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널A는 장기기증 연속보도, '끝 또다른 시작'을 4편으로 보도했습니다. 오늘은 100명이 넘는 환자들에게 새 삶은 선물한 한 40대 가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랑스러운 아빠로 기억"… 장기기증 결정

5살, 3살 두 아이의 아빠이자 다정한 남편이었던 44세 장상빈 씨. 장 씨가 경남 진주시 경상국립대병원 응급실로 실려 온 지난 3일이었습니다. 크레인 추락 사고로 심정지가 와 119가 출동했지만 심폐소생술로도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고 뇌사 추정 상태가 됐습니다.
다음 날인 4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소속 장기 구득 코디네이터인 장진혁 선생님이 장 씨의 아내 김유진씨에게 장기 기증에 대해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당사자가 뇌사 전 장기기증 동의를 했더라도 우리나라 법상 선순위 보호자 1인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장 선생님은 "자녀들이 나중에 아빠가 장기를 기증하고 많은 사람을 살렸다는 것을 보여주면 많이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하면서 배우자께서 어렵게 승낙을 해주셨다"고 전했습니다.

장기 기증에 동의한다고 해서 바로 기증이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뇌사 상태가 확실한 지, 최종 뇌사 판정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합니다. 우선 외부 자극에 반응이 있는지, 스스로 호흡하는지,동공 반응이 있는지 등 임상 반응 증상 검사를 두 차례 진행합니다.
가족 동의 이후 곧바로 1차 뇌사 조사가 이뤄진 상태였고 다음 날인 5일 2차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취재진도 이때부터 뇌사 판정 전 과정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뇌사 추정 환자의 최종 검사 단계인 뇌파 검사를 할 때는 준비 과정만 1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미세한 진동이나 잡음도 뇌파 검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뇌사 환자의 뇌파 파형은 일자 형태의 평파 뇌파가 나와야 하는데 장상빈 씨의 뇌파는 검사가 진행되는 30분간 평파로 유지됐습니다.
철저한 뇌사 검사… 104명에게 새 삶

장상빈 씨의 뇌사 판정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최종 확인하는 뇌사판정위원회. 전문의인 위원 2명 이상과 의료인이 아닌 위원 1명 이상으로 구성되는데, 과반수가 출석하고 출석위원의 전원 찬성으로 뇌사를 판정합니다.
장 씨가 사고를 당한 경위, 검사 결과 등을 꼼꼼히 살펴본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뇌사 의견을 냈습니다. 위원회가 종료된 오후 1시 5분이 장 씨의 법정 사망시각이 됐습니다.
그 사이 장 씨의 장기기증 수술이 다음날인 6일로 정해졌고 장기 이식을 받을 환자들도 결정됐습니다. 환자 가족이 장기를 선택하면 의료진이 상태를 파악해 최종 결정합니다.
장 씨는 간, 좌우 신장, 안구를 포함해 인체 조직까지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인체 조직은 최대 100명이 기증을 받을 수 있으니, 장 씨는 결국 104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게 된 셈입니다.

오전 11시 장 씨가 누워있는 중환자실로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열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아빠, 왜 눈 가렸어? 엄마 왜 울어?" 말도 제대로 못 잊고 통곡하는 가족들의 눈물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최고의 아빠였어"… 울림길로 예우

한 시간 뒤 중환자실에서 수술실로 이어지는 통로에 의료진과 가족들이 도열했습니다. 생명 나눔의 마지막 길을 예우하는 이른바 '울림길'입니다. 장 씨가 누워있는 침상이 천천히 이동했고 아내 김유진 씨는 외쳤습니다.
"너무너무 고마웠어, 우리 여보. 진짜 너무 좋은 아빠였어. 고생 많았어, 여보. 아이들은 내가 잘 키울게."
수술실 앞에서 짧은 추도식이 거행됐습니다. 침상에 누워있는 장 씨 앞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장기기증 전 과정을 관리했던 장진혁 선생님이 추도사를 읽었습니다. "이 시간 아픈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도우며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고 가시는 희생자분에게는 삼가 경건한 마음으로 평안한 안식과 명복을 빕니다."
장상빈 씨가 수술실로 들어간 뒤에도 한참 동안 가족들은 발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아내 김유진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이들을 다독였습니다. "아빠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하늘나라에 가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못 하는 일을 아빠가 해내는 거야. 알겠지? 알겠어? 꼭 기억해."
의료진들 "생명의 소중함 생각… 늘 최선 다 해"
기증자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는 의료진들의 마음가짐도 남다릅니다.정영수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수많은 뇌사 추정 환자들에 대한 검사를 수행하고 있지만 할 때마다 조심스럽다"고 말합니다.
"환자가 정말로 뇌사가 맞는지 정확하게 판정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장기 이식을 통해 많은 생명들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생명의 소중함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고 덧붙였습니다.
적출 수술 이후 시신이 훼손될 거라는 걱정은 오해라고도 말합니다.허규하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은 "장기가 적출되더라도 외형을 봐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고인의 유가족이 봤을 때 불편한 마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전했습니다.
장기조직 기증 신청은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병원 등 등록 기관에 신청할 수 있고 한국장기조직기증원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신청도 가능합니다. 오는 8월 21일부터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의 신분증명서를 발급·재발급 또는 갱신받을 때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새 삶을 선물하는 기적은 오늘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끝 또다른 시작] 연속보도를 영상으로 보고싶다면
https://youtu.be/WLQf67QfdCs?si=mVhnkb5bT5Z9ZV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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