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檢이 본 윤석열‧김용현 ‘계엄 구상’… 지난해 봄 ‘비상대권’ 첫 언급
작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하고 5월 30일에 22대 국회 시작되면서 야당이 단독으로 법안들을 처리하죠. 그러다가 11월 들어 감사원장과 검사들 탄핵안 내고 예산 깎고 그러자 계엄까지 갔다, 점점 빌드업 해갔다는 게 검찰의 시각입니다.
게다가 하나의 요소가 더해졌다는 거죠. ‘부정선거 의혹’인데요. 2020년 총선, 그러니까 작년 말고 그 전 총선 때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졌고 검찰은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법원은 선거 무효가 아니라고 결정 내렸죠. 국정원 조사 결과 선관위의 보안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부분이 보고되면서 두 사람(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은 부정선거에 대해 강하게 의혹을 제기하죠. 하지만 현재 사법 체계로는 이걸 밝혀낼 방법이 없다, 그러면서 점점 계엄 쪽으로 갔다는 게 검찰 수사 내용입니다. 대통령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이런 얘기를 주변에 했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종북주사파를 비롯한 반국가 세력들을 정리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 반국가 세력 정리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하고 헌법 가치와 헌정질서를 갖추어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줄 책임이 있다. 나는 대통령이 끝날 때까지 이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면 윤 대통령이 ‘계엄’이란 말을 언제 처음 꺼냈느냐? 검찰 조사에 따르면 작년 3월 말에서 4월 초, 그러니까 계엄 집행 9개월 전쯤, 총선 전 그쯤 삼청동 안가에서 5명이 모였습니다. 대통령과 당시 김용현 경호처장, 당시 국방부 장관은 신원식,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여인형 방첩사령관 5명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뭔가 비상한 방식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쓰는 ‘비상대권.’ ‘계엄’이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비상대권’이라는 말을 통해서 계엄을 시사하는 발언이 처음 나왔다는 겁니다.
이어 4월 중순 당시 김용현 경호처장의 공관에서 네 사람이 만납니다. 곽종근 특전사령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이죠. 이 4명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이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반국가 세력들 때문에 나라가 어려움에 있다.” 그러고 나서는 5월에 별도로 이들이 강남에서 만나 ‘비상대권’, ‘계엄’ 관련된 얘기를 했다는 게 검찰 조사입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하고 5월 30일에 새로운 국회가 시작되죠. 22대 국회가 개원합니다. 민주당 170석, 국민의힘 108석. 압도적인 여소야대 국면이 시작된 겁니다. 21대보다 더 야당은 법안 단독 처리하겠다고 하고 상임위원장 전체를 다 독식하고 법사위원장도 갖고 오면서 극한 대립이 시작됐습니다.
그즈음 삼청동 안가에 3명이 모였다는 겁니다. 김용현 경호처장, 여인형 방첩사령관, 대통령.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충암고 출신입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비상대권이 아니면 나라를 정상화할 방법이 없는가?”라고 말했습니다. 6월 중순 삼청동 안가에서 또다시 만나면서 대통령에게 김용현 경호처장이 “이 넷이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여인형, 곽종근, 이진우 사령관 그리고 강호필 합창 차장까지 4명입니다. 이들이 계엄을 실행하는 핵심 역할을 맡게 되죠.
8월 초, 대통령 관저에서 이번엔 대통령, 김용현, 여인형 세 사람이 모입니다. 대통령이 민노총과 정치인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현 사법 체계하에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므로 비상조치권을 사용하여 이들에 대해 조치해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상조치권’, ‘비상대권’ 다 결국은 ‘계엄’으로 연결되는 단어라고 볼 수 있겠죠.
실제로 9월쯤부터 뭔가 새어 나옵니다. 8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을 후보자로 지명하고 9월 6일 국방부 장관 임명장을 줍니다. 원래는 대통령 경호처장이었는데 원래 국방부 장관하고 있던 신원식 장관을 국가안보실장으로 옮기고 그 국방부 장관 자리에 김용현을 임명한 거죠.
