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제명 결정 직후 기자회견을 하는 한동훈 전 대표(왼쪽). 장동혁 대표가 지난 7일 당 쇄신안 발표 당시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고 연단을 내려가고 있다. (출처 : 뉴스1)
한 전 대표의 입장 발표를 두고 당내 의견은 분분합니다. 친한계는 즉각 "진심을 담은 사과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박정훈 의원)고 치켜세웠지만, "올린 글의 내용에 대해 많은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송언석 원내대표),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디까지 인정하는지 중요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조광한 지명직 최고위원은 오늘(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진정성 없는 말장난", "악어의 눈물", "교활한 말로 더이상 세상을 속여선 안 된다"고까지 깎아내렸습니다.
당권파가 아니라도 당내에선 한 전 대표의 입장 표명에 대해 "안 한 것보단 낫지만 아쉽다"는 기류가 감지됩니다. 한 중진 의원은 "사과를 하긴 했는데 나같으면 더 확실하게 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쪽 사과'라는 겁니다. 당의 한 인사도 "한 전 대표의 말은 공세지 사과로 보이지 않는다"며 "반응이 양분될텐데 그러면 효과가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재선 의원은 "검사 출신이라 그런지 사과를 자백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검사 아닌 정치인 한동훈?
한 전 대표도 이같은 지적을 당연히 예상했겠죠. 그럼에도 이런 결정을 한 건 '한 전 대표가 왜 입장 표명을 했나'는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친한계 인사들은 원내외를 막론하고 입을 모아 한 전 대표가 이번 메시지를 낸 건 "주변 의견을 수용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본인의 의사라기보다는 측근들과 당 여러 의원들의 조언을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당초 한 전 대표는 당무감사위의 감사 결과는 "명백한 조작", 윤리위의 제명 결정은 "또 다른 계엄"이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친한계 인사는 사과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에 "계단 하나 밟기 참 어렵다"고 했습니다.
친한계를 중심으로 당 내부에선 한 전 대표가 주변 의견을 수용한 것 자체가 달라진 모습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당 안팎에서 한 전 대표가 가장 비판받아온 지점은 "남의 말을 안 듣는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검사지 타협하는 정치인은 아니다"였기 때문입니다.
최근 원내에선 계파를 막론하고 장동혁 대표의 징계 철회만큼 한 전 대표의 유감 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분출했습니다. 일부 중진 의원들은 한 전 대표에게 직간접적으로 이같은 의사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한 친한계 의원은 "한 전 대표는 한 전 대표의 숙제를 한 것"이라며 "100을 원하면 안 된다. 사람의 성정과 자존심이란 게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친한계 인사도 "법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정치적으로 정리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사과한 건 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윤리위의 제명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기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출처 : 뉴스1)한 전 대표의 입장 표명 수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다른 친한계 의원은 "당원 게시판 단어만 없을 뿐이지 맥락상 당원 게시판 사건에 대해 사과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의원은 "굴욕적으로 사과하지 않고 원칙을 세우면서 메시지를 잘 냈다"며 "당원 게시판 사건 문제를 세세히 들어가면 논쟁거리가 많은데, 징계 건은 당권, 정치 싸움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시시비비 논란이 있는 당원 게시판 사건 자체보다는 이후 징계 추진 사태에 초점을 맞춰 메시지를 낸 게 맞다는 겁니다.
신지호 전 전략기획부총장도 SNS에 "정치적 해결이 우선해야한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연좌제 금지는 타협 불가능한 헌법 가치"라며 "당원게시판은 구실에 불과할 뿐, 문제의 본질은 계엄을 막고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에 대한 윤어게인 세력의 증오이자 보복"이라고 했습니다.
계엄 사과와 윤석열 절연
국민의힘에서 사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말 12·3 비상계엄 1주년을 앞두고 장 대표는 '계엄 사과' 압박을 전방위로 받았습니다.
