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빌려준 통장이 범죄에 쓰였더라도 이를 예견할 수 없었다면, 손해를 물어줄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은 지난달 한 투자자가 범행에 이용된 금융계좌의 주인을 상대로 낸 대여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계좌주인은 금융거래가 막힌 고교 동창에게 자신의 통장을 빌려줬는데, 동창이 이 계좌로 투자금 1억 2천만 원을 받은 뒤 잠적하면서 사기죄로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투자자는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계좌주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1심과 2심 법원은 계좌주가 투자금 일부를 대신 갚아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계좌 사용 허락만으로 불법행위를 예견할 수 없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방조에 의한 책임을 지나치게 넓게 봐선 안된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계좌주가 오랫동안 계좌 이용 현황을 확인하진 않았지만, 이것만으로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할 순 없다고 봤습니다. 또 동창으로부터 계좌 양도에 따른 대가를 받지 않은 점도 판결의 근거가 됐습니다.
한편, 잠적한 동창은 현재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수사가 중지된 상태로 전해졌습니다.