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재판인데… 판결문에 ‘증거 없는 살인’ 꺼내든 이유?
221회 뉴스터디에서 이 사건 마지막 재판 내용, 전해드린 바 있는데요. 김혜경 씨가 2021년 8월2일 종로 중식당에서 전현직 의원 배우자들을 만나 밥을 먹었는데, 이 밥값 10만 4000원을 경기도 법인카드로, 수행비서 역할을 하던 배모 씨가 결제했고, 따라서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남은 쟁점은 김혜경 씨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냐, 나아가서 지시했느냐 뿐이었죠. 1심 재판부는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냅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증거 없는 살인사건’에 비유했습니다. 김혜경 씨가 배 씨에게 ‘경기도 법인카드로 식사비를 내라’고 지시했다거나 혹은 배 씨가 법인카드로 결제하는 것을 김 씨가 알고 있었다는 물증은 없는 상황이거든요.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유죄 판결을 내린 이유, 재판부는 CCTV나 목격자가 없는 살인사건의 경우에도, 간접적인 사실을 종합해서 증명력을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도, 배 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로 밥값을 결제한다는 것을 김혜경 씨가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는 것입니다. 간접적인 정황을 통해서요.
▶재판부의 ‘3단 논리’ 전개
재판부는 그러면서, 3단 논리를 하나씩 쌓아갑니다.
▲①단계 김혜경 씨와 배 씨의 밀접한 관계
우선, 김혜경 씨와 배 씨가 굉장히 밀접한 관계였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2010년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에 당선됐을 때부터 이 사건이 발생한 2021년까지 배 씨는 11년 동안 김혜경 씨를 모셨다는 것이죠.
판결문에 따르면 이 대표가 2021년 7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경선 캠프가 마련되자, 경기도청 임기제공무원이었던 배 씨는 바로 캠프로 자리를 옮겨 김 씨를 수행합니다. 나흘 뒤인 7월 5일 김혜경 씨가 여의도에서 정치인 배우자들과 식사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돈을 배 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날 12시쯤 경기도 법인카드가 여의도의 모 식당에서 결제된 흔적이 나오는데, 이때 배 씨가 여의도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기록도 발견됩니다. 마찬가지로 오후 2시쯤 김혜경 씨도 여의도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내역이 있거든요. 이 사건 최초 제보자인 조명현 씨에 따르면 “배 씨는 오후 4시쯤 여의도에서 출발해 5시쯤 수내동에 도착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수내동은 이 대표 부부가 사는 곳이죠.
재판 과정에서 배 씨는 이날 업무 관계자와 밥을 먹었다면서도, 누군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합니다. 제보자 조명현 씨는 “배 씨가 김혜경 씨와 함께 여의도에 간다고 했고 국회 사모님들과 함께 있다고 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재판부는 조 씨의 증언을 받아들여, 이날 식사도 김혜경 씨가 정치인 배우자와 먹은 것이고 그 비용을 배 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로 냈을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후에도 정황이 여러 개가 발견됩니다. 7월 24일에는 김혜경 씨가 KTX를 타고 광주송정역으로 가는데, 배 씨가 경선캠프에서 직접 차량을 받아서 광주송정역으로 내려가 수행원에게 넘겨줍니다. 그리고 수행원이 김혜경 씨와 함께 행사에 참석한 뒤 배 씨가 이 카니발을 돌려받아 경선캠프로 반납합니다. 말 그대로 ‘그림자 수행원’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죠. 7월 29일과 30일에도 김혜경 씨가 광주와 전남을 방문하는데 이때도 배 씨가 같은 방식으로 차를 몰고 갔다가 돌아오면서 주유까지 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 밖에도 7월 20일, 7월 27일, 8월 10일, 8월 25일 김혜경 씨와 정치인 배우자들의 식사 자리에도 배 씨가 예약을 하거나, 제보자 조명현 씨에게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할 것을 지시하는 등 김혜경 씨 일정과 발생되는 비용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많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을 서로 공유하는 사이로 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경기도 법인카드가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김혜경 씨가 모르기 어렵다는 것이 1심 재판부의 판단인 것입니다.
