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이 좋았다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굳이 비교하자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그때처럼 온 국민이 똘똘 뭉쳐야 한다고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지금 어떤 상황인고 하니 그야말로 각자도생(各自圖生)입니다. 어학사전을 검색하면 "제각기 살아 나갈 방법을 꾀함"이라는 의미인데요.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에 돌아오고 나서 국제사회 돌아가는 판을 보면 내 살길은 내가 알아서 찾는다. 이게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채널A 외교안보국제부 김유진 차장입니다.
특파원 토크, 특톡. 오늘은 베이징도, 워싱턴도, 도쿄도 아닌 서울에서 전해드립니다.

▶ 트럼프 '추앙' 나선 정상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외교마저 비즈니스로 바꿔버리는 기술을 보여주고 있죠.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과 우방의 안보도 얼마든지 거래 수단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한국도 트럼프 행정부 1기를 호되게 겪었는데, 딱히 예방주사가 돼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동맹에 대한 개념이 없다 보니까 동맹에도 시비를 걸고 싸우려 한다고 1기 때 같이 일했던 존 볼턴 보좌관 같은 참모들이 경고했었죠.
어쨌든 주요국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하나, 둘 만남을 갖고 있는데, 나라별, 정상별로 트럼프 대통령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외교 분야에서 취재를 꽤 오래 했는데 이런 건 처음 본다 싶은 장면들이 많이 있어요. 그중 가장 흥미진진한 나라가 일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아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지난 1기 때부터 일본에 대한 애정을 대놓고 드러냈었죠. 아베 전 총리와 밀월 관계를 유지하며 브로맨스도 연일 이슈가 됐어요. 이번엔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정상 간 만남이 아니라 스타와 팬의 만남을 연상시킬 정도였죠. 이시바 총리, 트럼프를 향해 "매우 진솔하고 강한 의지를 가진 지도자다", "신이 당신을 구원했다" 각종 아부 발언을 쏟아냈는데요. 미국 가는 길에 황금 사무라이 투구를 주문 제작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이게, 그냥 장식품이 아니라 실제로 착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과거 아베 전 총리는 금칠한 골프채를 선물하기도 했죠.
일본은 미·일 정상회담을 성공적이라고 자평했지만, 워싱턴포스트는"이시바는 최선을 다해 트럼프를 칭찬하고 아부를 통해 웃음을 유발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일본 측 인사들 이야기를 좀 들어보니까요, 이시바 총리는 자민당 내에서도 야당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아베 전 총리하고는 결이 다른 사람인데, 트럼프 만나러 가기 전, 아베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를 찾아가 트럼프와 잘해보고 싶다며 팁을 받아 갔다고 해요. 아부하는 게 이시바 총리 스타일은 아니라는데, 국익을 위해서는 자존심을 좀 접은 거죠.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 틈만 나면‘방위비 더 내놔’ 하면서 일본을 물고 늘어집니다. 관세 폭탄도 맞을지 모르겠어요. 이시바 총리, 고민이 깊겠습니다.

대놓고 아부하지 않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을 추종하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이스라엘과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인데요.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우파 지도자를 가졌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제일 빨리 미국을 찾았는데요.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를 직접 가져서 휴양지로 만들고 개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심지어 본인 SNS에 가자지구의 미래 모습을 담은 듯한 AI 홍보 영상도 게시했어요. 생각보다 역풍이 심하자 강요하는 건 아니라면서 한발 물러섰는데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신념을 바꾼 국가 정상도 있습니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인데요. 전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친구라고 부르고 우애를 과시하더니 최근에는 러시아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달 UN 총회에서 반러시아 결의안에 대해 기권 표를 행사했는데, 러시아로부터 대놓고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어요.
밀레이 대통령은 각종 기행으로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2023년 12월 취임 이후 9번이나 미국을 방문했는데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과 12분간 약식회담도 가졌습니다.
이 정도면 성덕이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 방관? 맞대응?

할 말은 해야겠다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영국입니다. 지난달 27일 키어 스타머 총리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미영 정상회담을 가졌는데요. 스타머 총리는 회담에 앞서 영국 국방비를 GDP의 2.5%로 늘릴 계획을 공개하고 주도권을 잡으려 했죠. 아무리 봐도 트럼프가 유럽을 지켜줄 것 같지 않거든요.
실제 회담에서는 트럼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를 하다가 충돌하기도 했어요. 트럼프 대통령이 대놓고 러시아 편을 들었는데, 스타머 총리는‘침략자인 러시아를 보상하는 평화가 돼선 안 된다’고 맞받은 겁니다.
스타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싸우고 나온 젤렌스키를 런던으로 초대해 꽉 끌어안아 주기도 했어요. 덕분에 스타머 총리의 지지율도 쑥 올라갔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덕에 지지율이 올라간 사람, 또 있습니다. 최근 중국, 캐나다와 함께 미국을 상대로 관세 전쟁을 치르는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입니다. 멕시코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온 건 헌정사상 200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과학자 출신인 셰인바움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감정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오히려 이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트럼프에게서 관세 유예를 끌어냈거든요.
최근 멕시코에서 셰인바움 대통령 지지율은 85%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미국과의 관세 전쟁에서 선방했다고 잔치까지 열었어요. 많은 국민에게 존경받는 대통령, 부럽습니다.

트럼프만 만나면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정상도 있습니다. 이제 전직이 됐죠.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전 총리가 아닐까 싶은데요. 관세 때문에 트럼프와 여러 번 전화 통화를 했는데 대외적으로는 우호적인 분위기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욕설까지 오간 것으로 전해져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대놓고 트뤼도 전 총리 속을 박박 긁었죠.
▶ ‘한국 생존법’은 그때 그때 달라요?

자,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전 세계가 미국을 두고 각자도생에 나선 가운데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부르며 안보 비용을 요구하고 있죠. 앞으로 방위 공약 이행을 대가로 더 강력한 청구서를 내밀 수도 있어요.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직접적으로 돈 얘기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취재를 해보니까요, 우리 외교당국도 시나리오도 만들고 이런저런 대비는 하고 있는데 미국의 높은 사람 만나는 것도 전과 달라서 쉽지 않다고 해요. 하루 반나절 기다리기가 일상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한국 대통령이 누구냐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4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미국에 내밀 카드가 많지 않다는 점인데요. 외교는 국내적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러기도 쉽지 않죠.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리 엉뚱한 짓을 해도 그 영향력이 전 세계에 미치는 건 부인할 수 없어요. 트럼프 본인이 제일 잘 알죠, 그 사실을.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도 저렇게 막무가내로 마이웨이를 걸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트럼프 머리에 한국이 그저 돈 뱉어내는 기계로만 남지 않도록 우리 외교 안보 라인의 깊은 고민이 절실한 때입니다.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재미로만 생각하기에는 다소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 시점에서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주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국민들의 걱정은 언제쯤 덜어질지, 그날이 곧 오겠죠.
취재 : 김유진 기자
제작 : 정현지 CD
작가 : 박정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