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1: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합동 기증식'에서 김강원(왼쪽 두 번째)·창원(오른쪽 두 번째) 형제가 직접 기증한 문화재를 앞에두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장하얀 기자.)"경복궁에 있어야 마땅한 유물인데…"
지난 2024년 일본의 한 비공개 미술 경매장에 나온 현판이 김강원(58) 씨의 눈에 띄었습니다. '예제예필(睿製睿筆).' 왕세자가 직접 짓고, 쓴 글씨를 말하는 네 글자와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하던 용·봉황 머리 조각이 시선을 붙잡은 겁니다.
어버이날이었던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귀중한 우리 문화재 두 점의 환수를 기념하는 '합동기증식'이 열렸습니다. 일본에서 고미술 업체 '청고당'을 운영하는 김강원 씨와 그의 형 김창원(59)씨가 국가유산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을 통해 기증한 ‘백자청화이진검묘지(白磁靑畫李眞儉墓誌)’와 ‘순종예제예필현판(純宗睿製睿筆懸板)’가 대중에 처음 공개된 겁니다.
● 동생은 '순종예제예필현판', 형은 '백자청화이진검묘지' 기증
합동기증식 전날 국립고궁박물관 별관에서 두 형제를 만난 기자는 문화재를 발견한 사연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설명 2: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별관에서 김창원, 김강원 형제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장하얀 기자.)"경매장에 들어가면 자기 스스로의 안목 밖에 믿을 게 없습니다. 사진을 찍을 수도 없으니까요."
2024년 겨울 수백 명이 모인 일본 도쿄의 한 비공개 고미술 경매장에서 강원 씨는 일본인 수집가와 한참 경합을 벌인 끝에 기어이 현판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의 안목은 정확했습니다. 순종이 세자 시절 어머니 명성황후의 생일을 축하하며 고종과 명성황후의 장수를 비는 내용을 직접 짓고 쓴 현판이었던 겁니다.
"왕실 현판은 거래 대상이 아닙니다. 불행한 시절 어떤 누군가가 그걸 가져간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반환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원 씨의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21년 ‘백자청화 김경온 묘지(墓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4점의 문화재를 기증했습니다. 경매에 나온 고가의 우리 문화재를 자비로 매입해 기증을 결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질문에 김 씨는 "유통시장에서 한국 문화유산이 유통되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전부 반환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로 돌려보내는 게 훼손된 우리 문화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며 "문화재 정체성이라는 큰 틀 안에서 작은 역할을 한 것이 영광스러울 뿐"이라며 겸손하게 답했습니다.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 중인 형 창원 씨는 이번이 첫 기증입니다. 그는 "동생이 예전부터 기증하는 것을 봤다. 좋은 유물이 있길래 연락을 했다. 동생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기증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창원 씨가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발견한 곳도 일본입니다. 평소 서예에 관심이 많던 창원 씨는 지난해 도쿄 고미술 상가를 둘러보던 중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백자판의 예서체의 독특함에 끌렸습니다. 살펴보던 중 마지막 부분에서 '광사(匡師)'라는 글자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고 회상합니다.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명필로 꼽히는 이광사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형제의 아버지는 1990년대 한국고미술협회장을 지낸 김대하 씨입니다. 형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고미술을 접했고 기회가 되면 기증하라고 배웠다"고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가정의 달 맞아 고국으로 돌아온 '효심 깃든' 우리 문화재
(사진설명3, 4: 순종예제예필현판 앞면과 뒷면. 출처=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사진설명3, 4: 순종예제예필현판 앞면과 뒷면. 출처=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강원 씨가 일본 경매장에서 발견한 '순종예제예필현판'은 가로 124cm, 세로 58cm 크기의 나무 현판으로, 1892년 고종 즉위 30주년과 41세(망오·望五)를 기념해 경복궁에서 열린 진찬(연회)에서 당시 세자 순종이 직접 짓고 쓴 글을 새긴 겁니다. 순종은 어머니 명성황후의 생일을 축하하며 고종과 명성황후의 장수를 바라는 글을 썼습니다. 구본능 단정기술연구소장은 "테두리에 못자국이 많다. 이는 귀한 글을 비단으로 감싸고 보호했던 흔적"이라며 "실제 현판의 내용이 의궤에 상세히 적혀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재단 측은 “위계가 높은 왕실 현판의 형식이며 흔치 않은 녹색 글씨에서 귀한 글귀란 상징성이 드러난다”며 그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사진 설명 5, 6: 백자청화이진검묘지 전체 모음. 출처=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사진 설명 5, 6: 백자청화이진검묘지 전체 모음. 출처=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형 창원 씨가 발견한 '백자청화이진검묘지'는 조선 후기 예조판서를 지낸 문신 이진검(李眞儉·1671∼1727)의 묘지(墓誌·고인의 생애와 행적 등을 적어 무덤에 함께 묻은 돌이나 도판)로 1745년에 제작됐습니다. 총 10점의 백자판으로 구성됐는데 글은 이조판서를 지낸 이덕수가 짓고, 글씨는 이진검의 아들이자 조선 후기 대표 명필 이광사가 썼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현재까지 알려진 이광사의 글씨가 대부분 행초서(行草書·해서와 초서의 중간 형태로 해서의 획을 약간 흘려 쓰는 한자 서체)인 데 반해, 이번 묘지는 드물게 예서(隸書·진서의 자획을 간략화하고 일상적으로 쓰기 편리하게 만들어진 서체)로 작성됐다는 겁니다.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은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 등에서 나타나는 글씨체인데 지금까지 원류를 알 수 없었다. 그 실마리를 제공하는 서예사적으로 의미 있는 자료"라고 말했습니다. 또 주로 땅에 묻기 때문에 발견하기 어려운 묘지를 처음으로, 그것도 10개 '완전체'로 발견한 것도 큰 가치가 있다고 덧붙엿습니다.
● 국민이 관심을 가질 때 되살아나는 '문화유산의 가치'
"문화유산의 가치는 돌아오는데 그치지 않고 국민에 공개하고 전시와 연구를 통해 활용될 때 온전히 살아납니다." 8일 행사에 참석한 박정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두 형제의 기증에 감사하며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이어 "앞으로도 환수 활동을 통해 국민과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나누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에 환수된 문화재는 각각 유물의 성격에 맞는 곳으로 보내진 뒤 연구와 보존, 활용될 예정입니다.
Copyright Ⓒ 채널A.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