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6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윤석열 대통령 신속 파면 촉구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대통령 탄핵 기각 촉구 시위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 지정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관련 지라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출처 = 뉴시스)
"오늘은 (헌법재판관 인용과 기각 의견이) 4대 4라던데?"
"아니야, 내가 받은 거엔 5대 3이라고 돼 있어. 근거도 나름 있던데?"
"8대 0이라니까."
국회 출입 기자들, 지난 한 달 넘게 난무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관련 소문을 파악하느라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매일 SNS를 통해 퍼지는 수많은 지라시·받글(받은 글) 영향 때문인데요. 누가, 어떤 근거로 작성했는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받글이 확대 재생산돼 퍼지고 있죠. 선고일 공지 날짜부터 선고일, 선고 결과 예상까지 내용도 다양합니다. 다소 신뢰도가 떨어져도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기자들은 혹시 몰라 확인에 나설 수밖에 없는 거죠.
최근 2주 동안 기자가 받은 받글, 세어보니 10개가 넘었습니다. 지난 20일 받은 한 글은 '긴급 정보보고'라는 제목에 '21일 선고, 8:0 인용이 불가피'라는 내용이 담겼죠. 하지만 선고일은 통상 이틀 전 공지되는데, 세부 팩트부터 틀린 겁니다.
지난 12일, 기자가 받은 또다른 받글은 무려 1000자가 넘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사법연수원 동기인 문형배 헌재 권한대행과 "직거래가 가능하다"는 내용과 함께 "문형배가 버티기엔 여론 지형이 바꼈다('바뀌었다'의 오기). 각하로 방향 튼 것으로 보인다"는 비명계 중진의 코멘트도 담겨 있는데요. 앞서 이 대표와 문 대행의 친분설이 정치권에서 화제가 됐죠. 윤 대통령이 탄핵될 것이란 이재명 대표 측 기대와 달리, 탄핵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담은 겁니다.
이처럼 각 글은 특정 진영의 희망사항과 주장, 논리가 담겨 있는데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국면에서 더욱 범람하고 있는 지라시, 누가 만들고 왜 유포하는 걸까요.
"내 받글, 헌재 여론에 반영되길 희망"
최근 받글을 직접 작성했다는 한 정치권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한 때 국회에 몸담았고 지금은 여의도를 벗어난 이 관계자, "받글을 많이 받아보니 아무도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내가 답답해서 적었다"고 했는데요. 이 관계자는 "정치권과 법조계 인맥을 통해 직접 취재한 내용을 받글에 담았다"고 했습니다.
양 진영은 각각 희망회로를 돌리며 현 정국을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있죠. 이 관계자, 자신의 받글이 장외 여론전에 활용된다는 것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작성한 지라시가 어디까지 퍼졌는지 보면서 영향력을 확인한다"고 했는데요. 자신이 퍼뜨린 받글이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나아가 헌법재판관들에게 '나비 효과'로 작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겁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심판시 국민 여론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린 거죠.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 뿐 아니라 이재명 대표 재판 관련 받글도 여러 버전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오늘(26일) 아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 선고를 앞두고 '2심 재판부가 설명자료를 배포하지 않는 건 1심 결론을 유지하였다고 봐야 한다'는 식의 받글이 퍼졌는데요. 이 대표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의원직 상실형을 받길 바라는 여권의 기대를 담은 거죠. 국민의힘 관계자는 "우리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보다 이재명 대표 2심 선고에 더 관심이 많다"며 "윤석열보다 이재명 지라시가 훨씬 많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런 받글들, 정치권에서 만들어 유포하는 걸로 보이는데요.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거나 상대 진영을 깎아내리면서 여론을 자기 진영에 유리하게 끌고가려는 의도가 깔린 겁니다. 탄핵 찬반, 또 이재명 대표 찬반 양측이 만든 받글이 동시에 도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헌재 관계자 "평의 내용, 재판관만 알아"
헌법재판소 관계자, 최근 돌고 있는 받글을 본 후 "탄핵 심판 최종 결론을 낼 때까지 끝없이 평의가 열리는데 그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분위기가 어떤지는 당사자들만 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헌법재판관 8명 말고는 몇 대 몇 예측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으로선 아무도 없다는 거죠.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 지정이 계속 늦어지는 상황에서 받글은 더 기승을 부릴 전망입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당초 짜놓은 이재명 대표 대권 플랜이 탄핵 선고 지연으로 완전히 어그러지면서 불안감은 더 커지고, 그래서 온갖 추측이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다만, 조금만 팩트 체크를 해보면 거짓으로 밝혀지는 받글이 장외 여론전에 도움이 될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 탄핵 선고일이 지정되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어지면, 범람하는 지라시 좀 줄어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