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법연수원 교수와 제자가 20여년 만에 대법원장과 제1 야당 대표로 국회에서 만났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이야기입니다.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날인 그제(13일) 가장 주목받은 곳은 단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조 대법원장을 참고인으로 90분간 자리에 앉힌 채 이재명 대통령 관련 재판에 대한 견해를 물었죠.
민주당 소속 법사위 위원들의 쏟아지는 질의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봤던 조 대법원장. 드물게 미소를 지은 순간은 바로 법사위 시작 직전 연수원 제자와 만난 때였죠.
'스승과 제자' 사이인 두 사람의 만남은 지극히 정치적 성격을 띄고 있기도 합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조 대법원장을 쫓아내고 사법 제도를 파괴하려고 한다고 연일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야당을 이끄는 장 대표와 여당의 공세를 받는 '사법부 수장' 조 대법원장이 서로 마주한 겁니다.

"사법부 끝까지 지켜달라"
국감 시작 첫날(13일) 법사위 국감장부터 방문한 장 대표. 여야 법사위원들과 차례로 악수한 뒤 기관 증인석으로 갔습니다. 조 대법원장에게 허리 숙여 깍듯이 인사한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게 편한데, 힘든 시기에 고생 많으시다. 사법부를 끝까지 지켜달라"고요. 원론적 얘기지만, 현재 사법부와 조 대법원장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뼈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죠. 조 대법원장은 장 대표가 건넨 말에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 대표 선출 직전까지 법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장 대표와 민주당 법사위원들이 인사 나눌 때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습니다. 회의 때마다 여야가 서로 험한 말 쏟아내던 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죠.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 자리부터 간 장 대표는 "고생 많으시다" 악수를 건넸고, 서영교 민주당 의원과는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서 의원이 "법사위 출신 대표가 오셨다"고 하자, 장 대표가 "갈수록 (상황이) 안 좋아지는데, 정청래 대표랑 같이 법사위 올까"라고 했고, 서 의원은 "같이 오라" 응답한 겁니다. 정 대표는 직전 법사위원장이었죠.
훈훈했던 국감장 공기는 조 대법원장과 장 대표의 투샷이 현장에 있던 언론사 카메라의 집중 세례를 받으면서 일순간 싸늘해졌습니다.
최고참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돌연 장 대표에게 "대표가 법사위 격려 왔으면 뒤로 다니라. 앞으로 건방지게 돌아다니냐"고 쓴 소리를 한 겁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별 생각 없이 장 대표를 맞이하다가 조희대-장동혁 투샷을 보고는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장 대표는 웃으며 "죄송하다"고 응수했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곧장 "당 대표에게 건방지단 소리를 하냐"(송석준), "카메라 때문에 뒤로 다닐 수가 없다"(조배숙)고 엄호했습니다. 민주당도 "당연히 뒤로 가야한다. 가운데로 온적이 없다. 어른 말씀 좀 들으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정치인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죠. 국정감사 첫 격려 방문지로 법사위를 꼽은 장 대표. 민주당의 사법개혁에 대한 비판 메시지를 '하나의 장면'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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