민주당에선 “계엄 하려고 김용현을 국방부 장관으로 보냈다”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김민석 최고위원과 이재명 대표가 의혹을 제기하거든요. 대통령실은 8월 말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라고 부인하죠. 김용현 장관도 인사청문회에 나와서 “지금 이 시대 계엄을 한다면 어떤 군인이 따라오겠느냐”면서 부인합니다. 어쨌건 그때 임명이 되지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임명되자마자 한 게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정보사 군무원이 정보사의 조직도 등을 중국 정보당국에 유출했다, 그게 실제로 북한으로 넘어간 거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죠. 해외 나가 있던 정보사 대원들 다 부르고 바꾸고 난리 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정보사령관이 문상호 정보사령관인데 문 사령관을 교체해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거든요. 김용현 장관이 오자마자 문상호 정보사령관 유임을 결정합니다. 문상호 사령관도 이번 계엄에서 역할을 톡톡히 하죠.
작년 10월 1일 국군의날 시가행진 때 많은 무기들을 선보였잖아요. 그날 대통령 관저로 5명이 모입니다. 대통령과 김용현 장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 이진우 수방사령관. 10월 1일 관저에서 대통령은 직접 요리를 해 대접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정치 얘기, ‘좌익세력’ 얘기도 하고 ‘비상대권’ 얘기도 나왔다는 게 검찰 수사 내용입니다.
11월 9일 국방장관 공관에서 다시 5명이 모입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했더니 김용현 장관이 “비상계엄이 선포될 경우 특전사‧수방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곽종근 특전사령관이 “준비 태세를 잘 유지하겠다”, 이진우 수방사령관도 “출동 태세를 갖추겠다”고 답했다고 하죠.
11월 24일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만난 자리에서 상당히 중요한 얘기가 오갔는데요. 김용현 장관은 바로 이날 만남을 기점으로 계엄 준비를 해야 했다고 확신한 걸로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당시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에 대해 대처하려고 했을 때 민주당이 비판한 대목, 이재명 대표 재판과 관련한 검사 탄핵을 민주당이 추진하는 것. 그러면서 “이러다 판사까지 탄핵하겠다”는 우려를 했다는 겁니다. 이어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탄핵 추진,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 추진 얘기를 윤 대통령이 꺼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국회가 패악질을 하고 있다. 비상대책이 필요하다.”
11월 24일이면 계엄 열흘 전이죠. 이 얘기를 듣고 김용현 장관은 ‘아, 때가 왔다’라고 판단했다고 검찰 공소장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서 밑에 직원들에게 세 가지를 준비하라고 얘기합니다. 계엄선포문, 대국민담화, 포고령이 3개를 과거에 어떻게 했는지 참조해서 초안을 작성하라고 지시합니다.
11월 30일. 계엄 사흘 전에 국방부 장관 공관으로 다른 보고를 하러 온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처음으로 구체적 지시를 했죠. “조만간 계엄을 결정하실 것이다. 국회를 계엄군이 통제해야 하고 계엄사가 선관위와 여론조사꽃 등 부정선거와 여론조작 증거를 밝혀내면 국민들도 이걸 찬성할 것이다” 이렇게 합리화를 합니다. 이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헌법상의 비상대권, 비상적인 대통령 권한의 일환이고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하시는 일이니 전혀 문제가 없다. 문제 없으니 걱정말고 계엄 준비 시작하라”고 하죠.
그리고 12월 1일, 계엄 이틀 전 윤석열 대통령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지금 만약 비상계엄을 하게 되면 병력 동원을 어떻게 할 수 있나”라고 묻습니다. 김 장관은 “수도권에 있는 부대들에서 약 2만~3만 명 정도 동원이 돼야 할 것 같은데, 소수만 출동한다면 특전사와 수방사 3천~5천 명 정도가 가능하다”고 답합니다. 머릿속에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 보니까 대통령이 질문했을 때 바로 답이 나온 거겠죠.
대통령이 “계엄을 하게 되면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했더니 “계엄선포문이 있어야 되고 그걸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려야 된다. 대국민담화를 하셔야 되고 포고령을 써야 한다”고 김용현 장관이 얘기합니다. 대통령이 “준비할 수 있나” 했더니 “이미 준비가 됐습니다”라면서 이 세 가지를 보고하죠. 윤 대통령이 이 포고령 내용 중 한 대목을 빼라 그랬는데 그게 ‘야간 통행금지’입니다. 수정 후 다음 날 12월 2일 다시 보고했더니 대통령이 “됐다”고 허락합니다. 그때부터 김용현 장관과 바빠지기 시작하는 곳이 있습니다. 특전사 그리고 수도방위사령부입니다.
