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흠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장동혁 대표와 면담을 위해 당대표실로 들어서고 있다. (출처 : 뉴스1)국민의힘 공천 파동 수습이란 '독배'를 받았던 박덕흠 공천관리위원장(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이 야당 몫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 후보자로 선출됐습니다. 국회는 조만간 본회의를 열어 박 위원장을 국회부의장으로 최종 선출할 예정입니다.
지난 달 초 공관위원장 내정 당시 "당내 의원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다"(장동혁 대표), "마무리 투수로 제격"(초선 의원) 정도의 평가를 받았던 박 위원장. 하지만 이후 대구시장, 충북지사 후보 공천 갈등을 빠르게 정리하고 정진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물밑 설득해 출마 포기를 이끌어내는 등 기대 이상의 정치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박덕흠 공관위'는 국민의힘에 무엇을 남겼고, 소수 야당 몫 국회부의장은 후반기 국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요.
'사돈' 정진석 회동 막전막후
지난 7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 박 위원장과 정 전 실장이 마주 앉았습니다. 분위기는 무거웠습니다. 두 사람은 당의 6·3 지방선거 공천 실무를 총괄하는 공천관리위원장과 당 소속 충남 공주·부여·청양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도전자이자, 사돈 관계였습니다.
해당 지역에서만 4선을 지낸 정 전 부의장. 당 안팎에서 출마 시 가장 경쟁력 높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윤어게인 공천' 공세 집중포화에, 지방선거 전체 판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서 나왔습니다.
당 지도부 기류는 이미 오래 전 '정진석 공천 배제'로 기울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관건은 정 전 실장의 무소속 출마 여부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무소속 정진석 3자 구도로 치러질 땐 국민의힘은 필패였습니다.
박덕흠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 7일 오후 정진석 전 비서실장과 회동 후 채널A 취재진과 만나 얘기하고 있다.1시간 반 가량 회동을 마친 후 채널A와 만난 정 전 실장은 말을 아꼈습니다. 박 위원장은 "정 전 실장에게 당 상황과 공관위원들이 우려하는 부분을 전달했다"며 "'당을 위해 결단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고 했습니다.
정 전 실장의 무소속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정치인 개인으로서 배수의 진을 칠 순 있지만, 지금 전국적으로 당이 처한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더 지탄을 받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고 했습니다.
회동 3시간 반만에 정 전 실장이 SNS를 통해 밝힌 입장은 '후보 신청 철회'였습니다. 정 전 실장은 "저의 출마가 당의 결속을 해치거나, 거대 권력의 독주를 막아낼 우리 당의 동력을 약화시킨다면 그 길을 멈추겠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의 마지막 공천 갈등 매듭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장 대표는 다음날 "정 전 실장께서 큰 결단을 내려주셨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해 오늘의 헌신이 더 크게 빛나도록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밑 설득하며 기다린 '정진석의 시간'
박 위원장의 정 전 실장 설득은 오랜 시간 이뤄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윤어게인 공천' 공격을 받는다고 즉각 공천 배제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물밑에서 당사자를 납득시키고, 선택은 본인 스스로 하도록 시간을 주며 길을 열어줬다는 겁니다.
박 위원장 측은 "지난 7일 두 사람 회동 자리에서 이미 정 전 실장이 결단을 내렸으나, 정 전 실장이 직접 말할 때까지 나서지 않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서 당내 비판이 수위를 넘자 시그널을 주기는 했습니다. 김태흠 국민의힘 충남지사 후보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감출 길 없다"며 정 전 부의장 공천 시 탈당을 시사하자, 자제를 당부했습니다. "국민과 당원들의 생각을 역행하는 행위는 지도부가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지난 3일, SNS)이라고요.
박 위원장 측은 "모든 일엔 때가 있다"며 "정 전 비서실장을 설득하기도 전에 공천 배제를 결정하면 반발만 부르고, 이는 결국 선거 결과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한 의도보다 실리가 우선이라는 겁니다.
지난달 31일 당시 대구시장 경선에서 공천배제(컷오프)된 주호영 국회부의장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면담을 위해 부의장실로 들어서고 있다. (출처 : 뉴스1)법원 결정 따르고 '경선 원칙'…갈등 최소화
박 위원장의 공관위원장 내정 당시 당내에선 "잘해봐야 본전도 못 찾는 자리"(중진 의원)란 말이 나왔습니다. '주호영·이진숙 컷오프'로 요약되는 대구시장 후보 공천 파동 여진이 계속되자, 이정현 당시 공관위원장이 물러나고 맡은 자리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박덕흠 공관위는 '갈등이 더 커지지 않게 수습한다'에 방점을 뒀습니다. 출범 후 새로운 공천 기준을 세우기보다는, 공천 갈등 현안을 속도감 있게 정리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측근에게 "모든 결정엔 선한 의도보다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혁신이나 파격보다 중요한 건 당사자들을 납득시켜 반발 소지를 없애야 한다는 겁니다.
가장 논란이 됐던 대구 공천 파동은 법원의 결정에 따랐습니다. 법원이 주호영 의원이 낸 공천 배제(컷오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함에 따라 주 의원, 그리고 주 의원과 함께 컷오프됐던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제외하고 경선을 진행시켰습니다.
박 위원장 측은 "법원 결정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주 의원이 더 반발할 명분이 적다"며 "반면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는데도 주호영, 이진숙 두 사람을 경선에 참여시킬 경우 명분이 없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후보자들이 더 크게 반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 후보자 선출 의원총회에서 후보로 선출된 박덕흠 의원과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출처 : 뉴스1)반대로 김영환 충북지사가 낸 가처분 신청은 법원이 인용하자 김 지사를 경선에 참여시켰습니다. 다른 기초단체장 후보들이 낸 가처분 신청도 마찬가지로 법원 결정에 따라 지체 없이 정리했습니다.
잡음을 최소화하는 두 번째 방식은 '경선 원칙'이었습니다.
박덕흠 공관위는 대부분 지역에서 단수 공천하는 대신 경선을 붙였습니다. '이정현 공관위'가 짜놓은 소위 '한국시리즈' 원칙을 충북지사 경선 등에 적용했습니다. 먼저 후보 경선을 통해 비(非)현역 1인을 뽑은 뒤 현역 단체장과 최종 경선에서 맞대결하는 방식입니다. 갈등을 관리하면서도 기존 공관위가 만든 판을 많이 흔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됐습니다.
"3번 공천 탈락에도 30년 간 당 지켜"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만든 민주 산악회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때 송파구 회장을 맡으면서 정치권 첫 발을 딛게 됐습니다. 이후 현재 지역구 공천을 받기까지 저도 무려 3번이나 공천 탈락을 한 그런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탈당하지 않고 당의 결정을 존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신한국당에서 시작해서 현재 국민의힘까지 30여 년 동안 줄곧 보수 정당을 꿋꿋하게 지켜왔습니다."
박 위원장이 지난 13일 당의 국회부의장 후보 정견발표 당시 한 말입니다. 대구시장 후보 공천 파동, 그리고 정진석 전 실장 설득 과정에서도 가장 중점에 둔 건 갈등을 최소화해서 전체 선거 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공관위원장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가시적 성과를 내려고 하기보다는, 당 전체를 우선시 한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은 후반기 원 구성에서 모든 상임위원장을 맡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사건을 공소 취소할 수 있게 한 조작기소 특검법을 민주당이 강행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안, 야당 몫 국회 부의장으로서 어떻게 돌파하고 풀어나갈까요. 공천 수습 과정에서의 조정과 협상의 리더십이 다시 한 번 발휘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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