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는 주인 없는 조직이다보니 사무처 직원들이 주인 행세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채용 비리를 수사했던 한 검사의 말입니다. 이 검사는 "선관위에 사람도 얼마 없다보니 사무처에서 '익스큐즈(양해)'가 되면 큰 죄의식 없이 그런 일(채용 비리)들을 얼마든지 벌일 수 있는 구조"라고 했습니다.
선관위 채용 비리 문제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감사원이 경력 채용 10년 치를 전수 조사 해봤더니 규정 위반이 무려 1200여 건 발견됐습니다. 고위직 자녀 원서 접수와 함께 예정에 없던 선발 인원을 추가하는가 하면, 아버지 지인으로 구성된 면접 심사위원 3명 가운데 2명이 만점을 주는 식이었죠.
여기에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고 한 최근 헌법재판소 판결이 기름을 부었습니다. 대규모 채용 비리를 저지르고도 견제 장치가 없다는 거니까요. 심지어 특혜채용 된 간부 자녀 10명은 여전히 근무 중입니다. 최근 징계 없이 직무 배제 됐는데, 월급은 100% 지급받습니다. 특혜 채용된 한 간부 자녀는 '세자'로 불리기도 했다죠. "직무배제는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판이 쏟아지자, 선관위는 조금 전 특혜채용 직원 10명을 수사 의뢰한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공정해야 할 선관위는 어쩌다 비리의 온상이 됐을까요.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외경. (출처 = 뉴시스)
'비상근' 선관위원장, 2주 만에 출근
기관장인 선관위원장이 있는데 "주인 없는 조직"이라는 수사 검사의 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선관위는 선관위원장을 포함해 선관위원이 9명 있는데, 상임위원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관위로 출근하지 않는 '비상근'입니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고, 나머지 선관위원들은 판사 출신 변호사로 현업을 뛰고 있거나 현직 판사, 교수입니다. 선관위보다는 밥벌이가 먼저일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가 있는데요. 간부급 상근 직원은 사무처를 총괄하는 사무총장과 상임위원 1명 정도인 거죠.
그러다보니 명색이 기관장인 노태악 선관위원장, 정작 선관위로 출근하는 날이 한 달에 몇 번 없습니다. 지난 4일 출근 이후 오는 17일 출근할 예정입니다. 매달 셋째주 월요일에 선관위 정기회의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약 2주 만의 출근인 셈이죠.
선관위 주축인 선관위원장과 선관위원, 정기회의 전 모일 순 없는 걸까요? 감사원 감사 결과와 헌법재판소 판단으로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절체절명의 '비상 상황'인데도 정기회의 전 따로 회의를 열 계획은 없다고 합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다들 현업이 있다보니 갑작스럽게 스케줄을 조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선관위의 의사 결정 기구는 위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단면입니다.
지난 4일 선관위 '채용 비리'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대법관과 겸직하고 있다. (출처 = 뉴시스)
"'대국민 사과문' 뉴스 보고 알아"
선관위원들 간의 소통은 원활할까요.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지난 4일 대국민 사과 입장문을 냈지만 선관위원들에겐 공유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기자가 접촉한 선관위원들은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급박한 상황인데 비상 회의를 열지 않는 것도 "의견 수렴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한 선관위원은 "선관위원들마다 생각이 달라서 섣불리 모이기로 했다가 사과 정도의 메시지도 내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
'비상근' 위원회는 권한과 책임 소재가 불분명합니다. 한 선관위 관계자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위원장 상근화를 통해 조직 전체의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고, 위원회가 사무처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비상근 위원회 시스템 하에선 선관위가 자체적으로 마련하려는 외부 감사위원회나 여당이 추진하는 특별감사관 제도도 일시적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국민의힘은 선관위 개혁을 위한 5대 선결 과제로 ▽특별감사관 도입 ▽선관위 사무총장 국회 인사청문회 도입 ▽법관의 선관위원장 겸임 금지 ▽시도 선관위 대상 행안위 국정감사 도입 ▽지방선관위 상임위원 임명 자격을 외부 인사로 확대하기 위한 선관위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죠. 선관위원장 겸임 금지에서 나아가 상임 선관위원을 늘려야 한다는 게 이 선관위 관계자의 생각입니다.
선관위 주인은 사무총장?
어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김대웅 선관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박찬진 전 사무총장(왼쪽)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 (출처 = 뉴시스)
지금 선관위의 주인은 사무총장일까요. 선관위 관계자는 "모든 기관은 위임 전결 규정을 따르는데 사무처를 총괄하는 건 사무총장"이라며 "사무처에서 방향을 정해서 위원장에게 보고하면 위원장이 큰 방향만 정한다"고 했습니다. 사무총장은 장관급이고 국회에서 답변하는 것도 사무총장이라고요.
그런데 최근 문제가 된 고위직 자녀 채용 비리의 주인공이 바로 김세환·박찬진 전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차관급) 등이죠. 모두 사무처 소속입니다.
위원장과 위원회는 법원과 대학을 오가며 '현생'에 충실한 사이, 사무처가 주인이 된 선관위. 국회에서 논의하는 외부 통제 방안도 적극 수용한다고 했는데요. 선관위 내부 규정을 넘어 법안 개정이 필요하다면 국회에 적극 의견도 내야할 겁니다. 내부 감시 기구같은 재탕 자체안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실질적 대책이 뭔지 고민할 때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채용 비리를 수사했던 한 검사의 말입니다. 이 검사는 "선관위에 사람도 얼마 없다보니 사무처에서 '익스큐즈(양해)'가 되면 큰 죄의식 없이 그런 일(채용 비리)들을 얼마든지 벌일 수 있는 구조"라고 했습니다.
