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동앵과 뉴스터디>
동정민 앵커입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추억의 인물이죠.
그런데 최근에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한
재판이 끝났습니다.
5년 걸렸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
수학여행 갔던
안산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서
탑승객 476명 중에
사망‧실종 합쳐서
304명의 인명피해가 났던,
입에 단어를 올리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픈 그런 사건이죠.
제가 최근에 끝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판결문을 다 읽어봤습니다.
제가 오늘 하려는 건
사고 당시의 것들을
살펴보려는 건 아니고
세월호 침몰 사고 난 그날.
김기춘 전 실장 재판도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날 ‘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가
그 판결문에
쭉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당시 여러 소문들이 많았잖아요.
7시간 동안 무슨 관저에서
성형 시술 하느라 프로포폴 맞고
자고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굿판을 벌였다는 소문도 있었고,
외부에서 밀회설까지
별의별 소문이 다 있었는데
그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지
시간 단위별로 판결문 내용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거 하나만 결론 말씀드리죠.
청와대라는 곳이
얼마나 구중궁궐처럼
일반 국민과 격리된
시설로 쓰일 수 있었는지
얼마나 국민과의 소통에 취약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4년 4월 16일로 가보겠습니다.
▶박 대통령에게 간 ‘첫 보고’는?
법원 판결문을 토대로 정리했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이즈음(2014.4)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호성 부속비서관에게
수요일에는 일정을
잡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4월 16일
사고 당일이 수요일이었는데,
그즈음부터 매주 수요일에는
일정을 잡지 않았어요.
일정을 잡지 않는 날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본관 집무실로 오지 않고
대부분 관저에서
근무를 했다고 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이 시작된 건
8시 52분부터입니다.
8시 54분에 119에 신고가 들어가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청와대는 평온했겠죠.
김기춘 비서실장은
비서동이 있는 위민1관 3층에,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위민3관 2층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9시 19분경 TV를 보다가
이 속보를 확인합니다.
첫 번째 YTN 뉴스특보 속보였습니다.
‘350명이 탄 여객선이 침몰 중이다’
같은 시각 위기관리센터.
국가안보실 산하에
흔히 말하는 지하 벙커라고 하죠.
위민관 근처에
지하 벙커가 있는데
거기에 위기관리센터
상황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24시간
4명씩 3교대로 돌아가면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각종 상황을
확인해서 바로바로 청와대에
보고하는 곳입니다.
이 위기관리센터 행정관이
세월호 사고 내용을 확인합니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같은 시간
TV 속보를 봅니다.
그리고 맞는지 확인하죠.
5분 뒤인 9시 24분,
위기관리센터 행정관은
청와대 내에 있는 모든
실장‧수석‧비서관‧행정관에게
사고를 알리는 문자를 발송합니다.
청와대 내에 문자 발송시스템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청와대 사람들이 모두
‘사고가 났다’ 이걸 안 거예요.
상식적으로는 관저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로 연락을 해야 되겠죠.
그런데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이 속보 수준에서
더 나아간 상황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더 확인해야
될 게 많은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이런 엄청난 사건이 났잖아요.
딱 봐도 350명이 탄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고 한다면
바로 연락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이든 비서동이든
내려와서 확인을 해야 됐었던 게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거죠.
그날 국가안보실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한
첫 번째 1보 내용입니다.
아직까지 정확히
상황 파악은 안 됐던 거예요.
‘현재까지 56명 구조’
나머지는 ‘확인 중’이란 내용.
이게 또 중요한데.
1보 작성 시간이
‘9시 30분’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이 1보 상황보고서가
위기관리센터 실무진이 작성해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손에 간 게 10시경입니다.
나중에 재판에 따르면
작성자가 9시 24분에
사고 알림 문자를 보내잖아요.
그리고 이제 막 1보
작성하기 시작한 거예요.
작성 시작하면서
9시 30분까지
내가 작성을 빨리해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9시 30분’이라고 썼다는 겁니다.
이때부터 다른 상황반원까지
다 투입이 돼서 확인을 하거든요.
해경에도 전화를 하고,
해군작전사령관에도 전화하고,
소방방재청에도 전화하고,
안산 단원고에도 전화를 합니다.
그렇게 알아보는 과정 속에서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거죠.
실제로는 이 내용이 10시경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보고가 되고,
김 실장이 이걸 보고 또 지시를 내려요.
이것저것 알아봐라.
그래서 10시 12분
구조 상황까지 업데이트해서
1보가 마무리됩니다.