▲②단계 “7월 20일 식사 배 씨가 법카 결제”
사실 김혜경 씨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것은 2021년 8월 2일 식사 1건 때문이었습니다. 경기도 법인카드로 계산된 식사 자리가 여럿이 있었지만, 공직선거법은 선거일로부터 6개월 안에 재판에 넘겨야하는 시한이 있다 보니까 8월 2일 식사에 대해서만 재판에 넘겨졌죠. 그래서 재판에 넘겨진 건 아니지만 사실상 식사의 예약부터 결제까지 구조가 똑같다는 점에서 8월 2일 앞뒤로 있었던 식사 자리들이 모두 재판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집니다.
재판부는 그 중 7월 20일 식사에 주목합니다. 이날 식사 자리에서 김혜경 씨는 우원식 의원, 당시 이재명 캠프 선대위원장의 부인과 만납니다. 그 밥값을 누가 냈느냐를 두고 검찰과 김 씨 측이 치열하게 맞붙는데요.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줍니다. 역시 간접 정황상 이건 배 씨가 김혜경 씨와 우 의원 배우자의 밥값을 경기도 법인카드로 냈다는 겁니다.
그 정황은 이렇습니다. 식사 전날 오전 배 씨가 김혜경 씨와 통화를 하고, 오후에 노원구의 일식당에 전화를 합니다. 배 씨는 식당에 전화를 한 건 맞다 면서도 예약전화는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슨 목적으로 전화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고요. 식사 당일 제보자 조명현 씨에게 배 씨가 전화를 해 “11시 반까지 사모님(김혜경) 모시고 다녀서 통화가 안 된다”고 말하죠. 그리고 경기도 법인카드로 이날 12시쯤 9만 4천원이 결제되고요. 오후 3시쯤 김 씨와 배 씨가 수내동으로 돌아온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습니다.
배 씨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날 식당에서 9만 4천원을 결제한 건, 본인과 김 씨 보좌관 2명의 밥값, 그리고 본인이 저녁에 먹기 위한 전복죽과 알탕을 포장 주문한 비용이라고요. 김 씨와 우원식 의원 배우자 신모 씨가 먹은 밥값은 본인이 결제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김혜경 씨는 어떻게 결제가 됐는지 모른다고 했고, 신 씨는 자기 밥값만 현금으로 냈다고 말합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건 김혜경 씨가 신 씨 밥값을 내 줬는지 여부다보니 세 명 모두 이를 피해간 거죠.
재판부는 배 씨, 김 씨, 신 씨의 진술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이들의 밥값이 모두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됐다고 봤습니다. 우선 전복죽과 알탕을 포장해갔다는 배 씨의 주장은 당시가 한여름인데다, 노원구에서 분당 수내동으로 김혜경 씨와 함께 복귀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녁 식사를 포장해서 이동했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주장을 다 받아들이더라도 남는 의문점이 있다는 거죠. 김 씨의 밥값을 낸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식당 포스기를 뒤져봐도 그런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금으로 자기 밥값을 냈다는 신 씨 주장도 포스기에 기록이 없었던 데다, 완전히 다른 시간대에 현금으로 다른 사람이 계산한 내역이 남아있는데 신 씨 것만 식당이 탈루 등의 목적으로 현금 계산 내역을 삭제했을 가능성도 낮다고 봤습니다.
▲③단계 “8월 2일 10만 4천 원도 법카 결제”
마지막으로 문제의 8월 2일 식사입니다. 검찰이 기소한 건 이 한 건이니까요. 재판부는 그 날의 흔적을 쫓습니다. 배 씨가 이틀 앞선 7월 31일 전화로 식당에 예약을 하고, 식사 당일 아침에 김혜경 씨와 통화합니다. 이어 식사에 참석할 전현직 의원 배우자들과도 통화하죠. 통화 내역은 남아있으니까요. 그리고 오전 10시에 제보자 조명현 씨를 만나서 직접 지시를 합니다. 사모님 식사비는 수행원이 별도로 캠프 후원금 카드로 결제한다, 나머지 참석자들의 밥값과 수행원들 밥값은 총 12만 원 미만으로 해서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하라고요.
