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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장기기증 가족 두 번 울리는 병원의 허술한 관리
2017-11-13 19:50 뉴스A

장기기증은 뇌사자가 자신의 생명을 여러 환자에게 나눠주는 힘들고도 뜻깊은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선 장기기증 비율이 낮은 편인데요, 기증자 가족을 눈물 나게 하는 병원의 허술한 관리도 장기기증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최주현 기자의 더깊은뉴스입니다.

[리포트]
지금도 방문만 열면 '예'하고 답할 것 같은 아들. 부모는 아직도 아들이 쓰던 물건을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홍우기 / 장기기증 유가족]
"버리지 못하겠더라고요. 5년 동안 교제한 아가씨하고 결혼을 약속하고 상견례를 5일 앞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결혼준비에 한창이던 2년 전 여름, 갑자기 쓰러진 아들은 뇌사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섯 사람에게 새로운 삶을 나눠주고 영원한 이별을 했습니다.

[상희순 / 장기기증 유가족]
"'네가 (기증을) 원하지 않는다면 심장을 멈춰다오'했는데, 아이가 견뎌주더라고요. 눈물이 주르륵 흐르면서… 6명을 살렸다면 이름은 남겼잖아요."

[최주현 기자]
"국내의 한 병원 벽면에는 이렇게 뇌사상태에서 장기기증을 하고 떠난 장기 기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채워져 있습니다.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나는 장기기증. 그런데 환자 대신 어렵게 장기기증을 결정했던 일부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7월 울산으로 물놀이를 갔던 4살 A군. 풀장 안에서 놀던 A군이 뇌사상태에 빠지면서 가족 피서는 한순간 비극이 됐습니다.

[수영장 관계자]
"저희하고 관련 없습니다. (아이가) 뇌사판정만 내려지고 저희도 거기까지만 들었거든요…"

보름 넘는 입원생활 뒤 부모는 장기기증을 결정했습니다. 4살 어린 아들은 그렇게 네 사람에게 생명을 나눠줬습니다.

그러나 장기 적출이 끝난 뒤 수술실에 있던 부모는 너무나 허탈했습니다.

[A군 어머니]
"(수술실)거기서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하면 거기서 끝. 차 밑에까지 같이 동행해 준다거나 그런 것도 없어요."

수술이 끝난 뒤 병원의 태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냉정했습니다.

장기 기증을 한 울산에서 장례식이 열린 충남 당진까지 A군 부모는 65만 원을 들여 직접 사설 구급차를 이용했습니다.

자정이 넘은 새벽 구급차에 아들의 시신을 싣고 가는 동안 위로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A군 어머니]
"하얀 천으로 쌓인 애를 옆에 두고, 애가 다 식어 가지고 엄청 차갑고… 그렇게 꼭 굳이 부모한테 그렇게 데리고 가라고 해야만 했는지…"

장기 적출을 한 뒤 유족들이 겪게 되는 심각한 심리적 후유증도 큰 문제입니다.

김모 씨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지자 장기기증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와 고통은 생각보다 컸고 온 가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김모 씨 / 장기기증 유가족]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컸거든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판정받았어요. 저희 엄마도, 저희 오빠도. 사비로 정신과 상담을 받았어요."

병원치료까지 받고 있지만 김씨를 도와주는 곳은 없습니다.

[김모 씨 / 장기기증 유가족]
"2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버지 장기 기증을 안 할 것 같아요."

도대체 장기기증이라는 숭고한 결정을 내린 유족들이 이런 고통을 겪는 이유는 뭘까. 전국에서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병원은 79곳.

그런데 이 가운데 49곳만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있습니다.

협약을 맺은 49개 병원은 기증원이 장례식장 동행과 사회복지사 방문상담 등 유족들에 대한 세밀한 사후관리를 담당합니다.

그러나 나머지 30개 병원은 관리기준이 없거나 제각각입니다.

[A병원 /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비협약]
"(심리상담이나 이런 서비스는?) 기증 이후에 따로 제공되는 것은 없다. 장기조직기증원에서 관리하는 병원만 제공되는 거라서…"

그렇다면 30개 병원은 왜 기증원과 협약을 맺지 않을까. 질병관리본부의 산하기관인 기증원은 200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장기이식수술을 해오던 일부 대형병원들이 기증원 매뉴얼이 아닌 자체 운영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는 겁니다.

[B병원 /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비협약 ]
"(우리 병원이) 역사가 더 오래됐고, 경험이 더 많습니다. 모든 인력이나 시설이 완비된 상황이거든요. 굳이 협약 안 해도 뇌사자 관리에 지장이 없거든요."

[하종원 /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장(협약 병원)]
"(유족 예우) 시스템이 양쪽에 가고 있기 때문에, 예우 관리에 있어서도 이원화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10년 째 만성신부전증을 앓으며 투석을 받고 있는 55살 강모 씨. 유일한 희망은 신장 이식이지만 기다림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강모 씨 / 신장 이식 대기자]
"약간 겁이 난다고 그럴까요. 시커먼 그림자가 조금씩 보이고, 꿈에서도. 전에는 없었는데…"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3만 명이 넘습니다.

그러나 장기이식 평균 대기 시간은 1185일, 3년이 넘습니다. 인구 100만 명당 장기 기증율도 미국 이탈리아, 영국 등 선진국들은 20명이 넘지만 우리는 10명이 채 안됩니다.

생명을 나누는 장기 기증 활성화를 위해선 국민들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지만 기증자 가족에 대한 관리도 함께 개선돼야 합니다.

채널A 뉴스 최주현입니다.

최주현 기자 choigo@donga.com
연출 : 송 민
글·구성 : 전다정 장윤경
그래픽 : 김민수 양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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