그렇다고 10시 12분에 곧바로
박근혜 대통령 손에 들어간 건 아닙니다.
왜냐면요 이 보고서를 썼잖아요.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에 전달을 하냐면
상황병이 이 상황보고서를 들고 뜁니다.
이 당시에는 이렇게 했대요.
국가안보실에서
부속실에 물어봅니다.
“대통령 어디 계시나, 보고를 해야 된다”
그럼 부속실에서
“대통령 지금 관저에 계시다”
그러면 상황병이
상황보고서를 들고
관저로 뛴다고 합니다.
이날만 뛴 게 아니라
원래 계속 뛰었대요.
위민관 근처 지하에서
관저까지 이렇게 올라가는데
이 뛰는 거리가 총 597m.
그래서 검찰이 확인을 합니다.
얼마 정도 걸리나 봤더니
6분 20초 정도 걸렸다고 해요.
이 상황병이
관저 출입문 ‘인수문’에 가면
여기에 대통령 경호관이 있습니다.
경호관에 이 상황보고서를 줘요.
그럼 곧바로 대통령에게
건네지는 것이 아니라
내실 근무자에게 건네집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관저 침실에 있었던 거고
침실 밖 문 앞에 탁자가 있답니다.
내실 근무자가
상황보고서를 받아 들고 가서
이 탁자 위에 올려놓는 거예요.
그러면 박근혜 대통령이
침실 문을 열고 나와서
이걸 들고 가서 읽는 겁니다.
10시 12분에
1보 완성해서 출발시키잖아요.
관저까지 뛰어서
6분 20초 걸린다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법원에서는
1보가 10시 19~20분 사이에
이 관저 탁자에
도착했을 거라고 봤습니다.
물론 이렇게만 하는 건 아닙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박근혜 대통령 휴대전화로
전화를 겁니다.
그런데 안 받아요.
▶박 대통령의 ‘첫 지시’는?
대통령이 전화를 안 받자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본관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를 겁니다.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내가 상황 1보 빨리 올려야 하니까
그걸 대통령에게 알려달라”
안봉근 비서관도
심각한 일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10시 12분에 행정관에게
관저로 지금 가야 하니
차량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행정관이 차를 갖고 와서
안봉근 비서관이 본관에서
차를 타고 관저로 갑니다.
그렇게 멀진 않아요.
몇 분 걸리는 상황인데
차를 타고 내린 안봉근 비서관이
어디로 갔느냐?
당연히 침실 문 앞으로 갑니다.
문을 두드립니다.
“대통령님 대통령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문을 열죠.
“김장수 실장이 급히 통화를 원합니다”
“그래요?”
박 대통령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통화를 합니다.
그 시각이 검찰은
10시 22분이라고 하고
김장수 실장은
10시 15분이라고 해서
좀 엇갈려요.
법원은
“10시 22분인 것 같다”고
얘기는 하면서도 명확히 또
‘10시 22분이다’
이렇게까지 확고하게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10시 15분 혹은 10시 22분에
박 대통령 첫 지시가 내려옵니다.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객실‧엔진실 등 철저히 수색해
누락 없도록 하라”
김장수 실장은 이 지시를 받고
곧바로 아래로 전파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한 명과 더 통화를 합니다.
10시 30분이죠.
김석균 해경청장에게 전화를 걸어요.
“장비‧인력을 총동원해서
인명피해 없도록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해경특공대도 투입해
선실 구석구석 확인하라”
이때도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세월호 사고’ 오보·정정…계속된 혼선
세월호 사고 1보를 올린 뒤에
계속해서 비서실
그리고 국가안보실에서
2보‧3보 보고서를 써서
계속해서 보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도
상황 파악이 잘 안 돼요.
기억나십니까?
11시 1분에 이런 속보가 떴었죠.
‘단원고 학생 모두 구조’
저도 기억이 납니다.
제가 이 당시에
청와대 출입기자였는데
청와대에 있으면서
이 보도 보고 편한 마음으로
점심식사 갔던 기억이 나거든요.
검찰 수사에 따르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뭔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10시 47분에 국가안보실에서
이렇게 파악을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승선원 477명 중에 109명을 구조했는데
나머지 360여 명이 안 보인다.
주변에 표류하거나 떠 있어야 되는데
안 보이는 걸 보니까 이들이 실종됐거나
혹은 선내에 잔류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세월호는 침몰이 된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김장수 실장은
심각하다는 걸 알았을 거라고
검찰은 보는데.
이게 또 그렇게
간단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해경에서
잘못된 보고가 옵니다.
