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4시 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청년 토크쇼 시작을 앞둔 대구 경북대 캠퍼스. 행사가 열릴 건물 앞에서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 전 대표 규탄 집회가 열렸습니다. "한동훈 배신자" "한동훈은 대구가 만만한가" 등의 손팻말을 들고 한 전 대표 방문을 막아선 겁니다.
경북대 일부 재학생은 성명도 발표했습니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감옥에 들어가게 한 한동훈은 유례없는 배신자이자 파렴치의 아이콘"이라고요. 전통 보수 지지층이 포진한 대구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한 전 대표에 대해 분노를 쏟아낸 거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전 대표의 지지자들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계엄 막은 한동훈, 국민에 진심인 한동훈'이란 현수막과 한 전 대표의 책, '한동훈 파이팅'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응원했는데요. 양측의 팽팽한 신경전, 이어졌습니다.
한 전 대표, 결국 시위대가 포진한 건물 정문 대신 내부 통로로 강연장에 입장했는데요. "시위대를 일부러 피했냐"는 질문에 한 전 대표 측 이렇게 답했습니다. "본관에서 경북대 총장을 뵙고 강연장까지 가장 가까운 동선을 택했을 뿐"이라고요.
한 전 대표가 경북대를 찾은 어제,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유승민 전 의원도 경북 경산 영남대를 찾았는데요. 돌맞을 각오를 하면서도 '탄핵 찬성파'인 여권 대선주자들이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을 찾은 이유는 뭘까요. 이들의 TK행(行), 등돌린 TK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까요.

"대구서 기대와 팬심도 확인"
한 친한계 의원은 어제 대구행에 대해 "긴장 안 했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실망감도 있지만, 대구에서 한 전 대표에 대한 기대나 팬심도 여전하다는 걸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둔 '대통령의 시간'인데 이렇게 나와서 세를 과시할 수 있는 여권 대선주자가 누가 있냐"고 반문했는데요. 한 전 대표이니 당당하게 대구에 와서 정면승부를 할 수 있었단 겁니다. 결국 본선에 들어가면 야당 이재명 대표와 맞설 주자에게 대구 경북도 힘을 실어줄 거라는 게 한 전 대표 측 생각입니다.
한 전 대표는 어제 대구에서 전통 지지층을 달래는데 주력했는데요. 한 대학생이 토크쇼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대구에서 절 맞아주는 게 어렵다는 걸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해준)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린다. 정치 참 어렵다"고요. 기자들과 만나선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 지지자들에 대해 "그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분들의 애국심을 존경하고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12·3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하고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데 대해선 "그날로 돌아가더라도 계엄을 막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는데요. 한 전 대표 측은 이렇게 평가하더라고요. "오세훈 시장이 한 인터뷰서 '먼저 탄핵 찬성의사를 밝혔다'는 진행자 질문에 '오해'라고 했는데, 한 전 대표는 대구에서 비판을 두려워 하지 않고 선명성을 드러낸 것"이라고요. 한 전 대표는 대구에서 전통 지지층 민심을 낮은 자세로 경청하되,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전략을 택했다는 겁니다.
유승민 "내가 진짜 TK 아들"

유승민 전 의원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내다 '원조 배신자' 프레임에 갇혔죠. 윤 대통령 탄핵도 불가피하단 입장인데요. 대구 동구을에서 내리 4선을 한 유 전 의원, 그 어느 때보다 TK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어제 박 전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냈던 영남대에서 강연을 했는데요. 올 들어 벌써 세 번째 대구 경북을 찾은 겁니다.
유 전 의원은 어제 기자들과 만나서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대구에서 국회의원하고, 대구에서 학교를 나오고, 정치도 대구에서 했다. 누구보다도 제가 대구 경북의 아들"이라고요.
유승민 전 의원의 한 측근도 같은 얘길 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유 전 의원이 전통 보수층에게 용서 받기 힘든 이유도 이 보수 적통성 때문"이라고요. "다른 사람도 아닌 보수 장손 유승민이 박근혜를 저버렸기 때문에 유승민을 더 싫어하는 것 아니겠냐"고 하더라고요.
"반대 시위 없어서 오히려 아쉬워"
어제 유승민 전 의원의 영남대 강의장엔 특강을 들으려는 학생들만 모였는데요. 한 측근은 "거꾸로 관심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라 오히려 아쉬웠다"고 표현하더라고요. 격렬한 반대 시위도 결국엔 관심인데,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또다른 유 전 의원 측근은 "모두가 유승민 끝났다고 말한 게 10년 전"이었다면서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 나오지 않냐"고 강조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남 가능성은
두 '찬탄파(탄핵찬성파)' 주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후 만날 지도 관심이 쏠리는데요. 한 전 대표는 검사 시절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악연이 있고, 유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 낙인이 찍힌 상태죠.
지난 3일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집권당 대표가 소신이 지나쳐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죠.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란 해석이 나왔습니다. 한 전 대표는 "중간에서 전달한 것이어서 취지가 정확한지 모르겠다"면서도 "박 전 대통령은 경험이 많고 대단히 지혜로운 분"이라며 치켜세웠습니다.
유 전 의원은 어제도 "박 전 대통령하고 오해를 풀고 화해하고 싶다"는 뜻을 다시 한 번 밝혔는데요. "이런저런 통로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해묵은 앙금이 풀리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계속 두드리면 어느날 갑자기라도 기회가 오지 않겠냐는 반응입니다
TK 의원들 '시큰둥'
'찬탄파'인 두 여권 주자들의 대구행에 대한 TK 의원들의 평가는 어떨까요. 한 TK 의원은 "화제성은 있을지 몰라도 대구 경북 주민들은 둘다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는데요.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 탄핵 책임자'로 거론되는 것일 뿐, 정치 지도자로서 관심은 떨어졌고 유승민 전 의원은 화제에 오르내리지도 않는다"고요.
또다른 TK 의원은 한동훈 전 대표의 행보에 대해 "이기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보수 지지자들의 상황과 마음을 봐가면서 해야지, 대통령의 시간에 함부로 나왔다"는 겁니다. 유 전 의원에 대해선 거두절미하고 "배신자 프레임"이라고 딱 한마디만 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탄핵 선고 이후, '찬탄파' 주자들에 대한 TK의 민심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조기 대선 국면에 돌입한다면, 여권에서 가장 중요하게 지켜볼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