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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들을 향한 속삭임 “행복해도 돼!”

2025-03-17 13:27 문화

 [영화 '미키 17' 중 한 장면=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봉준호 감독의 8번째 장편 '미키17'은 여전히 '봉준호 장르' 특유의 괴상한 영화다.

벽돌 크기의 하드 디스크에 기억 데이터를 보관해두고, 신체는 지속적으로 프린팅해 계속 죽어도 재생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미래.

주인공인 청년 미키 반스는 '대만 카스테라'를 연상시키는 마카롱 가게에 투자했다 망해서 거액의 빚을 지게 된다. 미키는 상환 기일을 지키지 않으면 지구 어느 곳에서든 잡아와 신체를 절단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기로 한다. 행성 탐사선에 지원한 것이다.

모두가 임무를 지니게 되는데 변변한 재주 하나 없는 그는 누구도 택하지 않은 임무, '익스펜더블(expendable)'에 자원했다. 미래 행성을 탐사하는 우주선에서 전염병 등 극한 환경에 노출되고, 위험한 일에 먼저 투입되는 그는 '극한 직업'을 갖고 있는 '소모품'이다.

다들 기피하며 하찮게 여길 이런 직업에도 그에겐 사랑이 있다. 그를 가엾이 여기고, 그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여자 친구가 있다. 그녀는 '얼음행성 개척단'에서 군인과 경찰, 그리고 소방관을 역할을 동시에 맡은 에이스 요원이다.

17번째 몸인 미키17이 된 어느 날, 죽음을 허투루 예상한 시스템의 오류로 미키18과 마주하게 된다. 자아가 동시에 두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화된다.

봉준호의 이번 신작은 이처럼 괴상한 설정에 인간에 대한 온정을 담은 '휴머니즘' 영화다.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미키 반스의 모습은 우선, 한국 사회에서 화두가 된 '위험의 외주화'를 떠올리게 한다. 봉준호 감독은 "화력발전소, 스크린도어, 제빵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돌아가신 사건이 최근 몇 년간 연이어 있지 않았느냐"며 "영화에선 미키 혼자서 그걸 하고 있고 현실에선 A군 뒤에 B군, B군 뒤에 C양이 계속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가 맛은커녕 칼로리까지 계량화된 식량으로 정량의 간편식 끼니를 때울 때 지도자의 부인은 스테이크와 '소스'를 음미한다. 때는 2054년이다.

그로부터 30년 전인 오늘은 어떠한가.

전 세계 동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 스마트폰과 SNS, 명령어만 입력하면 대신 사고하는 AI가 영역을 점차 확장하는 시대, 21세기가 시작된지 25년이나 흐른 2025년은 얼마나 다른가. 고도의 기술력 속에 인류는 안전하고, 평화롭고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어야 마땅하지만 누군가는 희생당하고, 상당수는 소모당하며, 많은 이가 자연과 경제의 산물에서 소외당한다.

"현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오히려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게 SF 장르라 생각해요. 우리 현재 모습을 반추하게 해주죠." - 봉준호 감독.

미키17은 괴상하지만 희망적이다.

미키와 함께 마카롱 가게를 열었다가 망한 미키의 친구 티모는 사채업자라는 거악에 맞선다. 미키의 여자친구 나샤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위기의 순간 정의로운 행동들을 해낸다. 미키는 끝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을 멈추고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택한다. 미키 17도 18도 19도 아닌, 미키 반스로.

영화의 피아노 선율은 마치 관객을 위로하는 것 같다.

'당신도 미키와 다르지 않다고, 행복해져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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