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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대·압박밴드로 17시간 버텼다…필리버스터 전쟁 [런치정치]

2025-09-27 12:00 정치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이 어제(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 도중 방청석 초등학생들에게 덕담을 전하다가 눈물을 보였다. (출처 : 뉴시스)

"내가 17시간을 넘겼나요?"

17시간 12분. 어제(26일) 역대 최장 시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기록을 경신한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이 본회의장을 나오며 한 말입니다. 몸이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자 박준태 의원이 부축했는데요. 힘들지만 표정만은 밝았던 박 의원, 지난해 자신이 세운 15시간 50분을 깨고 최장 기록을 새로 쓴 겁니다.

5남매 아빠의 '눈물' 

그제(24일) 오후 6시 반부터 다음날 오전 11시 42분까지 이어진 박수민 의원의 토론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단연 '눈물'이었습니다. 15시간 30분째 발언을 이어가던 박 의원은 "여러분의 미래는 누구도 걸어보지 않은 시간이다. 여러분들이 걸어가시면 된다"고 방청 온 초등학생들에게 덕담을 전하다 "갱년기인지 자꾸 눈물이 난다"며 흐르는 눈물을 휴지로 닦아냈습니다. 박 의원은 "5남매 막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라 또래라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다"고 말하더라고요.

박 의원의 눈물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민생회복지원금 반대 필리버스터를 할 때도 "아빠는 25만 원 상품권을 반대했지만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너희들의 미래를 책임진다"며 눈물을 훔쳤는데요. 박 의원의 부인은 채널A와의 통화에서 "평소에 눈물도 없는 사람이 필리버스터만 하면 눈물을 보인다"고 웃었습니다.

'해적'이냐 '소수파 무기'냐 

의원석도, 방청석도 조용하지만 주말인 오늘(26일)도 국회 본회의장이 환하게 불 켜진 이유, 그제(25일)부터 4박 5일간 필리버스터에 돌입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청과 방통위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4건의 쟁점 법안들을 통과시키려 하자 야당인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선언한 겁니다.

필리버스터는 소수파가 장시간 토론 등 합법적인 수단을 이용해 다수파의 의사진행을 고의로 방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해적이나 약탈자(vrijbuiter)를 뜻하는 네덜란드어의 어원에서 보듯 의회를 마치 해적처럼 혼란에 빠뜨린다는 비유에서 시작됐습니다. 범여권 의석 수가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릴 수 있는 180석이 넘는 만큼 107석에 불과한 국민의힘이 법안 통과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인 셈입니다.

'필리버스터 전쟁'을 위해 의원들은 무엇을 준비할까요. 숨은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상임위서 선정…'경험자 우대' 

필리버스터 주자는 보통 법안 소관 상임위에서 상의해 결정합니다. 해당 사안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를 내세우기 위해서죠.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행정안전위원회가 소관 상임위인데,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인 박수민 의원이 1번 타자로 나선 겁니다. 이미 지난해 필리버스터 때 최장 기록을 세운 것도 주요한 이유였고요.

이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 첫 반대 토론자로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최형두 의원이 나왔죠. 기자 출신인 최 의원 역시 전문가이면서, '필버 유경험자'입니다.

무제한 토론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상 24시간 제한 토론인 필리버스터. 국회법상 필리버스터 시작 24시간 후에는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이 동의하면 토론을 강제 종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원들끼리 '최소 시간 룰'을 따로 두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어차피 여당과 공수 교대가 진행되니 따로 할당량을 정할 필요는 없다고요.

오래 버티기 준비물은 사탕 

 17시간 넘는 필리버스터를 마치고 나온 박수민 의원이 어지러운 듯 몸을 휘청대자 박준태 의원이 부축했다. (채널A 여랑야랑팀 촬영)

그래도 필리버스터에 들어간 의원들, 최대한 오랫동안 본회의장에서 버티기 위해 노력합니다. 먼저 해본 선배들에게 알음알음 팁도 전수받고요. 기본 준비물은 사탕입니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입이 마르니까, 목도 보호하고 당 보충을 위해 양복 호주머니에 사탕 챙기기는 필수라고요.

숨은 고수는 복대를 챙깁니다. 바로 박수민 의원의 이야기입니다.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하는데, 비틀거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면 복대를 해야 한다고요. 이번에 새롭게 챙겨간 준비물도 있습니다. 바로 종아리 압박밴드입니다. 오랫동안 서 있다 보면 다리가 퉁퉁 붓는다고 합니다. 15시간 넘게 서 있다가 3박 4일 고생했던 지난 필리버스터를 교훈 삼아 이번에는 종아리 압박밴드를 챙겨갔다는 겁니다.

필버 다음 대기자도 '고통'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의석을 지키는 의원은 거의 없다. (채널A 여랑야랑팀 촬영)

복수의 의원들에게 물어보니, 필리버스터를 성공으로 이끄는 전략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얼마나 오래 해서 임팩트를 주느냐, 다른 하나는 바통을 넘겨주는 타이밍을 어떻게 잡느냐입니다. 특히 체력적으로 힘들고 보는 사람도 적은, 가장 고독하고 외로운 새벽 시간을 버틸지 넘길지가 관건이라고요.

그리고 한켠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죠. 바로 필리버스터 다음 주자인데요. 박수민 의원 다음 차례였던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언제 토론이 끝날지 모르는 만큼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을 겁니다. 박 의원, "서 의원도 대기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점심 직전 바통을 이어 받은 서 의원, 토론 종결 표결 때까지인 6시간 48분 동안 찬성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필리버스터 듣고 생각 바꿨다"

국회법상 24시간이 지나면 토론을 마치는 표결을 할 수 있다보니 '하루짜리' 필리버스터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결국 법 통과를 막을 수 없다고요. 하지만 필리버스터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을 바꾼 의원도 있었는데요.

지난해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당 주진우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듣고 '채상병 특검법'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합니다. 다만 반대 생각을 가진 의원의 토론은 대부분 듣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겠죠.

소수당이 쓸 수 있는 최후의 무기 '필리버스터'. 국민의힘은 닷새 동안 이 무기를 통해 무엇을 얻게 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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