선관위 채용 비리 문제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감사원이 경력 채용 10년 치를 전수 조사 해봤더니 규정 위반이 무려 1200여 건 발견됐습니다. 고위직 자녀 원서 접수와 함께 예정에 없던 선발 인원을 추가하는가 하면, 아버지 지인으로 구성된 면접 심사위원 3명 가운데 2명이 만점을 주는 식이었죠.
여기에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고 한 최근 헌법재판소 판결이 기름을 부었습니다. 대규모 채용 비리를 저지르고도 견제 장치가 없다는 거니까요. 심지어 특혜채용 된 간부 자녀 10명은 여전히 근무 중입니다. 최근 징계 없이 직무 배제 됐는데, 월급은 100% 지급받습니다. 특혜 채용된 한 간부 자녀는 '세자'로 불리기도 했다죠. "직무배제는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판이 쏟아지자, 선관위는 조금 전 특혜채용 직원 10명을 수사 의뢰한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공정해야 할 선관위는 어쩌다 비리의 온상이 됐을까요.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외경. (출처 = 뉴시스)'비상근' 선관위원장, 2주 만에 출근
기관장인 선관위원장이 있는데 "주인 없는 조직"이라는 수사 검사의 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선관위는 선관위원장을 포함해 선관위원이 9명 있는데, 상임위원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관위로 출근하지 않는 '비상근'입니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고, 나머지 선관위원들은 판사 출신 변호사로 현업을 뛰고 있거나 현직 판사, 교수입니다. 선관위보다는 밥벌이가 먼저일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가 있는데요. 간부급 상근 직원은 사무처를 총괄하는 사무총장과 상임위원 1명 정도인 거죠.
그러다보니 명색이 기관장인 노태악 선관위원장, 정작 선관위로 출근하는 날이 한 달에 몇 번 없습니다. 지난 4일 출근 이후 오는 17일 출근할 예정입니다. 매달 셋째주 월요일에 선관위 정기회의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약 2주 만의 출근인 셈이죠.
선관위 주축인 선관위원장과 선관위원, 정기회의 전 모일 순 없는 걸까요? 감사원 감사 결과와 헌법재판소 판단으로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절체절명의 '비상 상황'인데도 정기회의 전 따로 회의를 열 계획은 없다고 합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다들 현업이 있다보니 갑작스럽게 스케줄을 조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선관위의 의사 결정 기구는 위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단면입니다.
지난 4일 선관위 '채용 비리'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대법관과 겸직하고 있다. (출처 = 뉴시스)"'대국민 사과문' 뉴스 보고 알아"
선관위원들 간의 소통은 원활할까요.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지난 4일 대국민 사과 입장문을 냈지만 선관위원들에겐 공유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기자가 접촉한 선관위원들은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급박한 상황인데 비상 회의를 열지 않는 것도 "의견 수렴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한 선관위원은 "선관위원들마다 생각이 달라서 섣불리 모이기로 했다가 사과 정도의 메시지도 내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
'비상근' 위원회는 권한과 책임 소재가 불분명합니다. 한 선관위 관계자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위원장 상근화를 통해 조직 전체의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고, 위원회가 사무처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비상근 위원회 시스템 하에선 선관위가 자체적으로 마련하려는 외부 감사위원회나 여당이 추진하는 특별감사관 제도도 일시적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국민의힘은 선관위 개혁을 위한 5대 선결 과제로 ▽특별감사관 도입 ▽선관위 사무총장 국회 인사청문회 도입 ▽법관의 선관위원장 겸임 금지 ▽시도 선관위 대상 행안위 국정감사 도입 ▽지방선관위 상임위원 임명 자격을 외부 인사로 확대하기 위한 선관위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죠. 선관위원장 겸임 금지에서 나아가 상임 선관위원을 늘려야 한다는 게 이 선관위 관계자의 생각입니다.
선관위 주인은 사무총장?
어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김대웅 선관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박찬진 전 사무총장(왼쪽)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 (출처 = 뉴시스)지금 선관위의 주인은 사무총장일까요. 선관위 관계자는 "모든 기관은 위임 전결 규정을 따르는데 사무처를 총괄하는 건 사무총장"이라며 "사무처에서 방향을 정해서 위원장에게 보고하면 위원장이 큰 방향만 정한다"고 했습니다. 사무총장은 장관급이고 국회에서 답변하는 것도 사무총장이라고요.
그런데 최근 문제가 된 고위직 자녀 채용 비리의 주인공이 바로 김세환·박찬진 전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차관급) 등이죠. 모두 사무처 소속입니다.
위원장과 위원회는 법원과 대학을 오가며 '현생'에 충실한 사이, 사무처가 주인이 된 선관위. 국회에서 논의하는 외부 통제 방안도 적극 수용한다고 했는데요. 선관위 내부 규정을 넘어 법안 개정이 필요하다면 국회에 적극 의견도 내야할 겁니다. 내부 감시 기구같은 재탕 자체안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실질적 대책이 뭔지 고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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