그 과정에서 문제도 생기죠. 김혜경 씨 밥값 2만 6천 원을 수행원이 결제를 했는데, 조 씨가 착오로 한 번 더 결제를 한 것입니다. 식사 다음날 저녁 경선캠프 회계담당자가 배 씨에게 전화를 하고, 배 씨가 김혜경 씨와 통화를 합니다. 배 씨가 조명현 씨를 직접 만나서 중복 결제된 것을 취소하라고 지시하죠. 조 씨는 지시대로 8월 4일에 식당을 찾아가 중복으로 계산된 2만 6천 원 1건을 취소합니다.
배 씨는 이 건과 관련해 본인이 결제하라고 지시한 건 인정합니다. 배 씨가 조명현 씨에게 지시 내리는 녹취도 있죠. 하지만 김혜경 씨에게는 알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죠. 김 씨도 자신은 무엇으로 결제했는지 모른다고 하고요.
재판부는 식사 당일 아침 배 씨가 김혜경 씨와 통화를 했고, 중복 결제 사실을 회계담당자로부터 전달받은 직후에도 배 씨가 김혜경 씨와 통화를 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상호 연락의 시기와 빈도, 그리고 관련되어 일어난 행위들이 모두 김혜경 씨 일정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어서, 배 씨가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김혜경 씨 승인 하에 경기도 법인카드로 식사비를 결제했다고 보는 것이 통상적인 경험에 비춰 볼 때 합리적이라는 게 1심 재판부의 결론입니다.
▶‘불법 기부’에서 경기도 ‘배임’까지?
한 마디로, 김혜경 씨의 경선캠프 일정과 관련해서 배 씨가 계속 붙어다니고 전화도 자주 했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냐는 것이죠. 재판부는 김 씨를 수행하는 것이 경기도 공무원인 배 씨 업무도 아니었고, 배 씨가 단독으로 도청 법인카드를 이용해 식사비를 결제하는 등의 행위를 할 동기나 유인도 구체적이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위의 정황들을 모두 모아 볼 때, 배 씨와 김혜경 씨가 선거법을 공동으로 위반했다, 즉 김혜경 씨가 배 씨의 선거법 위반 공범이라고 판결하죠.
사실 이 사건은 단순히 경기도 법인카드를 경기도와 관련 없는 목적으로 썼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선 경선에 출마한 후보자의 부인이, 후보자인 남편을 위해서 정치인 배우자들에게 식사를 산 것인데 자기 돈으로 샀어도 이건 선거법상 허용되지 않는 행위입니다. 수행원들 식사비도 후보자의 배우자는 사줄 수가 없습니다. 모두 다 불법 기부가 되거든요. 그런데 심지어 자기 돈도 아니고 경기도 법인카드를 썼다면 도덕적인 비난의 소지는 더 있을 수 있겠죠.
그러다보니 이 건이 이재명 대표의 배임 기소와도 연결이 됩니다. 검찰은 김혜경 씨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자, 이재명 대표를 다음 날 바로 기소했습니다.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에 재임할 때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하고 공적으로 쓰게 돼 있는 예산까지 허위 내역을 꾸며 개인적으로 썼다고요.
김혜경 씨 1심 유죄 판결문이 이 대표를 재판에 넘긴 검찰의 공소장에도 다수 인용되면서, 아내 사건이 남편 사건의 꼬리를 물게 된 형국이 됐습니다. 1심 재판부의 논리는 항소심에서 어떻게 다뤄질지, 이재명 대표의 경기도 예산유용 사건 재판에서는 어떻게 판단될지도 주목됩니다. 이 대표 기소 내용은 내일 전해드립니다. 퀴즈 나갑니다.
정답을 아신다면 유튜브에 ‘동앵과 뉴스터디’를 검색해서 해당 영상에 댓글 남겨주세요. 추첨을 통해 시원한 커피를 드립니다.
평일 오후 7시엔 <뉴스A>, 주말 오후 3시엔 <동앵과 뉴스터디>,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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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동정민 정현우 기자, 김정연 작가
연출: 황진선 PD
편집: 이혜지‧박현아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