근 1년 간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8월부터 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 간병' 시대. 극심한 간병 스트레스가 간병 학대는 물론, 간병 자살이나 간병 살인까지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 경기도 안성에서는 간병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60대 아들이 80대 노모를 폭행해 숨지게 했습니다.

[안성경찰서 관계자]
"대변을 보신 것 같아서 옷을 갈아 입히려고 그랬는데 (치매) 어머니가 안갈아입는다 그래서 폭행을 했다"

10년 간 치매 부인을 돌보던 70대 남편이 자신도 치매에 걸린 것 같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유가족]
"아버지가 그렇게 아프셨다는 걸 우리도 모르는 거야. 유서에는 그렇게 있는데…"

'노노 간병'이 '가족 붕괴'로 이어지는 일도 잦습니다.

[조철현 / 고려대 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자포자기를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내가 노력을 해봤자 더 나아질 것이 없다 이런 생각에 간병을 할 의지를 내려놓고"

서울 노원구의 쪽방. 박미금 할머니는 이 좁은 방에서 10년 넘게 홀로 치매와 싸우고 있습니다. 남편과는 30년 전에 사별했고, 자식들과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박미금(82) / 독거노인]
"혼자 처량하게 있을 때는 죽고 싶은 생각만 들어 근데 죽어지지를 않는 거를…"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없는 박 할머니.

그런데, 국가가 지원하는 '돌봄 서비스' 대상에선 탈락했습니다.

[현장음]
"도우미 파견이 안돼요. 이 정도면 상태가 좋다고 보니까."
"안 되더라니까요. 신청을 해봐도 안돼."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노인 요양 보험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7.5%에 불과합니다.

[임춘식 /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
"판정 기준이 까다로워가지고 이정도 서비스 받았으면 하는 노인들 경우도 소외되는 사각 지대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치매 국가 책임제'와 '노인요양보험 확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재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정치권의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박주민 / 더불어민주당 의원]
"의미라던지 필요성에 대한 폄훼 공격이 많아요." 오히려 이 방향이 맞다면 힘을 함쳐서 국민들을 설득해 나가거나 대응 방향을 찾아가야 하는데… "

전문가들은 노노 간병의 책임을 해당 가족에게만 맡겨서는 안된다고 지적합니다.

[임춘식 /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장]
"국가가 나서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국가에서 외로운 노인들, 빈곤한 노인들 도와주는 건 품어야 할 정치적 이념이다. 이렇게 봅니다."

지금의 57세가 노인이 되는 2026년부터 우리는 '초고령 사회'에 들어섭니다.

'노노 간병'은 결코 현재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채널A 뉴스 이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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