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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한국판 버닝 리포트’ 나와야 한다
2018-02-05 19:57 뉴스A

아메리카 버닝 리포트...60년대 잇단 대화재로 14만명이 넘게 숨진 미국이 2년 간의 연구 끝에 내놓은 '소방 백서'입니다.

지금도 미국 소방관들의 교과서로 쓰이는데요.

대형 참사가 자꾸 반복되고 있는 우리의 대비책은 과연 어떤지 짚어봤습니다.

최주현 기자의 '더깊은 뉴스'입니다.

[리포트]
[최주현 기자]
"수십명의 사망자와 백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 밀양 세종 병원 화재 현장입니다. 현재는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우리는 이렇게 큰 상처를 경험하고 나서야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숙제를 다시 들춰보고 있습니다."

8명이 숨진 병원 5층. 80대 이상 환자들의 대피를 도운 의료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황 모 씨 / 세종병원 5층 생존자]
"의료진들요? 다 도망갔어요. 자기 살기 바쁜데, 생명의 끝이 여기 앞에 있구나 싶었지.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2층에는 송풍기 하나 없었습니다.

[박모 군 / 세종병원 2층 생존자]
"(송풍기는) 못봤어요. 많았으면 더 많은 사람을 구출했겠죠."

지난해 7월 세종 병원이 스스로 작성한 소방 점검 보고서. 모든 항목이 '이상없음'으로 표시돼 있습니다. 스프링클러와 제연 설비 유무를 체크하는 난은 아예 없습니다.

[밀양소방서 관계자]
"자체적으로 점검을 해서 우리한테 보고를 하거든요.
(세종병원은 포함이 안되네요?)
(그건)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어요."

1년에 한번씩 받게 돼있는 이 병원의 소방 교육과 훈련은 어땠을까?

밀양 소방서가 실시한 방문 교육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나이든 환자가 많은 뒷쪽 요양 병원에서만 이뤄진 이 교육도 5명만 참가한 1시간짜리 강의로 끝났습니다.

[밀양소방서 관계자]
"(소방서와) 합동 훈련을 하든 자체 훈련을 하든 보고를 하는게 아닙니다. 서류만 확인하는 것이지, 훈련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죠."

4년 전, 21명이 숨진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참사 직후 제기된 문제들은 이번 밀양 참사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제연 설비가 부족했다,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이 미흡했다, 병원 근무 인력이 부족했다, 4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변한 건 전혀 없었다는 얘깁니다.

당시 화재로 아버지를 여읜 이광운 씨. 이번 밀양 참사를 보며,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광운 씨 / 2014년 장성요양병원 화재 유가족]
"순환이에요, 악의 순환. (밀양 화재는) 2014년도 장성 화재 사건하고 판박이다."

화재 당시 환자 34명을 대피시켜야 할 의료진은 1명에 불과했고, 소화기가 들어있던 캐비닛과 비상구는 잠겨 있었습니다.

참사가 나자 당시 정부는 수많은 대책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대부분 임시방편들이었다고 비판합니다.

[이광운 씨 / 2014년 장성요양병원 화재 유가족]
"땜질이죠. 적당히 넘어가면 되지 그래서 사고가 또 터지면 그걸 덮는데 혈안이 돼있어요. 대한민국 소방 현실이 이래요."

선진국의 대응은 어떨까?

1960년대, 잇따른 대형 화재로 14만명 넘게 숨졌던 미국. 미국 정부는 1971년 최고의 방재 전문가 20명을 투입해, 2년 간의 철저한 조사와 연구 끝에 '아메리카 버닝 리포트'를 내놨습니다.

90개 항목으로 된 이 리포트에는 제연 설비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의료진 교육 지침 등이 매우 구체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로버트 솔로몬 / 미국화재예방협회 예방전담팀장]
"확실히 매우 획기적인 보고서입니다. (출간 된지) 40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얼마나 소방 부분에 개선을 이뤄냈고 앞으로 더 얼마나 개선할 수 있는지 척도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2018년 대한민국의 화재 안전 성적표는 어떨까.

소방 전문가 3명에게 물어봤습니다.

100점 만점에 51점과 48점, 47점, 모두 낙제 수준이었습니다.

[이용재 /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
"'F' 주고 싶습니다. 사고가 터지면 그 밑바닥에 깔려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보다, 누가 툭 던지는 것 그것만 자꾸 물고 늘어진단 얘기죠."

[제진주 / 전 경기소방재난본부장]
"우리나라 (소방)법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웅덩이에 고이도록 되어있는 규정이 참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순간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땜질과 졸속으로 대응하지 말고, 이제라도 '한국판 버닝 리포트'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명진 / 한국소방시설관리사협회 관리이사]
"2년이 걸리건 3년이 걸리건 10년이 걸리건 관계 없다고 봅니다. 제대로 된 리포트를 만들어서 국민들도 믿고…"

채널A 뉴스 최주현입니다.

최주현 기자(choigo@donga.com)

연출 송 민
글·구성 지한결 이소연
그래픽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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