▶尹, 계엄 전날 곽종근에 “준비되면 보자”…김용현 비화폰으로 전화
각 부대는 실제 계엄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12월 1일부터요. 먼저 특전사 준비 상황 알아보겠습니다. 12월 1일에 김용현 장관은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계엄 상황에 대비하라. 계엄 상황이 발생하면, 국회, 선관위 과천청사‧관악청사‧선거연수원, 민주당사, 여론조사꽃에 부대를 투입해 시설을 확보하라”고 지시합니다.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머릿속에서 계획을 짭니다. 특전사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데 특전사 예하 제1공수여단은 서울 강서구에 있습니다. 강서구에서 가까운 국회로 보낼 준비를 하죠. 3공수여단은 경기도 이천에 있어요. 선관위 본청이 경기도 과천에 있거든요. 여기로 보낼 생각을 하고. 9공수여단은 인천에 있습니다. 9공수여단은 인천에서 와서 선관위 관악청사 그리고 여론조사꽃을 장악할 준비를 하죠. 그리고 이천에 707특수임무단이 있는데 이 707특수임무단을 국회에 투입한 게 이 헬기입니다.
12월 1일 오후, 1공수여단장에게 곽종근 사령관은 구체적으로 계엄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아요. 검찰 조사에 따르면 “북한이 뭔가 도발을 할 것 같으니 일주일간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안에서 훈련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2일에는 3공수, 707, 9공수에 “북한 도발이 있을 수 있으니까 대기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머릿속에 어떻게 할지를 다 배치해 놓는 거죠.
계엄 하루 전날인 12월 2일 저녁 비화폰으로 전화가 옵니다. 그 전화를 받았더니 대통령이에요. “며칠 이후로 준비되면 보자.” 곽종근 사령관은 “알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그 전화는 대통령 비화폰이 아니라 김용현 장관 비화폰이었어요. 받았더니 대통령이었던 거죠. 얼마 후 바로 김용현 장관이 비화폰으로 전화해서 “깜짝 놀랐지? 내일 보자” 이렇게 얘기합니다.
12월 3일, 계엄 당일 날이 밝자 곽종근 사령관은 간부들에게 비상대기 태세를 지시합니다. 그러면서 헬기를 운영하는 항공작전단장에 “UH-60 블랙호크 헬기 몇 대를 동원할 수 있나?” 물어봐요. 그랬더니 “12대 동원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실제로 이 블랙호크 헬기가 계엄 날 국회로 넘어가지요.
원래 일과시간 끝나면 곽종근 사령관은 군복을 당연히 벗는데, 12월 3일 저녁 먹을 때 전투복을 입은 채로 간부들과 밥을 먹습니다. 실제로 간부들에게 전투복을 입고 대기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날 밤 9시 45분 비화폰으로 전화가 옵니다. 김용현 장관은 곽종근 사령관에게 “10~20분 뒤에 상황 발표가 있다” 얘기를 해 줍니다. 그런데 조금 늦어져요. 국무회의가 좀 늦어지면서 밤 10시 20분. 대통령이 담화문 발표하기 직전 곽종근 사령관은 707특임단장에게 “오늘 야간훈련 시행하니까 대기하라” 지시를 내립니다. 그러니까 특전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게 검찰 수사 내용이죠.
▶정보사 10명, 선관위 과천청사 인근서 미리 대기
정보사로 넘어갑니다. 특전사가 테러에 대처하는 조직이라면 군사 기밀을 수집하는 건 바로 정보사령부인데 여기는 HID도 있습니다. 김정은 목 따러 가는 정예 부대가 정보사 밑에 있지요. 김용현 장관이 계엄에 대해 가장 먼저 실무적인 얘기를 한 쪽은 정보사 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김용현 장관은 계엄 두 달 전인 10월 14일 문상호 정보사령관에게 “노상원 장군 하는 일을 잘 도와줘라” 얘기합니다. 노상원은 그 아기보살과 함께 있었다는 퇴역 장군으로 민간인 신분인데요. 김용현 장관의 복심으로 계엄에 상당히 영향을 미친 걸로 지금 검찰 수사를 받고 있죠. 노상원은 전 정보사령관, 문상호는 현 정보사령관입니다. 김용현 장관이 문상호 사령관에게 모든 걸 지시해야 되는데, 노상원을 통해서 이렇게 지시가 내려갑니다. 10월 하순 노상원 전 사령관이 “대규모 탈북 징후가 있으니 임무 수행 잘할 수 있는 인원을 선발해라.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니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라”고 얘기했다는 거예요. 실제로 10월 말에 이 얘기를 듣고 문상호 사령관은 2명의 대령을 부릅니다. 서 대령과 어 대령에게 “요원 15~20명씩 선발해서 보고하라” 지시를 내립니다. 그래서 각자 대원들을 선발하죠.