이거보다도 한참 뒤인
1시 3분에 해경에서는
‘350~370명 구조됐다’고 보고해서,
2시에 중대본에서
“368명이 구조됐다”
발표를 했다가
5분 만에 정정합니다.
“368명 구조 아니다, 중복 집계였다.
실제로는 170명이 구조됐다”
170명이면
300명 넘는 사람들이
아직 구조 안 된 상황이잖아요.
이렇게 엉망진창
혼선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박근혜 대통령은
계속 관저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이
관저에서 내려온 시각은
오후 4시 33분,
중대본을 방문하기 위해섭니다.
그럼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발생 이후에 이때까지
뭘 하고 있었을까요?
▶박 대통령의 ‘7시간’…무슨 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대통령에게 뭔가 보고를 올리면
가장 먼저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사람입니다.
비서실이나 안보실에서
이메일을 보내면
정호성 비서관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는 루트였습니다.
그럼 이날 정호성 비서관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정 비서관은 오전 11시
‘전원 구조’ 오보였던 소식을 듣고
편안하게 밥을 먹고 옵니다.
점심을 먹고 와요.
먹고 오니까 상황이 이상해요.
자꾸 인원이 안 맞거든요.
1시 30분가량 돼서 관저로 갑니다.
그러니까 이제 상황을
대충 파악한 거예요.
이게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
구조가 많이 됐다는 보도가 아닌 것 같다.
오후 2시 15분
대통령 관저에서 회의가 열립니다.
이 관저 회의실에서
회의가 열리는데
상식적으로 회의 참석을
누가 해야 할 것 같습니까?
비서실장이나 안보실장이
참석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그리고 최서원(최순실) 씨가
여기 회의에 참석합니다.
재판 과정에서도
법원은 최서원 씨가
이 회의에 참석했다고 봅니다.
2시 15분에 모였어요.
정호성 비서관이
“구조 인원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중대본 가시는 게 좋겠다는 게
수석비서관들 의견입니다”
수석들 의견을 모아서
대통령에 전달을 합니다.
안봉근 비서관도
“언론에서 지금 나오고 있는 보도와
현장에서 구조되고 있는 인원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보고를 하고
최서원 씨까지 이 3명 모두
“대통령이 중대본에 가는 게 좋겠다”
의견 내고 실제로 박 대통령이
중대본 가겠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윤전추 부속실 행정관이
‘정 자매’를 부릅니다.
정 자매가 누구냐면
대통령 외출할 때
화장과 머리 해주는 사람.
급한 일이 터졌으니까
빨리 오라고 연락하고
정 자매가 관저에 도착한 게
3시 22분.
박근혜 대통령이
관저 떠난 게 4시 33분.
박 대통령이
중대본에 도착한 게
5시 15분입니다.
기억나십니까?
박 대통령 노란 민방위복 입고
중대본 회의 주재하는 모습.
5시 15분에 갔다가
6시에 관저로 복귀하죠.
이게 박근혜 대통령
7시간의 전부입니다.
▶다시 짚어본 ‘세월호와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 그날 한 거라고는
여기 두 번 지시 내린 거
그다음에 관저에서 회의하고
중대본 간 거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비서실장과 안보실장을
그날 하루 동안 한 번도 안 만났죠.
대면 보고가 없었던 겁니다.
물론 박 대통령을 향해서
쏟아졌던 7시간의 소문들은
법원 판결문을 보면
모두가 사실이 아닌
뜬소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지금 쭉 보셨지만
이 체계가 좀 문제가 있어 보이죠.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개방하고 용산으로 옮긴 것도
이런 취지라고 생각이 드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관저에 갇혀 있다 보니까
이 구중궁궐에 갇혀서
밖에서 이렇게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제대로 실시간으로 보고도 안 됐고
그리고 21세기에 보고하려면
이 상황병이 상황보고서를 들고
관저까지 597m를 뛰어가서
보고를 한다는 게
상식에 맞진 않죠.
제가 이거 왜 시작했죠?
김기춘 전 비서실장,
최근에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된
재판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2018년에 재판에 넘겨져서 5년 동안
5번 재판이 진행되면서 뒤집히고 해서
지금 최종 무죄 판결이 나왔거든요.
이 내용을 다음 시간에
이어가 볼까 합니다.
복잡한데 궁금한 이슈
댓글로 남겨주시면
제가 대신 풀어드리겠습니다.
<동앵과 뉴스터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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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동정민 기자·김정연 작가
연출·편집: 황진선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