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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검복 좀 대신 사주세요”…교도관의 수상한 부탁 [사건현장 360+]

2025-04-16 15:50 사회

"장판 거래 돼죠?"…믿고 거래한 대가

 교도관 사칭범이 대신 사달라고 요구하는 방검복. 교정본부는 물품 대리 구매를 요구하지 않는다.

경북 경주에서 30년 넘게 장판 업체를 운영해온 A 씨. 지난 달, 경주교도소 교도관이라며 걸려온 전화가 그의 일상을 무너뜨렸습니다.

A 씨는 "교도소에서 쓸 장판이 필요하다"는 교도관의 말에 의심은커녕 오히려 대형 계약이 성사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앞섰습니다. 교도소 공문, 사업자등록증도 확인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교도관에게 조금 이상한 전화가 다시 왔습니다.
교도관들이 입는 보호 조끼를 '대신' 사달라는 것입니다.

 교도관 사칭범이 실제 전화한 내용.

"저희 교도관들 입는 보호 조끼 있잖아요. 거래처가 있는데 갑자기 한 개당 95만 원에서 110만 원으로 단가를 올렸어요." (경북교도소 교도관 사칭범)

거래하던 방검복 업체가 가격을 올렸다면서 A 씨에게 본인 대신, 도소매 업자 자격으로 좀 싸게 구매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주문만 해주면 자신들이 직접 와서 결제하겠다는 말에, A 씨는 고민 끝에 결국 1천700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그리고 연락이 뚝 끊겼습니다.

 경북의 한 장판 업체 대표 A 씨. 교도관 사칭범 전화로 1700만 원을 송금해 피해를 입었다.

"그들이 접근한 기간이 5일에서 일주일 사이였는데 유독 그 때 그랬어요. 계좌로 돈을 보내고 '아차, 싶었죠.' 오래 일을 했는데 내가 이렇게 당하다니…1700만원 어치 장판도 팔아야 되는데… 정부 기관이라고 해서 그냥 믿었어요." (A 씨 교도관 사칭 피해자)

전국 각지서 반복되는 수법…최근 2달 사이 극성

 위조된 공문서와 사업자등록증. 교도관 사칭범들이 보낸 가짜 문서.

경주교도소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최근 서울, 부산을 비롯해 대구, 대전, 광주 등 같은 수법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교도관이라고 하면서 영세 업체 측에 연락해 비슷한 방식으로 방검복 등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교도관 사칭범이 연락한 SNS 내용.

서울에서 가구 업체를 운영 중인 B 씨는 "남부교도소라고 연락이 왔다"며 "가구 몇 개를 주문하더니 이후에 방검복을 대기 구매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도소 측에 확인한 덕에 피해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두 달 사이 관련 피싱 범죄가 유독 기승 부리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두 달 사이 피해 신고 건수만 70건이 넘었습니다. 전국 30여 개 교정시설이 사칭돼 범죄에 이용된 걸로 보입니다.

공공기관 신뢰 악용한 신종 수법

'교도소'라는 공공기관 이름을 앞세운 이 피싱 수법은 기존 금융사기와는 결이 다릅니다. 일단 물품을 납품하거나 대신 구매해달라고 접근한 뒤, 갑자기 다른 물건 값을 선결제하도록 유도합니다. 교정시설 특성상 후불 결제가 일반적이라는 점을 악용한 겁니다.

중장년층 자영업자나 도소매업체들이 주요 대상입니다. 범행에 사용된 공문 등은 실제 문서 양식을 흉내낸 위조본이고, 일당은 대포폰과 대포계좌를 활용해 경찰의 추적을 피하고 있습니다.

"기관별 개별 구매 불가"…현직 교도관의 경고

 법무부는 수상한 연락이 올 경우 해당 교정시설에 전화를 걸어 확인할 것을 당부한다.

이 사기의 핵심은 바로 '법무부'란 이름을 내세워 피해자들에게 쉽게 신뢰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실제 교정시설 이름, 그럴듯한 공문, 자세한 주문 내역까지. 피해자들은 "너무 정교해서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읍니다.

일당의 위조 공문서에 실제 자신의 이름이 기재돼 당황했다는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소속 손성훈 교도관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방검복이나 교도소 장비 같은 건 전국적인 통일성이 필요하고 A/S 부분도 있기 때문에 각 기관별로 개별적으로 구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손성훈 화성직업훈련교도소 교도관)

하지만 이런 현실을 모르는 시민들은 공공기관이라는 이름만 믿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겁니다. 법무부는 비슷한 요청이 올 경우, 반드시 해당 교정시설에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할 것을 권고합니다. 교정시설 관련 구매 요청은 사전에 법무부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공개되며, 개별 전화 거래는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피해 예방을 위한 제도적 보완 역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 차원에서 유사 교정기관 명의 사용을 제재하고, 피해 사례를 공개해 범죄 예방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싱은 중범죄지만 대응은 더뎌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는 피싱 수법에 비해 수사기관의 대응은 더디기만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직형 사기는 경찰 추적이 어렵고 피해자 구제도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공문서 위조나 사기 같은 경우에는 10년 이하 징역형으로도 처벌이 가능한 중범죄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가해자들이 대포통장이나 대포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해자를 찾아내기 어려워서 실제로 처벌이나 손해배상은 쉽지 않습니다." (안성열/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이사)

낯선 전화번호로 교도관이라며 걸려온 전화 한 통. 오늘도 누군가는 그 말에 혹해, 열심히 벌어온 돈이 입금 순간에 사라지는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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