이후 11월 초 안산에 있는 한 카페에서 세 사람이 만납니다. 어 대령은 못 나왔고 노상원 전 사령관, 문상호 사령관, 서 대령이 함께 만나요. 안산이 바로 노상원 전 사령관 집이 있는 곳이죠. 그 자리에서 노상원 전 사령관이 비상계엄 선포 시 “선관위 전산 자료를 확보하고 직원들을 체포‧감금하고, 심문해서 부정선거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는 게 검찰 수사 내용입니다.
12월 1일, 그러니까 계엄 선포 이틀 전 안산 롯데리아에서 노상원 전 사령관과 문상호 사령관, 어 대령이 만납니다. 거기서 “조만간 계엄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우선 1개 팀이 먼저 선관위 진입해서 전산실을 지키고 추가 인원을 투입해서 선관위 출입 인원을 확인하라. 누구를 확인해야 되는지 확인이 필요한 대상 명단은 내가 나중에 주겠다”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주지요.
12월 3일 오전, 노상원 전 사령관은 문상호 사령관에게 전화합니다. “주중에 뭔가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대기하라”고요. 그런데 점심 때 다시 전화를 해요. “주중이 아니라, 오늘 저녁 9시경 정부 과천청사 일대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12월 3일 결행해야겠다는 게 노상원에게 전달된 시점이 바로 그날 오전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오전 10시에는 “주중”이라고 했는데 다시 점심때 전화해서 “오늘이다” 얘기를 한 거니까요.
그래서 실제로 밤 9시경 실탄 100발을 소지한 정보사 대원 10명이 선관위 과천청사 인근에서 대기를 하고 있습니다. 계엄이 선포된 건 밤 10시 27분인데 이미 1시간 반 전 정보사 대원들은 선관위 과천청사 인근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계엄이 선포되자마자 바로 들어가려고요.
밤 9시 30분 노상원 전 사령관은 문상호 사령관에게 전화합니다. “언론속보 나오면 바로 선관위에 들어가서 출입 통제하고 선관위 전산실 직원 5명을 확보하라”고요. 문상호 사령관이 계획처장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는데 노 전 사령관이 불러준 선관위 5명 직원 명단입니다. 그러면서 “이들을 확보해야 된다. 밤 10시경 TV 언론보도 보면 바로 행동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정보사의 역할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후 8시,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2시간 30분 전에 판교에 있는 100여단 사무실에 정보사 HID를 포함한 요원 36명이 소집돼 있었습니다. 이들의 역할은 ‘체포조’였습니다. 문상호 정보사령관은 밤 9시 30분에 판교로 갑니다. 이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곧 임무가 부여될 테니 서 대령과 어 대령 지시를 잘 따르라” 이야기를 해 놓죠.
▶여인형, 11월부터 “대기 태세 준비” 지시
방첩사로 갑니다. 방첩사령부는 예전으로 치면 기무사죠. 기무사가 박근혜 정부 이후 폐지되면서 방첩사령부가 되는데 국방부 장관 직속 부대입니다. 제일 초창기부터 대통령과 만날 때마다 김용현 장관이 데리고 다녔던 여인영 방첩사령관도 계엄을 빨리 눈치 채죠. 11월부터 이미 간부들에게 북한 오물풍선을 핑계로 대면서 “술 마시지 마라. 언제든지 비상 걸리면 나올 수 있게 대기 태세를 잘 준비하라” 지시를 내립니다.
실제로 12월 3일 저녁에 김용현 장관은 여인형 사령관에게 전화해서 “잘 대비하라” 지시를 내리죠. 이어 1처장에게 여인형 사령관이 지시합니다. 방첩사 수사관들이 선관위 과천청사, 관악청사, 수원에 있는 연수원까지 다 가도록 하죠. “그곳에서 출동해 전산실 출입 통제하고 그 이후에 국정원과 수사기관 등 분석팀이 오면 인계해 주되 만약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떼어 오라”고 합니다. 선관위 서버에서 뭔가 확인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계엄 직전 여인형 사령관은 사령관실에서 간부들 하고 대기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중간에 김용현 장관이 전화를 해서 “좀 늦어질 것 같다” 이런 얘기도 직접 여 사령관에게 했다는 게 검찰 수사 내용입니다.