장 대표는 "책임 통감"(지난해 11월 28일 대구 국민대회 연설)이란 단어를 썼다가 정작 1주년엔 돌연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라고 해 당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후 원내의 거센 '지도부 흔들기'에 "이제 변해야할 시점"(지난해 12월 19일 충북도당 당원교육 연설)이라고 복선을 깔더니 새해 쇄신안 발표 때 처음으로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 표현을 썼습니다.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 같던 장 대표가 사과란 말을 처음 입에 올리긴 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윤어게인 세력과의 절연을 말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여전히 남았습니다. '사과인듯 사과 아닌 사과같은 사과'라는 겁니다. 당내에선 이번 한 전 대표의 입장 표명 때와 마찬가지로 "이 정도면 됐다", "아니다. 너무 늦은데다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다"는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당 관계자는 "윤석열 이름 석자를 말하는 건 당 대표의 언어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비상계엄이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이라고 사과한 것 자체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의미하기 때문에 직설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당원 게시판' 워딩만 안 썼지 관련 유감 표명이라는 한 전 대표 측 말과 결을 같이합니다.
여기엔 윤 전 대통령과 절연이 본질이 아니라는 인식도 깔려있습니다. 지도부의 한 인사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하게 된 상황까지 당이 잘못한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앞으로 달라지는 게 진짜 절연"이라며 "이미 탈당하고 죽은 권력인 윤 전 대통령을 다시 한 번 말로 도려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고 했습니다. 대통령을 배출한 당이 공동 책임을 져야지 윤 전 대통령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당만 살겠다는 건 가장 쉬운 방법일지 몰라도 근복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겁니다.
단식 '여론 호응'이 분수령
어제(18일) 4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의료진에게 검진을 받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출처 : 뉴스1)한 전 대표의 입장 표명으로 상황은 미묘하게 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당내 의원들의 의견을 한 전 대표가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공은 다시 장 대표에게 넘어왔습니다. 제명 결정을 취소하고 한 전 대표를 끌어안으라는 요구에 응답해야하는 압박이 다소 커진 겁니다. 한 전 대표가 숙제를 했으니 장 대표의 숙제가 남은 거죠. 장 대표는 지난 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전 대표를 향해 "당내 통합을 위해 걸림돌이 있다면 걸림돌(한동훈 비토 당심)이 먼저 제거돼야할 것"이라고 최후통첩격 메시지를 냈는데, 한 전 대표가 걸림돌을 일부라도 치우는 모습을 보여준 겁니다.
앞서 한 전 대표 제명 결정을 전격 보류한 후, 단식이라는 최고 수위 카드를 꺼내면서 승부수를 던진 장 대표.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은 강력한 대여 투쟁 수단인 동시에 당내 분란 잠재우기용이라는 게 당내 시각입니다.
한 야권 인사는 "정치는 상대방이 가장 싫어할 게 뭔지 생각하고 판단하면 된다"며 "장 대표 입장에선 한 전 대표가 사과하는 게 본인 공간을 줄이기 때문에 가장 싫을테고, 한 전 대표 입장에선 장 대표가 제명 취소하는 게 상황이 어정쩡해지기 때문에 가장 싫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인사의 말에 따르면 한 전 대표는 장 대표가 가장 싫어할 만한 사과를 수위가 어찌됐든 했습니다. 장 대표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최고위가 윤리위의 제명 결정을 의결 혹은 부결하는 게 아니라 타협안으로 당원권 정지 1~2년 정도로 징계 수준을 낮출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한 중진 의원은 "한 전 대표 징계가 필요하지만 제명은 과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했습니다. 한 전 대표는 윤리위 재심의 요청은 하지 않고, 추후 징계 최종 수위와 여론 등 상황을 감안해 가처분 신청 등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오는 26일로 예상되는 최고위에서 징계 최종 결정 때까지 양측의 치열한 여론전이 벌어질 것 같은데요. 장 대표의 단식 투쟁에 당원이 얼마나 결집하고 여론이 호응할지, 한 전 대표는 그 여론을 어떤 방식으로 올라탈지가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력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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