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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정릉동 살아요” 한 마디에…치매노인 모시고 11km 운전한 시민
2024-01-22 15:01 사회

최저기온이 영하 4도까지 떨어졌던 지난 10일 오후 5시 반쯤. 서울 성북경찰서 성북파출소에 한 60대 남성이 80대 할아버지를 모시고 들어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성북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길을 잃고 배회하던 치매 환자였습니다.

할아버지를 파출소로 모시고 온 남성은 64살 홍흥식 씨. 성북동 일대에서 30년 넘게 운전기사로 일해 지리에 익숙했던 홍 씨는 행인이 잘 다니지 않는 가파른 골목길에서 홀로 길을 걷는 할아버지를 발견해 집에 모셔다드려야겠다고 생각해 차에 태웠습니다.

차에 탄 할아버지는 홍 씨에게 "정릉동 국민대 인근 하숙집에 산다"고 말했습니다. 어르신이 하숙집에 산다는 말에 갸우뚱하긴 했지만, 홍 씨는 할아버지 안내에 따라 국민대 근처로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을 따라 차를 몰아도 할아버지가 찾는 집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11km를 주행하고도 집을 찾지 못했고 홍 씨는 "할아버지가 정확한 주소를 기억하지 못하고 말이 자꾸 바뀌어서 치매 환자라는 것을 알게됐다"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손에는 신분증도, 휴대전화도 없었습니다.

결국 홍 씨는 할아버지를 처음 발견한 장소 근처 성북파출소로 향했습니다. 홍 씨와 경찰관들은 30분 넘는 대화 끝에 할아버지의 기억을 이끌어냈고, 이를 토대로 인적사항을 조회한 뒤 가족을 찾아 인계했습니다.

알고 보니 '정릉동 하숙집'은 할아버지가 옛날에 살았던 곳이었고,지금은 처음 발견된 장소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가족들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할아버지가 사라져 아내와 자녀가 걱정하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홍 씨는 "나한테는 무심코 흘러가는 하루였지만 할아버지 가족들한테는 큰 위안이 됐던 것 같다"며 "인지 능력이 떨어졌을 때 누군가 나를 지나치지 않고 찾아준다면 따뜻한 세상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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