수방사, 수도방위사령부는 그야말로 우리 수도를 방위하는 곳이죠. 그래서 영화 ‘서울의 봄’ 보면 나오지만 쿠데타든 뭔가 일이 터질 때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수도 서울에 가장 가까이에 많은 병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수방사는 남태령에 있습니다. 이진우 수방사령관도 11월부터 부하들에게 북한 도발 가능성 얘기하면서 철저한 경계 태세 지시하며 긴장감을 불어 넣었습니다. 계엄 선포 전 김용현 장관은 이진우 사령관에게 본인의 작전을 얘기해요. “계엄이 선포되면 경찰청이 기동대 26개, 한 1500명이 국회를 막을 거다. 국회 출입구를 봉쇄할 거다. 그러면 너희 수방사는 2선에서 국회 본관, 그리고 의원회관 등의 출입문을 확보해서 차단하는 걸 해야 된다”고요. 또 “너희가 통제를 하면 특전사 707이 국회 안으로 헬기를 타고 들어가서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하죠. 그래서 이진우 사령관은 수방사 1경비단의 핵심 부대인 태호(35특임대)와 백호(2특임대) 부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합니다.
계엄 당일 밤 9시 48분 김용현 장관이 전화합니다. 이진우 수방사령관에게 계엄 선포 직전 “부대에서 대기하면서 작전 실행을 준비하라” 지시한 거예요. 이진우 수방사령관은 곧바로 경비단장, 군사경찰단장, 참모장에게 전화해 “지금 전투복 입고 내 방으로 오라”고 합니다. 이제 모두가 대기하고 있는 거예요. 계엄이 선포되기만을.
경찰로 갑니다. 12월 3일, 계엄 당일 오후 7시 20분 두 사람을 삼청동 안가로 부릅니다.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갔더니 대통령과 김용현 장관이 있었죠. 대통령이 이렇게 말합니다. “종북좌파 세력 때문에 나라가 상당히 혼란스럽다. 오늘 밤 10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해야겠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군이 국회 등 여러 장소에 출동할 것이다. 경찰이 나가서 국회 통제를 잘해달라”고요. 그러면서 문서를 줬다는 거예요. 문서에는 비상계엄 관련 시간과 장소가 나와 있었습니다. 밤 10시 국회, 10시 30분 민주당사 이런 식으로 적혀 있었다는 거죠.
안가를 빠져나와 서울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본인 사무실로 갑니다. 경비안전계장에게 오후 7시 45분에서 8시 7분 사이 전화를 걸죠. “오늘 밤 국회가 위치한 영등포 관내에 가용할 수 있는 경찰 기동대 현황을 파악하라”고요. “기동대 5개가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한 번 더 알아보고 “광화문에 있는 기동대 1개를 더 끌어올 수 있다”는 걸 확인합니다. 밤 9시쯤 국회 출입문이 모두 몇 개고 개폐 현황 이런 것들을 다 보고받아요. 그리고 “밤 10시에 모두 출동할 수 있도록 대비 태세를 갖추라” 지시하죠. 경찰, 준비 끝났습니다. 아까 방첩사, 특전사, 정보사 준비 다 마쳤습니다. 준비 마친 상태에서 계엄 선포를 기다리고 있는 거죠.
그런데요 8시 22분경 대통령이 전화를 한 통 합니다.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게. 이번 계엄 과정을 보면 국정원에 대해서는 조태용 국정원장에 직접 연락을 안 하고, 오히려 1차장인 홍장원 차장에게 연락을 하는데 더 믿고 있었을 수도 있죠. “한두 시간 후에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전화기를 잘 들고 대기하라” 얘기를 해 놓습니다.
실제로 대통령이 계엄 선포 후에 전화를 하지요. 그날 김용현 장관은 오후 4시경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부릅니다. 그 자리에서 “밤 9시 40분에 국방부 장관 접견 대기실로 와 있어라” 지시를 내리죠.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밤 10시 비상계엄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예요. 이 10시 계획이 좀 늦어집니다. 계엄이 벌어지는 그 순간부터는 검찰의 공소장과 또 대통령 측 간 치열한 대립도 벌어지거든요. 그 내용까지 2편으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자, 퀴즈 나갑니다!
정답 아시는 분은 영상 밑에 댓글로 남겨주시면 제가 그중에서 다섯 분 추첨해서 선물 드리겠습니다. 아시죠? 평일 오후 7시엔 <뉴스A> 주말 오후 3시엔 <동앵과 뉴스터디>. 오늘 순서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구성: 동정민 이남희 기자, 김정연 작가
연출: 황진선 PD
편집: 박현아‧이혜지‧허수연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