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핵안보 정상회의를 앞두고
핵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 중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채널A 제휴사인
경남신문 김용훈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올해 82세인 장영준 씨는 4월에 열릴 원폭 피해 배상 소송의
결심공판을 앞두고 초조한 마음뿐입니다.
남은 여생동안 이번 공판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장씨는 당시 15살.
원자폭탄이 투하된 다음날 아버지를 찾아 피폭된 도시를
찾아다녔던 장씨는 원폭 후유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피폭된 아버지는 수개월만에 백혈병으로 사망했지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 장영준 / 원폭 피해자]
"나가사키시가 완전히 잿더미에요.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말못해요. 무조건 아버지 찾는다는 생각뿐이었죠.”
30대부터 장씨의 몸에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원폭 후유증.
수 차례 일본 정부에 소송을 벌였지만 매번 각하됐습니다.
수십 년간 고통 속에 살아온 그의 병명은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백혈구가 감소하는 병으로 원폭피해로 나타날수 있는 병인데도
일본 정부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 장영준/ 원폭 피해자]
“4월 11일에 (일본에 결심공판 받으러) 건너갈 거 아닙니까. 항공표랑 체류비랑 (일본 민간단체에서) 받습니다만 그 때까지 살수가 있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장 씨의 사연은 마이니치 신문 등 일본 언론에도 알려졌고,
일본 자선단체가 소송지원 등 도움을 주고 있지만
일본 당국만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장씨의 결심공판.
원폭이후 60여년이 지났지만 또다른 장씨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중입니다. 일본정부의 진정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경남신문 김용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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