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은혁 임명 반대"…與 박수영, 국회서 '단식'
시작은 지난 2일입니다. 국회 로텐더홀 한편에 하얀색 텐트와 회색 매트리스가 놓였습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단식에 돌입하겠다며 설치한 겁니다. 박 의원이 단식을 결심한 이유,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반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꼭 단식이라는 수단을 사용해야 했을까요? 지난달 말, 일부 여당 의원들이 참여하는 단체채팅방에서는 "하루씩 릴레이 단식을 하자"는 메시지가 올라왔는데요. "웰빙 단식" "간헐적 단식"이라는 여론의 뭇매가 쏟아졌습니다. 박 의원, "이런 비판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본인이 1번 타자로 나서겠다 마음먹었다"고 밝혔습니다.

"'43년 지기' 최상목에 내 목소리 잘 먹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개인적 인연도 소개했는데요.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이자 행정고시 공부를 함께 하고 같은 해에 합격한 '43년 지기' 최 대행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제일 잘 먹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겁니다.
최 대행도 박 의원 단식에 염려를 드러낸 걸로 알려졌는데요. 박 의원은 닷새째인 지난 6일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최 대행이 마 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고, 당 지도부를 비롯한 여러 지지자들의 만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었다는데요. 바로 중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문자입니다. "이재명과 싸워야지. 그렇게 쓰러지고 병원에서 시간 다 보내면 중요한 순간은 다 지나가는데 이재명하고는 언제 싸울 수 있냐"는 은사님 연락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하더군요.
총 14끼를 굶은 박 의원, "처음 단식을 해봤는데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대한민국이 아주 망하는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단식을 다시 하진 못할 것 같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혈당 수치가 급격히 떨어진 사흘째가 고비였다고 하는데요. 격려 방문한 '단식 선배'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런 조언도 건넸다고 합니다. "꼼수 부리지 않고 단식하면 닷새를 넘기기 어렵다"며 "컨디션이 잠시 좋아진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고요.
김경수 "탄핵 인용될 때까지 싸울 것"

야권에서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되자 김 전 지사는 그제(9일)부터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에 농성장을 마련했는데요.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 모든 것을 걸고 시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비명계 잠룡인 김두관 전 의원도 어제 단식농성장을 찾아 "건강을 좀 더 유의하고 헌재의 탄핵 인용이 빠르게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는데요. 김 전 지사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단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문제없다"면서 "탄핵 찬성집회에도 참석하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김 전 지사 측도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이 탄핵 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줄이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단식에 나서는 것"이라 설명했는데요. "대통령 복귀로 나라가 반으로 갈라지고 대한민국의 대외신인도와 경제지표도 추락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면서요.
"스포트라이트 집중‧ 존재감 부각"
하지만 정치인들이 단식을 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건데요. 한 정치권 원로, 박 의원 단식에 대해 이렇게 분석하더라고요. "단식에 나서는 의원은 더 이상 '300명 중 1명'이 아니라 다른 의원들과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유명인으로 거듭난다"고요. 실제로 박 의원은 "단식 농성장을 찾아온 여당 의원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고 했습니다. 전한길 강사까지 국회를 찾아 박 의원을 격려했죠. 이 원로는 김 전 지사의 단식을 두고는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으로 이재명 대표의 비명계 탄압 발언이 이슈에서 밀려난 상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전략 아니겠냐"고 했습니다.
양측은 서로 간의 비교를 거부했습니다. 김 전 지사 측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단식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여당 기재위 간사, 당 정책위부의장 등 직만 7개를 맡고 있는 박 의원과 원외 김 전 지사의 상황은 다르다는 거죠.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것과 그 가치에 반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박 의원 입장은 다릅니다. "단식은 약자의 최후 수단으로 불리는데, 지금은 소위 '여의도 대통령' 이재명 대표 치하에서 여당이 약자 중의 약자"라고 강조하더라고요.
탄핵 찬반 '맞불 단식'…극한 대치

과거 단식 농성은 주로 야당 정치인들이 정부를 향해 항의의 목소리를 낼 때 사용돼왔죠. 전직 대통령들도 야당 시절 단식 농성 경험이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항의로 23일간,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0년 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하며 13일간,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4년 8월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며 10일간 단식했습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국면에서 단식은 비단 거물급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과 탄핵 찬성 진영 등 시민사회는 서로 '맞불 단식'에 돌입했는데요. 정치권과 시민사회 진영의 극한 대치에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민주당 김준혁, 민형배, 박수현 의원과 진보당 윤종오 의원 등 야당 '탄핵 의원 연대' 소속 의원들까지 윤 대통령 파면을 요구하며 오늘부터 헌재 앞에서 단식에 합류합니다.
"단식 대신 여야가 밤새 협상해야"
단식이 유행처럼 번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안철수 의원, "지금은 누가 단식하든 반대 진영에서 관심도 안 가진다"며 "몸만 상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실종된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 꼬집더군요. 의사 출신으로서도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고령일수록 단식 이후 육체 회복이 더뎌지니, 차라리 여야가 밤을 새서라도 토론하고 협상하는 게 어떻겠냐"고요. 한번 고민해볼 지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